한서율 Poem
'섹스보다 더 은밀하고 짜릿한게 뭔지 알아요?‘
18살 창녀는 다리를 꼬며 말했다
‘섹스보다 더 은밀한건 독서예요.’
그리니치빌리지의 작은 아파트
시체같은 창녀들과
코카인에 취한 영혼들이 들끓는 밤
회전처럼 돌아가는 창녀를 고른다
작가, 하류 영화감독, 무명 배우, 이름모를 시인들은
돌아가는 창녀들을 보며 침을 삼켰다
붉은 네온사인과 창녀들의 허연 허벅지는 참기 힘들었다
반짝이는 미니 드레스를 입은 창녀는 연신 대마초를 피워댔다
몰리에르, 앙드레 브롱통, 트리스탕차라 같은
프랑스 시인의 시집이나
폴 오스턴의 소설집
샹송드 제스트 따위나
폴발레리의 한페이지를 읽던
막내 창녀는
어느 영화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감독은 연신 폴발레리의 매혹적인 시들을 읖으며
그녀를 탐했다
지난달 그 창녀는 매독에 걸려 죽었다
이후, 손님들이 잠시 발길을 끓었죠
더럽다고 침을 뱉으며
막내 창녀는 그놈들 때문에 매독에 걸렸죠
그 놈들이 페니스에 매독을 묻혀 창녀들에게 비벼댔겠죠
창녀들이 더러울까요?
그놈들이 더러울까요?
바람이 분다! ······· 살아봐야겠다!
광활한 대기가 내 책을 펼쳤다가 덮고
파도가 바위에서 솟구치며 산산이 부서진다!
날아가라, 나의 현혹된 페이지들이여!
부수어라, 파도여! 흥겨운 물살로 부수어라
돛배들이 모이를 쪼고 있던 저 평온한 지붕을!
폴발레리 「 해변의 묘지 」 에서
"천박하게 낭만적인 시대의 인간에게 명석함의 전범을 제시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칭송받을 발레리의 공적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의 창작물
©️한서율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