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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식문화진흥 Jul 04. 2020

(알면 더 재미있는) 장어이야기

황광해 음식 칼럼니스트

우리의 뱀장어 음식은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뱀장어 요리는 반가의 보양식'이라는 표현은 터무니없다.

반가의 여름철 보양식으로 닭, 장어, 민어를 손꼽는다는 표현이 있다. 엉터리다. 특히 장어 보양식은 틀렸다. 장어 요리는 일본 것을 보고 베낀 것이다. 

불과 100년의 역사다. 일본인들의 장어에 대한 ‘애정’은 뿌리가 깊다. 유별나다. 우리는 장어에 대해서 무덤덤했다. 여름철 장어에 대한 호들갑은 불과 30-40년 정도다. 그 이전에는 여러 생선 중 하나였다. 여름철 별미는 그리 긴 역사가 아니다.  


조선 중기 문신 호곡 남용익(1628~1692년)의 글이다. “남호곡문견별록_풍속_음식” 편의 일부다.      


(전략) 국은 꼭 나물로 끓인 것이며 회는 아주 굵고 굳은데 감귤을 조각조각 끊어 섞었고, 구이[炙]는 생선이나 새로 하는데 뱀장어를 제일로 침[而以蛇長魚爲第一味, 이이사장어위 제일미]. 먹는 대로 가반(加飯)하고 잇따라 반찬이 나와 많을 때는 열두어 그릇이나 되고 반드시 즐기는 물건을 물어보아 더 내오며, 다음에는 술을 내오고 (후략)     


호곡은 17세기 사람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불과 50여 년 뒤다. 한반도도 전쟁의 참화를 제대로 벗어나지 못했다. 곧이어 북쪽 청나라와도 전쟁을 겪었다. 어수선한 시기다. 호곡은, 1655년(효종 6년), 조선통신사 종사관으로 일본에 갔고 “남호곡문견별록”을 남겼다. ‘호곡 남용익이 보고 들은 것을 기록했다’는 뜻이다. 17세기 중반이다. 


조선통신사로 갔으니 일본 측에서도 최대한 접대했다. 위의 내용은 일본에서 받았던 밥상을 기록한 것이다. ‘사장어(蛇長魚)’는 뱀장어다. 생선구이, 새 구이 등을 내오는데 일본인들이 뱀장어구이를 최고를 친다고 했다. 


아직 초밥은 없다. 나물 국을 내오고, 귤을 섞은 회, 구이, 또 다른 반찬이 나온다. 밥은 조금씩 여러 차례 내온다. 술, 물, 차 순서로 내온다. 이런저런 것이 좋다, 나쁘다고 말하지 않지만, 일본인들이 뱀장어구이를 최고로 여긴다고 기록했다. 400년 전의 기록이다. 일본인들의 뱀장어구이는 뿌리가 깊다. 


우리의 뱀장어 음식은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뱀장어 요리는 반가의 보양식’이라는 표현은 터무니없다. 만약 우리도 뱀장어 요리를 귀하게 여겼다면 남용익이 “일본인들이 뱀장어구이를 최고를 친다”라고 특별히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와 같이”라는 표현을 했을 것이다. 글 내용을 살펴보면, “뱀장어구이를 좋아하는 것은 일본인들 특유의 식습관”임을 알 수 있다. 제사에도 뱀장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제사 음식이 아닌 반가의 음식은 없다.  


일본인들은, 지금도, 초여름이면 뱀장어 요리를 즐긴다. 전 국민이 여름철이면 민물장어로 만드는 ‘우나기 동(うなぎどん)’을 먹는다. 일본인들의 계절 음식이다. 우나기 동은 ‘우나기 돈부리[鰻(うなぎ)どんぶり]’, 장어 덮밥이다. 간장 조림, 구이 과정을 거친 뱀장어를 얹은 덮밥이다. 채소를 곁들일 때도 있고, 생강 정도만 얹은 간단한 것도 있다. 


1980년대까지도 국내의 뱀장어 소비는 그리 많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인들은 상당수의 뱀장어를 외국에서 수입, 소비한다. 한반도의 뱀장어도 마찬가지. 1980년대에는 대부분 국내산 뱀장어가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바닷장어 구이와 갯장어 샤부샤부. 현재는 보양식으로 인기가 있는 장어지만 1980년대까지도 국내 소비는 많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 민물장어 산지로 유명한 고창군 풍천 선운사 부근을 간 적이 있다.

장어를 파는 이는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하는 바람에 국내에는 장어가 없다”고 했다. 있더라도 가격이 비싸, 국내 사람들이 장어를 먹기는 힘들다고도 했다.   


국내산 뱀장어는 점차 귀해진다. 구하기도 힘들고, 인건비도 올라간다. 국내산 뱀장어 가격이 높아졌다. 대 일본 수출은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장어는 점차 귀해진다. 다행히 일본 수출이 줄어들고 많은 물량이 국내로 풀린다. 경기가 좋아지면서 국내에서도 장어 소비가 늘어난다, 장어 요리도 유행하기 시작한다. 


일본은 일본 자국 생산 장어도 사용하지만, 외국 수입 뱀장어도 상당수 사용한다. 한국,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 아프리카 장어도 소비한다. 한국산 장어 값이 오르면 외국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 사이 한국산 장어는 한국 국내 소비로 바뀐 것이다. 한국 장어 음식이 시작된다. 장어를 먹는 방법은 이미 한국 사람들도 알고 있다. 


물량 확보가 특히 어려운 것은 민물장어다. 원형 ‘우나기 동’은 민물장어다. 지금은 민물장어가 귀해져서 일본도 대부분의 ‘우나기 동’을 바닷장어, ‘아나고’로 만든다. ‘아나고’는 민물장어에 비해서 가격이 싸다. ‘우나기’ 값이 비싸니 ‘우나기 동’ 대신 ‘아나고 동’이 된 것이다.

 

장어는 크게 세 종류다. 민물장어, 바닷장어 그리고 갯장어다. 


민물장어는 민물에서 산다. 바다 조업이 힘든 시절, 민물에서 잡았던 장어는 모두 민물장어다. 민물은 강이나 호수, 늪지대다. 인간이 접근하기 좋은 곳에서 잡았던 것은 모두 민물장어다. 남용익이 일본에서 대접받았던 장어도 민물장어였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추정이다. 정확한 근거는 없다.


민물장어는 오랫동안 혼란스러운 물고기였다. 지금도 마찬가지. 생태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알려졌지만, 대량 양식에는 어느 나라도 성공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 2월, 잡지 “동광” 제10호의 기사다. 제목은 “뱀장어와 잉어”.     


(전략) 생물학자들의 연구에 의지하면 남아메리까에 살는(居) 뱀장어는 알을 쓸을 때가 되면 대서양을 건느어서 스코틀랜드나 혹은 알프스산 꼭닥이에 오아서 새끼를 깐다고 한다. 그 까지 찾아가는 동안에 세월이 걸닌다거나 사납은 짐승, 넘끼 힘든 장애가 있다거나 생각하지 않고 오직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아니 가고는 말지 않는다는 맘으로 (후략)


생물학자 핑계를 댔지만, 내용은 엉터리다. 불과 100년 전의 ‘제법 과학적인’ 기사다. 내용은 간단하다. 남아메리카의 뱀장어는 산란기가 되면 스코틀랜드나 알프스 꼭대기에 가서 알을 낳는다. 남아메리카에 사는 뱀장어라고 했으니 민물장어다. 알을 스코틀랜드나 알프스 꼭대기에 낳는다는 말은 엉터리다. 거꾸로다. 


민물장어는 민물에서 살고, 알을 낳을 때는 바다로 간다. 인류는 오랫동안 뱀장어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민물장어의 사는 방식과 산란이 일반적인 물고기와는 거꾸로였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대부분 바다에서 살다가 산란기가 되면 민물로 온다. 복어도 그렇고, 위어도 마찬가지다. 산란기가 되면 민물, 강 유역으로 몰려온다. 


뱀장어, 민물장어는 거꾸로다. 민물, 하천에서 살다가 산란기가 되면 깊은 바다로 간다. 비슷한 시기인 1920년대, 덴마크를 비롯하여 유럽학자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뱀장어는 무려 6,000Km를 헤엄쳐서 깊은 바다의 산란지에 간 다음, 알을 낳고 죽는다”. 뱀장어는 민물에 살다가, 바다로 가서 알을 낳는다. 기사의 내용과는 거꾸로다. 


우리나라, 일본 등 동북아시아에 사는 민물장어도 마찬가지다. 민물, 강, 늪에서 살다가 산란기가 되면 3,000Km를 헤엄쳐서 깊은 바다로 간다. 괌, 필리핀 부근인 마리아나 해구 깊은 바다에 산란한다. 먼 거리를 헤엄쳐온 뱀장어는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산란 후 삶을 마감한다. 


알에서 깨어난 뱀장어는 ‘댓잎장어’다. 생긴 모습이 대나무 잎 혹은 버들잎 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정확한 명칭은 렙토세팔루스(leptocephalus). 댓잎장어는 실뱀장어로 바뀌면서 어미가 왔던 길을 되돌아, 육지로 향한다. 이때 어부들이 실뱀장어(실치)를 잡아서 양식장에서 기른다. 실뱀장어는 ‘유리뱀장어(glass eel)’로 부른다. 몸이 투명하기 때문이다. 


실뱀장어 한 마리의 가격이 3,000원에서 1만 원도 호가한다. 민물장어 값이 비싼 것은 실뱀장어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은 “아언각비”에서 장어를 정확히 설명한다. 장어는 ‘만리(鰻鱺)’ 혹은 ‘만리어’다. 속명이 장어(長魚)다. 몸이 길다. 그래서 장어다. 다산 정약용은 “만리는 장어다. 생긴 것은 뱀과 같다”고 했다. 민물장어다. 


‘해만리(海鰻鱺)’는 바다의 장어, 바닷장어 즉, 바다 뱀장어다. 뱀장어를 ‘만리’ ‘해만리’로 정확히 나누었다. 해만리, 붕장어는, 흔히 ‘아나고’로 부르는 것이다. 다산의 형인 손암 정약전(1758~1816년)은 해만리, 바닷장어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한다.      


큰놈은 길이가 1장(丈)에 이르며, 모양은 뱀을 닮았다. 덩치는 크지만 몸이 작달막한 편이고 빛깔은 거무스름하다. 대체로 물고기는 물에서 나오면 달리지 못하지만, 해만리만은 유독 뱀과 같이 잘 달린다. 머리를 자르지 않으면 제대로 다룰 수가 없다. 맛이 달콤하고 짙으며 사람에게 이롭다. 오랫동안 설사를 하는 사람은 이 물고기로 죽을 끊여 먹으면 낫는다. (<자산어보>)    


손암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쓴 시기는 19세기 초반(1814년)이다. “자산어보”에서도 상당히 정확하게 바닷장어, 붕장어를 설명한다. 


손암은, 한편으로는, 민간의 황당무계한 이야기도 전한다. “뱀장어는 그믐밤에 자신의 그림자를 가물치의 지느러미에 비추고 그곳에 알을 낳는다. 뱀장어는 가물치와 교미하여 알을 낳고 수정한다.” 손암은, “민간에 이런 이야기가 있으나 믿을 수 없다”라고 적었다. 손암이 알 수 없었다고 표기한 장어는 민물장어, 일본인들의 ‘우나기’였을 가능성이 크다.  


민물장어가 혼란스러웠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산란, 수정, 자라는 동안의 모습을 정확하게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다에서 알을 낳고, 부화한다. 바다로 가는 동안 암컷은 몸에 알을 가지지 않는다. 댓잎 장어, 실뱀장어로 우리 곁으로 되돌아온다. 민물장어에 대해 혼란스러웠던 이유다.


갯장어는 민물장어, 바닷장어와 또 다른 품종이다. 흔히 ‘여수 갯장어’라는 표현하는 장어다. 입 모양이 특이하다. 상당히 길고 입이 크다. 갯장어는 ‘견아리(犬牙鱺)’에서 시작된 이름이다. ‘견아(犬牙)’는 개 이빨, ‘리(鱺)’는 장어다. 견아리는 ‘개 이빨 장어’다. 입이 크고 이빨이 날카롭고 강하다. 개 이빨 장어, 개 장어(介長魚), 갯장어가 된 것이다. 여수에서는 갯장어 혹은 참장어로 부르고, 장어 샤부샤부(하모 유비키)로 먹는다. 



본 글은 황광해 음식 칼럼니스트가 2020년 3월부터 한국음식문화 누리집에 게재 중인 정기칼럼 내용입니다. 황광해 칼럼니스트의 주요 저서로는 <한식을 위한 변명>(2019), <고전에서 길어 올린 한식 이야기 식사>(2017), <한국맛집 579>(2014) 등이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식문화진흥사업의 일환으로 매주 한식에 대한 유익한 칼럼을 소개합니다. 내용에 대한 문의는 한식문화진흥사업 계정(hansikculture@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본 칼럼은 한국음식문화 누리집(www.kculture.or.kr/main/hansikculture)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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