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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Mar 18. 2020

처음엔 그냥 걸었지

아닌 밤 중에 울트라 트래킹

* 이 글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기 전에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글임을 밝힙니다.




어려서부터 걷는 게 좋았다. 걸을 때만큼 쉽고 확실하게 '내가 내가 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뭔가가 없었기에, 틈날 때마다 헤드폰 끼고 걷는 일은 '해서 좋은 일'이라기보다 '하루 중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에 가까웠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궁금해졌을 뿐이다. 하루 종일 걷는다면 어디까지 걸을 수 있을까?


 풀코스 마라톤 도전을 통해 감당할 수 없는 도전은 쉽게 해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을 얻었기에 기한 '언젠가'로 한정해놓았던 터. 그러던  중, 어느 책에선가 울트라 트래킹(하루 안에 100km 걷기)이라는 낱말을 처음 접하게 됐다. 그때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말았어야 했는데, 울트라 마라톤(100km를 뛰는 마라톤)은 못해도 하루 안에 100km를 걸을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무모한 상상이 도화선이 될 줄이야.


나에게 도전은 '내가 할 수 있을까? 할 수 없을까?'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성공 가능성이 50% 내외에서 왔다 갔다 할 때, 해볼 만한 것이 된다. 제주도 올레길로 한 바퀴 완주, 하루 안에 자전거로 제주도 한 바퀴 돌기, 풀코스 마라톤 완주 같은 것이 이에 해당된다. 확실히 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도전은 너무 쉬워서 도전의 가치가 떨어졌고, 확실히 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도전(철인 3종 경기, 울트라 마라톤 등)은 포기하는 게 두려워 도전하지 않았다.


하루 안에 100km를 걷는 나를 상상해봤다. 왠지 해볼 만한 도전이라는 판단이 들었고, 그래서 시작했을 뿐이다. 그 사이 마음이 약해지거나 귀찮아 도전을 뒤로 미루게 될까 봐 일찌감치 내 브런치에도 출사표를 던져놓았다. ( https://brunch.co.kr/@hanvit1102/61  울트라 트래킹 도전 출사표)

다른 몇몇 사람들에게도 이번 도전에 대해 말해두었는데, 이는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도전해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울트라 트래킹을 위해 따로 훈련을 한 것도 아니거니와 지금껏 하루에 가장 많은 거리가 40km쯤 될까. 그러니 시작할 엄두가 안나는 거다. 시작만 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지금은 때가 아니라며 걷는 근육을 더 단련하고 도전해야 한다며 디데이를 미루고 미루던 어느 날, 그날따라 창밖에 구름 한 점 없는 게 딱 걷기 좋은 날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냥' 시작하는 거라지? 에라, 모르겠다. 일단 출발하고 보자. 어떻게든 되겠지.


집에 있는 운동화 중 걷기 쉬워 보이는 운동화를 꺼내 걷기 시작했다. (이 운동화는 처음 신어보는 아버지 운동화였고, 나중에 이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된다. 이게 트래킹화의 존재 이유였구나. 아웃도어 회사, 니들도 다 계획이 있었구나!) 뒤에 펼쳐질 일을 몰랐기에 발걸음은 가벼웠다.


첫 위기는 3분의 1 지점에서 찾아왔다. 3분의 1, 내가 걸어온 거리보다 가야 할 거리가 딱 2배가 되는 지점, 딱 포기하기 좋은 지점. 체력은 내 예상보다 더 많이 소진되어 있었다. 여기서 더 걸었다가 나중에 포기하면 버스도 안 다닐 텐데, 지금 포기하면 버스 정류장도 가깝겠다... 그냥 없던 일로 하고 집으로 돌아갈까?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 누워 갈등, 또 갈등.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갈 수 있는 데까지 더 가보고 나서 판단하는 것이다. 절반을 걷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자. 페이스는 현저히 떨어지고 있었다. 2시간을 걷고 10분 정도 휴식하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휴식하고 다시 걸으면 더 힘이 들어서 페이스는 늦추더라도 쉬지 않고 걷는 길을 택했다.


드디어 2분의 1, 딱 절반. 도전에서 '절반'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나는 절반의 의미를 어릴 때 깨달았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나를 한라산 정상에 데려갔다. 한 학기에 한 번씩, 초등학교 때만 총 10번 백록담을 밟았다.

요즘 드는 생각이, 내가 걷는 걸 좋아하게 된 이유가 그때 내가 걸을 때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해주던 칭찬, 그러니까 '어린애가 장하다, 어른도 정상 가는 게 힘든데 어린애가 정상에 오르다니 대단하다'와 같은 지나가는 말들이 내 무의식에 새겨져 걷는 걸 좋아하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부모님은 감정 표현을 거의 안 하시는 분이셨고 부모님께 칭찬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인정 욕구가 강한 아이로 자라났다. 그때 한걸음 한걸음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쏟아지는 칭찬은 내 무의식 속에 '나도 잘하는 게 있구나' 하는 자존감으로 연결되었고, 평소 잘 쓰지도 않던 일기장에 그때의 감정을 오롯이 새겨두었던 기억이 다.


물론 그때의 나에게도 한라산 정상 도전은 쉬운 도전이 아니었는데, 그때 깨달은 게 도전에서 절반이 갖는 의미였다. 전체 거리에서 절반을 왔다고 것은 '지금 온 만큼만 더 걸으면 됨'을 의미했고, 이렇게 생각하면 왠지 남은 거리도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없던 힘이 생겨나는 듯했다.


다만, 같은 절반이지만 이번 도전이 한라상 정상 밟기보다 훨씬 힘든 도전이라는 게 문제였다. 50km 지점을 통과했을 때는 이미 저녁 8시가 넘었고, 50km가 지금껏 한 번도 걸어본 거리가 아니었던 만큼 다리가 확실히 무거워진 걸 느꼈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도저히 성공 못할 것 같은 애매한 경계에서 나는 또다시 갈등했다. 여기서 더 갔다가 포기해버리면 버스도 없고 숙소도 없다. 유난히 겨울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50km.

지금껏 걸어보지 않은 거리. '견딜만한 고통'과 '견디기 힘든 고통'의 경계. 내가 오늘 걸어야 할 거리의 절반.

포기했을 때 버스를 타고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


'여기까지 걸어온 것도 대단한 거 아닌가? 버스 타고 집으로 돌아가?그러기엔 지금까지 걸어온 거리가 너무 아까운데... 하지만 지금부터는 더 가면 더 갈수록 더 힘들어질 거잖아?내가 버틸 수 있을까? 그래도 처음부터 나와 약속한 게 있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까지는 걷자고... 지금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그건 그렇고... 지금 난 왜 걷는 거야?'

갈등의 목소리들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됐다.

내가 나머지 거리를 걸을 수 있을까?

나는 나를 믿기로 했다. 난 할 수 있다. 지금껏 그래 왔으니까. 할 수 있다고, 반드시 해내겠다고 한 도전에는 늘 이겨왔으니까.


다시 어둠 속의 전진.

66.7km. 3분의 2 지점. 내가 걸어온 거리의 절반만큼만 더 가면 나는 목적지에 닿게 된다.  기쁨도 잠시, 이때부터 내 몸이 여기저기서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먼저 오른발바닥. 신발을 선택할 때 트래킹화를 선택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아무 운동화나 골라 신은 죄(?)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힌 듯했다. 대안은? 없다. 그렇다면 일단 직진.

다음은 왼쪽 종아리. 73km 지점에서 종아리 근육이 뭉친 듯해서 제 자리에 잠깐 앉았다가 일어섰는데 그때부터 통증이 시작됐다. 희한하게도 걷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종아리 통증은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허리. 네 다리로 걷던 영장류의 원시 조상이 현생 인류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처음 직립보행을 할 때 겪었을 허리 통증이 내게도 전해져 오는 듯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은 아니었지만 결국 몸과 마음의 싸움이었다. 내 몸이 이기면 나는 지는 거고, 마음이 이기면 내가 이기는 거다. '이 정도면 됐다' 하면 지는 거고, '가야 할 곳까지 나는 가야만 한다' 하면 이기는 거다.

홀로 외로이 걷다 보니 옛 생각도 나고, 보고 싶은 사람 얼굴도 떠올랐다. 보폭의 리듬에 맞춰 이 생각, 저 생각... 내가 걷는 걸 가장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였지. 내가 겪었던 경험들과 지금의 내가 연결되는 순간, 그래 그때 그 일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구나, 깨닫게 되는 순간들...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이란 없다. 지금의 도전도 언젠가 하나의 의미로 남겠지. 그때 난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었더라는, 해내겠다고 한 일은 끝내 해내고 마는 사람이었더라는.



서서히 먼바다에서부터 동이 텄다.

86km 지점. 목적지가 가까워오자 희망고문이 나를 괴롭혔다. 이때부터 거리 감각이 뒤틀려져 버렸기에 '86'이라는 숫자는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5km를 걸었겠지 하고 위치추적 앱을 확인하면 고작 1,2km... 다리 힘은 둘째치고 멘이 나갈 수밖에...




헛된 희망은 때로 절망의 입구가 될 수 있다.

대학 시절, 청춘의 객기로 밤새 5.16 도로를 걷던 그 날이 떠올랐다. 그날도 지금처럼 겨울 찬바람이 시렸더랬지. 그 날, 나는 친구와 함께 제주시에 영화를 보러 왔다가 버스 막차를 놓치고 말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 한다는 말이,

"너 얼마 있냐?"

"버스비"

"나도 버스비 밖에 없는데?"

그때 우린 젊었고, 자유로웠고, 판단력이 모자랐다.

"너나 나나 대책이 없구나. 이왕 이렇게 된 거 5.16 도로 걸어가 봐?"

"5.16 도로는 어둡고 길이 좁아서 위험한데?그것도 겨울 밤에 40km를 걷는 건..."

"그럼 다른 대안은?"

"없지. 에휴, 가자"


그렇게 우리는 5.16도로 개통 이후 (아마도 최초의) 야밤 횡단자가 됐다. 5.16도로는 밤에 가로등이 켜지지 않는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됐다.(17년 전 일이라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성판악 휴게소(한라산 성판악 코스의 출발지점, 해발 750m)까지는 오르막의 연속이다. 우리가 바닷가에 있는 극장에서 출발했으니까 이건 사실상 등산이라고 해야 맞다. 그것도 밤 10시 넘어서 시작된 등산이라니. 당연히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고, 그때 난 단화를 신고 있었다.


성판악만 닿으면 그다음부터는 내리막이기에 성판악은 우리의 희망이었다.

"이 커브길만 돌면 성판악이야. 내가 이 길 많이 와봐서 알아"

이 대사는 그 후로 4-5번 반복되었고, 이번에도 틀리면 하늘이 버린 거다 했을 때 우린 성판악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우린 물도 안 챙겼다. 성판악에 도착하자마자 약수터 샘물부터 찾아 허겁지겁 들이켰다.

하늘에선 눈이 내리고 있었다.






기어이 위치추적 앱을 확인하는 것조차 힘들어지는 순간이 왔다. 20시간을 부단히도 걸어왔다.

이제 1시간만 더 걸으면 100km다. 지금 시각은 새벽 6시, 때마침 저 앞에 문을 연 편의점이 보여 컵라면을 먹었다. 운동하고 나서 먹는 라면이 제일 맛있다는 세간의 말은 그 운동이 적당한 운동일 때 하는 말이다. 어찌나 힘들었던지 입맛마저 달아나버렸다. 컵라면이 맛있다고 느껴지지 않은 건 아마 이때가 처음이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고 점심으로 고기를 먹으러 갔을 때도 그랬다. 체력적으로 완전 소진된 후에 먹는 고기는 아무 맛이 나지 않았다.

내가 정말 힘든 일에 도전하고 있구나 하며 순간 뿌듯해지기도 했다. 마지막 5km는 시야마저 흐릿해졌다. 무아지경의 상태로 전진, 또 전진.


드디어 위치 추적 앱에 세 자리 숫자가 찍혔다..


아내와 몇몇에게 100km가 찍힌 스크린샷을 카톡으로 보냈다. 개중에는 같이 걷자고 날짜까지 잡아놨던 후배도 있었고, 이건 절대 못한다며 지금이라도 버스 타고 돌아오라던 친구도 있었다.


아내로부터 답장이 왔다.

"결국 해냈네ㅋ 다음엔 뭐하려구요?"


카약 타고 제주도 한 바퀴 돌기? 자전거 국토 종주? 모터바이크 유라시아 횡단?

나도 모르겠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 도전은 계속된다. 끝내 해냈다는 성취감과 도전할 때 '살아있다는 실감'이 너무 좋다.

내 힘이 닿는 한, 내 자신의 한계에 끊임없이 부딪히는 사람이고 싶다.


내 딸들은 이미 나를 게으른 아빠로 인식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게으른 아빠로만 기억되는 건 억울하다. 게으른 건 맞지만 늘 게으른 건 아니거든.

365일 중 364일 게으르다가도 자기가 해내겠다고 약속한 일에는 이불 박차고 뛰쳐나가 끝내 해내고 말았던 아빠로 기억되고 싶다.

멈춰있는 점보다는 움직이는 선이 되고 싶다.

그 선이 계속 이어지는 한, 내 인생은 언제나 소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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