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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May 19. 2020

채식이 내게 가져다준 것들

내 지난한 다이어트의 역사

캠핑카에 산다고 하면 사람들이 자주 묻는 3대 질문이 있다.

"화장실은 어떻게 해결해? 전기는 어떻게 써?" 그리고 "캠핑카에서는 뭐 먹냐?"


나는 대답한다.

"(공중 화장실을 가리키며) 화장실은 저기 있고, 전기는 거의 안 써. 그리고 식사는 이걸로!"


(설거지가 귀찮아 늘 밖에 나와있는) 그릇 2개와 젓가락 2개를 가리킨다. 왜 혼자 사는데 그릇과 젓가락이 2개씩 있는지는 묻지 마시라. 설거지가 귀찮아 2개 씩이다. 하하.


"그러니까 뭘 먹냐고? 냉장고도 안 쓴다면서? 뭘 해 먹어? 풀 뜯어먹냐?"

"어..."

3초간의 침묵...

내 집 옆에는 풀이 많다. 하하

그렇다. 나는 캠핑카 안에서만큼은 채식주의자다. 대신 바깥세상에서 사람들 만날 때는 고기를 엄청 먹는다. 죄책감을 느끼면서 우걱우걱. 나 같은 사람을 분류하는 카테고리가 따로 없더라.

그래서 내가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었다. 채식'지향'주의자.



채식의 필요성을 처음 느낀 건 우연히 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 때문이었다. 제목과 표지가 독특해서 빌려봤던 책의 제목은 '동물들의 소송'과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들'


표지부터 강렬하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불편했던 적이 없다. 피할 수 없는 논리로 자꾸 뼈를 때려대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자기 합리화뿐. 팩트 폭행으로 뼈를 너무 맞아서 책을 다 읽었을 땐 연체동물이 된 줄 알았다.

"당신 말이 다 맞는데요. 어찌 그 맛을 포기하냐고요."


세월이 흘렀다. 내 생각도 변해갔다. 내가 지구라는 별을 잠시 스쳐간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다. 젊은 시절엔 내가 살았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으나, 나이가 들수록 흔적 없이 살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게 지구와 자연을 진정 위하는 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동물들이 살만해졌다는 기사에는 이런 댓글도 달려있더라.

"지구에게는 인간이 바이러스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백신이구나!" 또 뼈를 맞고 말았다.


가치와 욕망이 부딪히면 불편한 감정을 만든다. 결국, 마음의 불편함을 상쇄시키기 위한 원칙을 정했다. '그래, 지구의 쓰레기를 모두 없앨 수는 없지만 내 집 앞 골목길 쓰레기는 내가 주울 수 있지' 하는 마음으로 채식을 시도해보기로. 해보고 할 만하면 점차 그 비중을 늘려가기로.



저녁 샐러드부터 시작했다. 집에서 저녁을 먹을 때만큼은 샐러드로 저녁을 해결해보자.

처음엔 소스 맛으로 먹었다. 회가 초장 맛이듯, 샐러드는 소스 맛이다. 지겨워질 만하면 소스와 채소의 조합을 바꿔봤다. 금세 질릴 줄 알았는데 의의로 질리지 않았다. 놀라운 변화는 이때부터 시작다.

1 만에 몸무게가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푸드 파이터 대회 나가보라는 권유를 진지하게 받던 사람이었다. 4.2kg이라는 경이로운 몸무게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씨름시키면 천하장사 감이라 동네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랐다. 어머니 말로는 하루에 가나 초콜릿 한 박스를 다 먹었다고 한다. 내 치아가 멀쩡한 게 신기할 따름이다.


다행히도 나이가 들면서 정상체중으로 돌아왔다. 대신 몸이 어릴 때의 몸무게를 기억하는지 살 금방 찌는 체질이다. 3일이라도 운동을 면 2-3kg 찌는 건 일도 아니다. 그나마 신이 나를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다면, 열심히 운동하면 금세 또 살이 빠진다는 것이다.

이 패턴이 나이 들면서 바뀌었다. 30대가 되고부터 몸무게가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더니 내려올 줄을 모른다. 10년째 상승 일변도. 


뭐가 문제일까? 20대 때는, 술을 마셔도 다음 날 한번 운동하면 몸무게가 유지됐다. 30대가 되고 보니, 하루 술 마시면 이틀은 운동해야 몸무게가 유지된다. 문제는 운동의 강도와 횟수를 늘려도 살이 '빠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마라톤 풀코스 뛰어보겠다고 한 달간 강훈련을 했을 때도 살은 안 빠졌다. 몇 달 전에는 하루 100km 걷기에 도전했는데, 도전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몸무게를 재보고 눈을 의심했다.

나 이런 사람이다. 죽는 줄 알았다. 다신 못 한다.

몸무게가 더 늘었다. 20시간 동안 100km를 걸었는데!!!!!!!!!!!!!!!!!!!!!!!!


찾아보니, 나이가 들수록 기초대사량이 낮아진단다. 자연스러운 현상이군. '그냥 살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랬던 몸무게가, 채식을 시작하자마자 한두 달 만에 3-4kg이 빠졌다. 심지어 이젠 운동도 예전만큼 격하게 안 하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걸까?


사람들이 먼저 변화를 감지했다. 얼마 전, 후배 결혼식에서 만난 지인은 진지하게 내게 말했다. "무슨 힘든 일 있었어? 얼굴이 핼쑥해졌네"

회식을 하면 친구들도 물었다. "너 왜 안 먹냐? 예전에는 너랑 먹으면 숟가락 들기 전에 끝났는데.." 난 '그땐 미안했다'며 웃을 뿐...


확실히 위가 줄어든 게 느껴졌다. 전보다 훨씬 적게 먹는데도 포만감이 느껴졌다. 소화가 잘되니 몸에 피로감이 사라졌고, 몸이 편해지니 마음도 편해졌다. 식비도 대폭 절감다.

무엇보다도, 설거지가 편하다. 나 같은 귀찮이스트에게 설거지가 편하다는 건 축복이다.



미국의 사회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그의 명저 「육식의 종말」에서 축산업이 가져오는 다양한 폐해(환경 파괴, 자원낭비, 동물 복지, 각종 성인병 등)때문에라도 육식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프킨 박사, 채식의 가장 큰 장점이 빠졌소. 설거지가 편하다오. 일단, 저는 설거지 때문에라도 채식 지향 식단을 유지할랍니다. 하하.


그러고 보니 요즘 사는 게 거의 '나는 자연인' 수준이다. 채식, 새소리 들으며 일어나기, 시냇물 소리 들으며 자기, 별 보며 멍 때리기+ 탈원전.

언젠가 오늘이 그리워질 날이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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