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의 퇴사, 1번의 이직. 지금이 있기까지 나는
참 열심히도 살았다.
앞만 보며 달려왔다. 그땐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뭘 해도 신선했던 24살 여름 난 ‘H중공업’이란 회사에 입사를 했다. 그리고 1년 후, 사표를 쓰기 전 ‘H자동차’란 회사에 합격하여 남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행복한 퇴사를 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완성차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지방대 여자 공대생.
공대 중의 공대, 속된 말로 ‘개(계)과’라 칭하였던 기계공학과 출신.
모두들 입을 모아 말했다. 여자로서 기계과? 대기업은 절대 안 된다고 중견기업을 추천해 줄 테니 차라리 그쪽으로 생각해보라던 내 주변 모든 사람들. 편견을 깨버리고 싶었다. ‘나’라는 사람이 당당히 해 내보고 싶었다. 결국 나는 정말 꿈처럼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몇 개씩 합격한 후 골라서 입사를 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그게 나의 첫 직장 ‘H중공업’이었다.
첫 직장.
내가 입사할 때 나의 직무는 ‘조선/해양 설계부문’이었다.
하지만 ‘사업기획’쪽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티오를 확인하고 인사팀과의 면담 끝에 인문 냄새가 심하게 풍기는 사업기획팀에 입사를 했다.
사람은 행복함 끝에 고난이 온다고 하였는가.
내가 간 자리는 내 전, 그 전, 그보다 더 전 사람들도 몇 개월을 못 버티고 나갔던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는 퇴사를 부르는 ‘악명이 높은 자리’였다. 부서 배치를 받기 전 신입사원들은 각 부서를 돌면서 ‘OJT’(현장실습훈련)라는 것을 하는데, 가는 부서의 사람들마다 내가 입사할 그 부서에 혀를 내둘렀다. 처음엔 개의치 않았다. 나만 잘하면 된다고 믿었다.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별반 차이가 있겠나 싶었다.
반전이었다. 생각보다 비상식적인 그곳의 논리와 관행(모든 부서가 그런 것은 아니다.)은 나를 힘들게 하였고 매달 상무님 주관 회의 때면 똑같이 개선할 수 없는 이유로 욕을 먹었다. 내가 힘들었던 건 욕을 먹은 사실 때문이 아니다. 잘못을 하면 욕을 먹는다.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이치다. 하지만 욕을 먹었으면 앞으로 안 먹기 위해 조치를 취하거나 주의를 기울여서 일을 처리를 하기 마련인데,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건 개선할 수 없는 건으로 그것도 매번 똑같이 그들은 10년째 욕을 먹고 있었다. 한 번은 과장님과, 차장님께 여쭤봤다. 왜 개선할 수 없는 걸로 매번 욕을 먹는데 대응하지 않냐고, 너무 답답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얘기했다.
“우리라고 얘기 안 해봤겠나?
돌아오는 건 똑같더라.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빨리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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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난 그곳에 있을 더 이상의 이유를 찾지 못했다.
큰 꿈을 가득 껴안고 입사했지만 이건 아니었다.
여러 다른 대기업의 입사를 포기하고 선택했던 회사기에 회사를 나가더라도 지원할 곳도 제한적이었다. 순간 두려웠다. 그러나 더 두려웠던 건 비상식적인, 이유 모르게 숨 막히는 그곳이었다.
내가 이 직장을 나가서 뭘 해도 지금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딱 1년만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1년이 되기 전 ‘H자동차’란 회사에 합격을 하였다.
두 번째 직장.
나는 지금 H자동차에서 4년째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각 판넬들의 외관 품질상태를 체크하고 연구소와 협업하여 어떻게 하면 문제없이 튼튼하고 샤프한 각각의 문짝 트렁크 등을 공급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엔지니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지금은 예전만큼의 그런 비상식적인 ‘숨 막힘’은 없다.
그렇다고 일의 ‘간절함’ 또한 없는 것 같다.
내가 맡은 차종들을 열심히 follow-up 하며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회사가 제시하는 라인 안의 대부분을 맞춰나가며 여타 직장인들처럼 잘 살아나가고 있다.
무엇이 목마른 것일까.
내가 행복한 일.
온 신경을 세워 몰입할 수 있는 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온전히 나를 담아낼 수 있는 일. 그런 일들이 목말랐다.
곰곰히 생각해봤다.
몇 년 동안 일에 치여 고민만 했었던 글을 쓰는 일. 내가 제일 즐겁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글쓰기. 내 생각을 글로써 함께 공유하는 일. 그리고 내 인생 목표 중 하나인 책을 쓰는 일.
그래,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인문계와 1도 관련 없는 내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또 말이 안 될 것 까진 없었다. 항상 난 나를 믿고 해내 왔기에 그 안에 잠재되었던 내가 할 수 있다고 응원을 보내왔다.
내 인생의 목표 중 하나인 책을 쓰려면 뭐라도 해야만 했다. 그래야 길이 보일 것만 같았다.
매주 토요일 아침, 출근시간보다 더 이른 알람 소리에 눈을 떠 울산에서 서울로 간다. 보통 직장인들의 위대한 글쓰기 클래스를 들으며 조금이나마 내 앞에 막막했던 길을 쓸어본다. 그곳에서 글 쓰는 스킬을 배웠다기보다도 매주 쓰는 습관을 기르며 글에 고파하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며 조금씩 성장해간다.
행복하다.
더 이상 회사생활이 힘겹지만은 않다.
여전히 숨 막히게 돌아가는 한 기업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고 있고 ‘조직’이란 이유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을 해야만 할 때도 부지기수이지만.
하지만 내 꿈이 확고해졌고 회사는 내 여정에 있는 한 과정일 뿐이라 생각하기에.
‘일터’가 ‘꿈터’로 바뀌면서 치열한 그곳 또한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다짐한다.
초심을 잃지 않기를.
‘시간’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에 비례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기를.
잠들기 전 ‘내일 또 출근이네.’라는 탄식 대신에
‘내일은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라는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날이 올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