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마치고 반갑게 현관문을 들어선 첫째 아이는 신발도 다 벗기도 전에 나에게 달려와 말했다.
친구들과 학교에서 서로 자신의 방과 후 일과를 이야기하던 중 "너는 학원 어디 다녀?"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학원을 다니지 않던 첫째 아이는 “난 학원 안 다니고 집에서 해.”라고 말했고
딸아이의 대답에 친구들이 부러워했다고 한다. 첫째 아이 덕분에 나는 아이 친구들이 인정하는 좋은 엄마로 등극까지 했다. 엄마 입장에서는 돈 한 푼 안 들였을 뿐인데 아이는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보다 표정도 더
밝았고 더 행복해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고맙기도 했고 가벼이 부는 바람에 흔들릴뻔한
나의 육아관을 단단히 다져갈 수 있었다.
나도 집 공부에 비중을 두고 오랫동안 해 온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첫 번째는 독서 시간을 확보해주고 싶었다.
책 육아를 고수하다 보니 교육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반복하는 단어는'독서'였다. 학원을
다니게 되면 독서할 시간은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게 된다. 피곤하면 하지 않게 되는 순서에 가버린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많은 엄마들이 등록하는 영어학원, 수학학원이 아닌 집 근처 도서관
수업을 신청했고 책을 접할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누군가는 그런 나의 모습을 유별나다고 했지만, 그 결과 아이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책을 읽는 아이로 성장
했다. 독서 시간을 통해 바쁜 일상에서 할 수 없는 무한한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다.
두 번째는 집중력을 키워주고 싶었다.
독서나 놀이를 하다 보면 하나의 활동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 어릴 땐 미술 활동으로 집중력을 키워주었고 초등시절에는 독서로 집중력을 키워주었다.
둘 다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활동이라 선택했고 쉽게 할 수 있었기에 꾸준히 할 수 있는 활동으로
자리 잡아가게 되었다.
공룡을 알기 위해 공룡 책 시리즈를 책장에서 전부 꺼내 산더미처럼 쌓아 읽기도 했고 옛이야기가
재밌다고 어제 읽은 책을 또 들고 와 밤새 할아버지로 할머니로 1인 다역을 맡아 성대모사의 달인처럼
읽어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밤새 읽었던 추억은 아이들과 꾸준히 독서를 습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세 번째는 자기 주도력을 키워주고 싶었다.
집 공부는 스스로 하고 싶은 활동을 정하고 해낼 수 있는 자기 주도력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책 한 권을 읽더라도 본인이 읽고 싶은 책을 직접 선정해서 읽으니 엄마가 골라준 책을 읽을 때보다
독서시간을 좋아했다. 놀이를 하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놀이를 하니 아이는 놀이 시간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작은 일이라도 자신이 선택해보는 경험의 기회를 주고 싶었고 작은 경험을 통해 스스로 해내는
자기 주도력을 키워주고자 했다.
어른이 되어 수많은 선택의 상황에서 자신의 의견을 고민 없이 말할 수 있길 바랬다. 어쩌면 나처럼 배려가
지나치다 못해 우유부단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네 번째는 아이들과 대화할 시간이 많아진다.
아이들 학교 이야기, 내 이야기를 자주 나눌 수 있어서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 덕분에 현재 사춘기를 겪고 있는 중학교 1학년인 첫째 아이와도 잘 지내고 있다. 내 아이가 어떤 아이돌을 좋아하는지, 내 아이가 어떤 작가의 책을 좋아하는지, 내 아이가 좋아하는 치킨 프랜차이즈명과 메뉴를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엄마가 자신에 대해 관심 갖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놀라워하기도 하고 감동하기도 한다.
다섯 번째는 잔소리가 줄어든다.
집 공부가 하나의 루틴이 되다 보니 공부해야지, 책 읽어야지, 숙제해야지.라는 잔소리가 줄어들어서
아이들과의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된다. 어른인 나도 잔소리를 들으면 더 하기 싫어지는데 아이들은 오죽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수록 아이들을 믿고 좋은 이야기로 좋은 에너지를 준다면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여섯 번째 가장 큰 장점은 사교육비가 훨씬 줄어든다.
사실 우리 집은 외벌이 가정이다. 어쩌면 집 공부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일 수 있다. 남편 혼자의 수입으로
생활하다 보니 줄일 수 있는 항목은 자연스레 사교육비가 되었다. 사교육비를 아끼는 대신 대체할 수 있는
활동들을 찾게 되었고 집 공부 외에도 공공기관과 연계해서 할 수 있는 활동들도 손품, 발품을 팔며 아이들과 할 수 있었다. 더욱 좋았던 건 공공기관 행사에 열심히만 참여하면 우수작품으로 뽑혀 선물도 덤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선물로 받은 문화상품권을 모아 좋아하는 간식을 사 먹기도 하고 읽고 싶었던 책도 사고 영화도 보며 문화생활도 할 수 있었다. 일석이조 일석삼조가 되기도 한다. 집 공부는 집에서만 하는 공부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최소한의 외부 사교육을 줄이고 집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관찰하고 아이에 대해 잘 아는 부모가 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다.
그 어떤 사람보다도 부모가 자신의 아이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지만 아이를 믿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된다. 여전히 내가 집 공부를 고집하는 이유도 내 아이를 믿고 내 아이를 잘 아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적다 보니 집 공부의 장점은 큰돈 들이지 않고도 큰 효과를 본다는 점이다.
집 공부를 하다 보면 내가 해야 할 것들을 하루의 루틴으로 만들 수 있다.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66일간 하다 보면 우리 몸이 습관으로 받아들인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 집도 처음엔 작심삼일을
연이어하게 되었고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7년째 이어가고 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아주 평범한 나도
아이들과 작은 약속부터 실행하다 보니 꾸준히 집 공부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약속을 잘 지키니 칭찬과 보상도 함께 곁들인다면 좋은 습관을 만들 수 있다.
수년간 두 아이를 키우며 여러 실패를 거듭했고 그 결과 습관으로 만든 우리 집만의 공부 루틴이 생겼다.
학업에 지치기보다 세상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는 호기심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가능만 하다면
아이의 호기심으로 어른이 되어서도 세상을 바라보길 바란다.
집 공부는 아이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아이와 부모를 위한 공부이기도 하다.아이들이 더 성장하기 전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함께 만든다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