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지 않았다.

줄로 묶은 세제통, 줄로 이어지는 마음

by 푸른산책

화가나지 않았다. 이상하지, 정말.


그날도 여전히 수북히 쌓여있는 쓰레기를 보며

이해하고 싶지 않아서 애써 외면했던 시간들이

마치 쓰레기처럼 잔뜩 쌓여 있는 것만 같았다.


엄마의 짜증섞인 목소리가 한바탕 터져 나왔다.

예전 같았으면 나도 거들었을 텐데

이제는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아졌다.


한 숨 한번 커다랗게 내어쉬고는.

엄마의 소리에 못이기는 척 밖을 정리하는 아빠에게 다가갔다.

그 모든 짜증스럽던 시간들이 서서히 지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짜증 대신 걱정이 조금씩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왜 이렇게 쓰레기가 많아졌을까,

무엇이 아빠를 이렇게 모으게 만들었을까.


돈을 벌기 위해서,

아니면 소고한 만큼 인정받지 못한 서운함 때문일까.

딸들이 알아주나,

아내가 인정을 해주나,

화라도 안내면 다행이지 싶은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도대체 화를 왜 내는 거지?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데..."

하는 생각이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혔지만, 그래도 아빠에게 다가가

정리를 도와드렸다.


"아니, 어떻게 이런생각을 하셨어?"

두꺼운 줄에 커다란 플라스틱 세제통 여러 개를 묶어 놓으셨다.

줄을 드니 통들이 주르륵 올라와 한 손에 들렸다.


잡학다식한 아빠지만,

너무 쓸데없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면 잡아주고 가르쳐줄 사람이 없어서 그랬을까 싶기도 하다.

왠지 모를 쓸쓸함이 마음 한구석에 스며들고,

그곳에서 무언가 모를 감정이 싹이 튼다.


아직도 답답하고 미묘한 감정이 남아 있지만,

아빠와 나 사이에 조금씩 따뜻함이 쌓여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글로성장연구소 #별별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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