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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 어때 Mar 28. 2024

맘먹으니 못 할 게 없네

한라산에 오르다

"한라산 갈까?"

"뭐? 어디?"

"동네 산도 헉헉거린다야"

"산이라곤 산자락 밑에서 막걸리 마셨던 게 다야. 못해."

"설산이 엄청 예쁘대"

"알겠어. 이쁜 거. 이쁜 건 사진으로 보면 돼. 인터넷에 그런 사진은 천지야. 티브이에도 많이 나오잖아."

"가자. 가자. 한번 보자"

"자신 없어. 우리 암환자들이야" "체력이 엉망이라고"

유방암 커뮤니티에서 만난 우리 동지들은 늘 무언가를 기획한다. 이번엔 한라산 설산 등반이라는 좀 큰 기획안을 던졌다. 지금까지 살면서 정상까지 올라가 본 산이 하나도 없이 살아왔고 심지어 힘들게 올라가서 허무하게 내려오는 등산을 왜 하는 걸까 생각하는 나였다. 그나마 조금 변화되어 표준치료가 끝난 이후 '운동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으로 운동과 먹는 일에 진심으로 대하긴 했다. 매일 만보를 걸으려고 애썼고 동네산도 오르락내리락 거리긴 했다. 약을 먹는 심정으로 가기 싫은 필라테스도 매일 갔다. 그러나 한라산을 오른다는 건 동네산을 돌아다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우리 동지들은 운동, 좋은 음식 등을 함께 공유하며 지칠만하면 서로를 밀어주고 당겨준다. 그런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누군가 한라산에 오르자고 파격적인 제안을 한 것이다. 결혼 이후 단 한 번도 가족이 아닌 친구들과의 여행을 가본 적 없었기에 주춤거렸다. 무엇보다 치료가 끝난지도 오래 되지 않았고 아직 항암약의 부작용으로 여기저기 쑤시는 관절을 끌고 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가고자 하는 동지들은 같이 가자며 나를 설득한다. 그 동지들도 나보다 조금 치료가 빨리  끝났을 뿐 특출한 운동신경을 가진 이들이 아니었다. 등산이라고는 진단 이후 빠진 다리 근력 좀 길러보겠다며 다녔던 동네산 정도가 전부였던 내가 한라산이라니. 처음부터 진도를 너무 많이 뺀 느낌에 부담스러웠다. 가고 싶은 희망자를 모집해 보니 무려 8명이나 손을 들었다. 나더러 가자고 얘기하는 동지에게 손사래를 치며 자신 없다고 했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볼게"이 말을 뱉는 순간 이미 마음은 가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면서도 욕심이 났다. 고민 끝에 욕심이 승리해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결정을 한 그 순간부터 우리 9명은 설렘과 약간의 긴장을 가지고 대단한 프로젝트 팀이 된냥 계획을 짰다. 일단 비행기표부터 예매하고 나니 진짜 가는구나 실감이 났다. 우리들은 훈련이라도 하듯 틈틈이 가까운 산을 오르며 몸이 적응하도록 했다. 사실 한 시간 등산하고 세 시간 수다를 떠는 게 우리들의 등산 스케줄이었지만 그래도 산에 오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자신감도 상승했다. 등산에 있어서 초보중에 상초보다. 그런 내가 목표가 생기니 등산을 주제로 인터넷 검색을 하고 한라산 설산 유튜브영상도 찾아가며 필요한 것들을 체크했다.  등산하는 것도 예약이 필요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성판악부터 시작해 관음사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예약했다. 차량도 렌트하고 숙소예약까지 마쳤다. 마음먹기까지가 어렵지 시작하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겨울산을 오르려면 준비물이 많이 필요했다. 처음으로 평생 사지 않을 것 같았던 것들을 쇼핑한다. 아이젠, 스패치, 등산용 스틱, 두꺼운 등산양말, 등산용 장갑, 털모자등. 내가 이런 것들을 사게 될 줄이야. 정말 세상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절대라는 말은 함부로 쓰면 안 되나 보다. 등산용품 구비를 마치니 제법 등산가의 모습이 갖춰져 가고 있었다. 우리 9명은 본인의 희망여부와 체력등을 고려하여 한라산 등반팀과 둘레길 걷는 팀으로 나눴다. 무리해서 탈이 나면 안 하니만 못한 일이 된다. 각자 컨디션을 체크하면서 본인이 소화할 수 있는 팀으로 합류해서 계획을 세웠다. 처음엔 자신 없어 안되면 둘레길이라도 걷고 오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올라가고 싶었다. 결국 난 한라산 등반조에 합류했다.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는 일인 게 분명해!' 어떤 일에 직면했을 때 자신감이 떨어지거나 두려울 때 나에게 하는 말이다. 입 밖으로 자주 내뱉는 말은 신묘한 힘을 내기도 한다.


김포공항에 집결! 신랑도 내가 한라산에 오를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무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공항에 나를 내려주었다. 처음으로 신랑 없이 여행을 간다. 암도 이긴 여자 9명이 함께 가는데 두려울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들은 배낭을 짊어매고 스틱을 가방에 꽃은 채 김포공항에 당당하게 서 있었다. 이 모습만으로도 울컥했다. 그놈의 울컥은 자주도 등장한다.

설렘과 기대로 들떠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평균연령 40대 중반의 우리들은 수학여행 여고생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주도에 도착해 공항에 있는 돌하르방 옆에서 해맑게 단체사진도 찍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나름 비장하게 구체적인 등반계획을 세웠다. 다음 날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기상해서 성판악 주차장으로 출발했다. 주차장이 협소에 일찍 가지 않으면 주차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서둘러 움직이기로 했다. 우리는 새벽 5시 30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주차장에 도착해서 차 안에서 간단한 식사를 했다. 1월의  그 시간은 아직도 깜깜하다.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어 제법 웅성거리는 소리기 들리기 시작했으며 각자 가져온 렌턴 불빛들이 어둠 속에서 이곳저곳을 비춰주고 있었다. 갑자기 또 '할 수 있을까'걱정이 되었다. "가다가 나 못 올라가면 버리고 그냥 가. 내가 알아서 갈 테니까" 그렇게 말한다고 두고 갈 사람들도 아니었지만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걱정되었고 이 어둠을  뚫고 눈길을 걸어 올라갈 생각을 하니 겁도 났다. 마음과 다르게 이미 등산화에 스패츠와 아이젠을 차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래! 가보자! 파이팅!" 다 같이 첫걸음을 내딛고 정상으로 출발한다. 옷을 여러 겹 입고 완전무장을 했지만 날씨가 제법 춥고 바람이 불어 쌀쌀했다. 눈 속에 아이젠 박히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멋스럽게 들렸다. 시작은 추운 것 빼고 할 만했다. 눈밭빠져가면서 무거운 발을 꺼내  옮기며 앞으로 나아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이 트고 주변이 밝아지기 시작하면서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다. 그제야 주변에 눈꽃들이 경이롭게 피어있음이 보였고 감탄사를 연발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모습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티브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던 것 사과해야겠다. 내 눈앞에  피어있는  눈꽃은 그 어느 영상속보다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눈이 부실만큼 하얗고 아름다웠다. 그보다 훨씬 이상인데 단어가 부족한 게 아쉽다. 장갑을 벗고 연신 셔터를 눌러댔지만 그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이 담기엔 역부족이었다.




"와~ 대박! 대박! 너무 예쁘다. 미쳤어" 눈꽃이 햇빛을 만나 반짝거리기도 하고 바람에 후드득 날리기도 한다. 우리들은 어린아이처럼 눈밭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동화 속 어느 마을에 들어와 있는 착각은 힘들다는 걸 잊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계속 걸음을 옮겨 정상을 향해가고 있었다. 더 높이 올라오라는 듯이 위로 올라갈수록 눈꽃은 더욱더 신비로워지고 있었다.  

"자. 미끄러워. 조심해" " 조금 쉬었다 갈까?" "다 모여봐. 사진 찍자" "조금만 힘을 내보자 파이팅!" 힘들수록 입은 쉬지 않고 떠들어대면서 자신을 비롯한 서로를 격려했다. 혼자라면 포기했을 길을 여럿이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올라가고 있다. 그렇게 네 시간 가까이 올라가니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했다. 대피소와 진달래가 상당히 이질감이 느껴지는 조합이라 생각을 하며 어깨메 매고 올라간 가방을 풀었다. 가방 안에는 컵라면과 뜨거운 물을 담아 온 보온병이 들어있었다. 우리들은 진단 이후 대부분 라면을 먹지 않는다. 라면은 잘못이 없지만 가공식품이나 유탕면등은 자제하고 가능하면 몸에 좋다는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유난 떠는 것이 아니라 한번 크게 혼나면 그렇게 된다. 그런 우리들이 이 날만큼은 '오늘은 괜찮아'쿠폰을 받은 사람들처럼 컵라면을 먹기로 했다. 대피소에서 컵라면 안 먹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필수코스라 우리도 그에 맞게 준비한 것이다. 오랜만에 먹는 컵라면이라 그런 것인지, 눈과 땀에 범벅이 된 자랑스러운 등반 후라 그런 것인지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스위스 융프라우 컵라면만큼이나 한라산 컵라면은 맛있었다. 애틋함으로 치면 한라산의 승리다. 자, 이제 다시 정상으로 향해 가야 한다. 이런이런! 기상상황 악화로 여기서 내려가야 한단다. 이럴 수가. 여기까지 올라왔고 라면까지 먹었으니 충분히 정상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하늘이 허락하지 않았다. 한라산은 하늘이 허락해야 정상을 갈 수 있다고, 인간의 의지로 거스를 수 있는 자연이 아니라고 누군가 얘기했다. 사실이었다.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입산이 통제되었다. 아쉬움을 가득 안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낙오 없이 여기까지 온 것도 너무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었지만 끝까지 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기는 했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내려가면서 보자고 하면서 우리는 다시 산 아래로 발을 내디뎠다. 한걸음 한걸음 걸으면서 같이 간 친구와 그간에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네 시간 동안 오디오가 비지 않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과  할 얘기가 계속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땅으로 내려올수록 눈꽃은 작아지고 흰색보다는 흙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무사히 하산했다. 아무도 아프지 않았고  다치지 않았다. 암으로 고통받았던 그 시간이 언제 있었냐는 듯 이렇게 걸을 수 있고 이렇게 오를 수 있음에 모두가 감사했다. 절대 못할 것 같았던 일들도 혼자가 아닌 함께 마음을 먹으니  수 있었다. 다음번에 자연이 허락하는 날 백록담에서 사진을 찍을 계획을 세워보자.


암! 네가 아니었다면 평생 안 했을지 모를 일을 덕분에 또 하나 해냈다. 그래도 너한테 고맙다고까지는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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