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뭐 어때 May 06. 2024

첫 수확 그리고 열매채소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

얼결에 텃밭을 분양받고 아무것도 모른 채 농사라는 것을 짓기 시작하고 모종을 심은지 3주쯤 되는 날이다.

이쁜이들 텃밭 단톡방에는 수시로 사진을 올려 우리 밭의 근황을 전한다. 기대이상으로 훨씬 더 잘 자라주고 있는 채소들이 고맙고 기특하다. 공동육아를 하는 심정이랄까 뭐 그런 마음으로 애정을 쏟고 있다.


(그새 또 자랐다)

자라나는 아가들 사진 찍는 마음으로 기록을 한다.  남들이 보기엔 똑같아 보이는 사진을 수십 장 찍으면서 미세하게 다르다며 좋아하는 육아맘 같다. 내 눈에는 찍을 때마다 자라나 있는 게 보인다. 남들 눈에는 그 사진이 그 사진일 수도.

시금치도 제법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감자와 당근의 땅 속 풍경이 궁금하다. 무언가 만드느라 엄청 바쁘겠지?


채소들이 자라는 사진을 공유하다가 이제는 좀 뜯어야 하니 봉지를 가지고 텃밭에 모이자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처음 계획했던 대로 이번에는 열매채소도 심기로 했다. 땅이 차가울 때 심으면 열매채소가 뿌리를 못 내리고 열매 맺기가 어려우니 조금 더 따뜻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심기로 한 것이다. 각 채소마다 좋아하는 땅의 온도가 다르니 그들의 기호를 맞춰줘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번에도 우리 팀 에이스 농사 전문가가 열매채소 모종들을 준비해 왔다. 지방에 내려갈 일이 있다며 시골 모종시장까지 다녀온 예쁜 극성쟁이 친구 덕분에 주변에서 구하기 어려운 튼실한 모종까지 심을 수 있게 되었다. 큰 카테고리는 고추, 가지, 참외, 호박, 토마토지만 이 채소들의 세부 카테고리까지 내려가면 종류가 더  많다. 고추는 롱그린, 청양, 꽈리로 구분되고 토마토도 종류가 여러 가지, 호박도 애호박, 쥬키니호박 등 다양하다.  모종 이파리만 보고 종류를 맞추는 친구가 아직도 마냥 신기할 뿐이다. 분양받은 다섯 개의 텃밭 중에 열매채소 자리로 남겨두었던 텃밭 두 군데 작업을 시작한다. 어디에 심을지 정하고 일정 간격을 두고 구멍을 판다. 조리개로 물을 받아와 물을 한가득 부은 후 그 구멍에 모종을 쏙 넣고 주변 흙을 정성스럽게 덮어준다. 욕심 같아선 다닥다닥 붙여서 많이 심고 싶었지만 그들이 커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방해받지 않고 잘 뻗어나가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그래서 꼭 넉넉한 간격을  띄어서 심어줘야 한다. 욕심 버리고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하는 것도 인간관계랑 비슷하다. 농사짓다 문득문득 고찰하며 개똥철학자가 되기도 한다. ^생각 많은 이쁜 농부^

그나저나 이 작고 여린 모종들이 그 무거운 열매들을 이고 지고 버틸 수 있을까? 의심 말고 믿어보기로 하자. 의심보다 믿음이 목표에 도달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될 테니까.


(토마토, 고추, 호박, 가지, 참외)

우리는 종류별로 줄을 맞춰서 다양한 모종을 심고 물을 듬뿍 주었다. 또 무언가를 선사해 줄 채소들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열매채소들은 참 손이 많이 가는 친구들이다. 그냥 심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란다. 지지대를 설치해 줘서 쓰러지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 키가 위로 커지면서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완전 초보농부라 신기한 것들 투성이다. 작물마다 심는 시기는 어떻게 다 알았으며 각 채소의 특징들을 어떻게 알고 농사를 지었을까? 예부터 경험에 의해 체득된 것들이 전해져 내려온 것이겠지 하면서도  참 지혜롭다는 생각이 든다. 잭과 콩나무처럼 이 지지대를 타고 올라가서 열매까지 달리면 얼마나 신기할까? 밭에서 채소 보고 설레다니. 이유불문하고 설렘을 느끼게 해 줘서 고맙다.


(친구부부가 세운 튼튼한 지지대)

열매채소를 모두 심고 이름표가 붙어있는 첫 번째 쌈채소 텃밭으로 옹기종이 모였다. 따는 요령조차 모르는 초보 농부들이다. 친구가 시키는 대로 아랫잎부터 똑똑 끊어 따서 봉투에 담았다. 솎아주는 의미에서의 수확이라 잎이 아직 크지은 않았지만 샐러드나 비빔밥에 넣어먹기에는 안성맞춤인 크기다. 작은 밭에서 제법 많은 양이 나왔다. 첫 수확한 채소들을 한 군데 쏟아놓고 각자의 봉투에 담았다. 그날 저녁 메뉴는 모두가 이 채소를 이용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채소가 이렇게 예쁠 일인가)

내가 키워서 그런지 하나도 버리기 아깝고 애정이 간다. 농부의 마음이 이런 거겠지. 감히 따라가지도 못할 그 마음을 아주 조금 알 것도 같다.


오랜만에 어릴 적 보았던 달팽이를 보았다. 다음번엔 또 무엇을 만나고,  밭에는 또 어떤 변화가 있을까? 궁금한 녀석이 있다는 것은  나를 설레게 한다. 그것이 사람이 아닐지라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