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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y everything Jul 22. 2024

또 만났군요. 서일페씨.

다음에는 꼭 아빠랑 갔으면 좋겠다.

2023년 12월 23일.

2024년 7월 6일.


약 반년만에 서일페(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가 다시 돌아왔다. 아이는 또다시 한 달 전부터 사전 예매를 해야 할인이 된다며 나를 들들 볶는다.


"또 가려고?"

"그럼 가야지!"


다른 대답이 뭐가 있냐는 듯한 말투다. 이번에는 쿨하게 결제한다. 하루 전까지는 무료 취소가 가능하다는 것을 지난번 서일페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변수가 생기면 취소하면 된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



남편은 스티커를 사러 가는데 입장료도 내야 하는 것이 연신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역시 안 가본 티를 낸다. 서일페는 입장료가 문제가 아니라 체력전이다. 입장하는데 최소 1시간 줄 서기, 입장해서도 많은 부스를 돌아다녀야 하므로 몇 시간이고 계속 서있어야 한다. 잠깐 점심을 먹거나 커피 수혈을 할 때는 앉는 것이 허용된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는 않다. 서일페는 코엑스에서 열리는지라 주말 이용객과 합쳐져 음식점 웨이팅도 기분 몇 십분, 스타벅스 카페도 앉을자리가 없다. 고로 약 대여섯 시간은 앉을 일이 없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코엑스라는 서울을 가기 위해 경기도민은 가는데만 1시간이 넘게 걸린다. 광역 버스, 지하철을 타고 환승을 몇 번 거쳐야 하는 곳이라 '서일페를 간다'는 것은 거의 10시간의 대장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우리 모녀에게는 말이다.


이번에는 아빠와 딸이 오붓하게 시간 좀 보내고 오면 좋겠건만 아빠도 딸도 요지부동이다. 아빠는 그런 고생을 하면서까지 스티커를 사고 싶지 않고 싶고, 딸은 투덜거리는 아빠를 신경 쓰며 스티커를 구경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딸의 서일페 짝꿍은 어김없이 나로 당첨!


서일페 짝꿍으로서 엄마의 장점은


1. 다정하고 친절함.

2. 일러스트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고 이것저것에 호기심이 많음.

3. 수년간 딸과의 데이트 경험으로 인한 환상의 케미.

4. 인스타 사용자로서 작가님을 재빠르게 팔로우하여 무료 스티커를 챙기는 부지런함.

5. 딸의 컨디션을 기가 막히게 파악하며 필요한 것을 챙겨주는 모성애.

6. 딸이 구매하는 스티커 및 물건들을 챙겨주는 짐꾼.

7. 어른들 사이에서 딸이 다치지 않게 보호해 주는 안전 지킴이.

8. 딸의 재정 상황을 파악하여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게 돕는 매니저.


이 정도 되시겠다.


그럼 능력자 엄마가 딸이 원한다는데 서일페 가야지!

맞다. 우리 다꾸 연재도 하는 작가들인데, 가야지 그럼!


이번 서울 나들이를 도와줄 교통수단은 GTX-A다. 한 때 부동산 광풍의 한 핵이었던 GTX-A가 일부 개통되었다. 개통된 지는 몇 달 되었는데 한 번도 안 타봐서 타보고 싶었는데 이번이 기회다. 삼성까지 개통되면 서일페는 열 번이라도 가겠건만(이건 비유적 표현이다, 딸아. 앞으로 서일페를 8번 더 가겠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아직은 수서까지만 개통되어서 환승을 2번이나 해야 된다. 그래도 서일페 가는 김에 GTX도 타고, 서울 구경도 좀 하고 그럼 좋지 아니한가.


출처:네이버 지도ㅡ지하철 노선도


그렇게 도착한 서일페에서 예상처럼 1시간가량 줄을 서고, 입장을 해서, 인스타 팔로우를 엄청 누르고, 개성 넘치는 작가들의 작품인 스티커를 구경했다. 서일페 밖에서는 넓은 코엑스에서 우왕좌왕, 두리번거렸던 작년과 달리 이 구역을 꽤나 아는 듯이 성큼성큼 진격하는 스스로를 보니 괜한 뿌듯함도 생겼다.



"엄마, 서일페 정식 먹자."

딸이 앞장서 찾은 음식점은 베트남 식당이었다. 분짜를 좋아하는 딸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작년 그 음식점은 올해도 우리 모녀의 점심을 해결해 주었다. 쌀국수와 분짜로 이루어진, 메뉴판에는 절대 없는 우리 모녀만의  '서일페 정식'을 먹으며 지친 다리도 쉬고, 1차전으로 구입한 각종 아이템들을 구경하며 2차전을 준비했다.



빠진 곳은 없는지 한 번 더 점검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위하여 잠시 보류했던 부스를 재방문하여 구입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등의 까다로운 2차전을 마치며 모녀의 2회 차 서일페를 마무리했다.







"다음에는 서일페 말고 그냥 유명한 다꾸샵 가서 스티커 사는 건 안 돼?"

"서일페 안 가고 입장료만큼 스티커 더 사는 건?"

"딸아, 대답 좀 하지?"

"딸?"


... 뭐 또 가고 싶다면 가면 되지.

그치만 다음번엔 꼭 아빠랑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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