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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빈 Jun 14. 2024

[우울증 극복 D-21] 2. 스포트라이트 끄기


D-21. 세상 구경 나가기

-스포트라이트 끄기


새로운 나는 세련된 옷으로 바꿔 입고, 호감 가는 말투를 갖춘 배역으로 갈아탔다. 드디어 실전을 연기할 무대로 나가볼 시간이 왔다.

나의 새 옷과 신발이 아직은 어색해서인지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다. 늘 묶고 다니던 머리를 푸니 바람이 불 때마다 머리카락이 눈앞을 가로막아 정신이 없었고, 편한 운동화가 아닌 딱딱한 구두는 조금 걷자 발이 저려왔다. 만약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면 주변에서 나의 옥에 티 같은 신발을 보며, 저마다 한 마디씩 할 것 같았다. 나는 최대한 타인의 눈에 띄지 않고 세상 속에 자연스럽게 섞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오랜만에 입은 셔츠와 재킷은 활동에 제약이 있어서인지 근육이 뭉쳐 오는 것 같았다.

새로운 스타일을 하고 밖으로 처음 나갔던 한 시간이, 마치 반나절은 지난 것 같이 느껴졌다. 내 몸에 걸친 새로움이 어색해 힘이 잔뜩 들어갔던 모양이다.


나는 왜 이렇게 몸에 힘이 들어갔을까?

어렸을 때 처음 연기를 했던 때가 생각났다. 초등학교 5학년 크리스마스 때였다. 주일학교에서 했던 예수님 탄생에 관한 연극이었는데 내가 받은 역은 행인 3이었다.

동방박사도 아닌 행인 3인 역에 혼자 하는 대사도 없었다.

그럼에도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어색한 옷과 모자, 어찌할지 모르겠던 손동작.. 그때는 동방박사 3도 아닌, 행인 3에게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걸 몰랐다.

나의 작은 실수도 모두가 봤을 거라 생각했고, 어색해 보이는 나에게 집중됐다고 착각했다.


우리는 삶이라는 함께 쓰는 무대에서 각자가 맡은 배역을 연기하고 있다. 그 속에서 각자는, 자신에게 강렬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서나 무대에서나 주인공일 때가 있고 조연일 때가 있기 마련이다. 내 결혼식에서는 내가 주인공이고 다른 결혼식에 가면 나는 하객이라는 조연이 되듯이 말이다.


나에게 늘 향해있다고 여겼던 강렬한 라이트를 조절할 수 있게 되자, 잠시라도 나에게 집중되던 시선이 거둬지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해졌다.

항상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몸에 힘이 들어가게 했던 모양이다.

완벽을 추구한다는 건,  

도전을 주저하게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게 했다. 나는 또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고 싶어지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끄고 혼자 쓱 나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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