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친구가 뮤지컬 ‘레미제라블’ 무대에 오른다고 해 공연 관람을 갔다. 배역에 공백이 있어 우연히 맡게 된 조연 역할이라고 들었다. 연기를 해본 적 없는 중학생이 하기에 어려울 법한 노래와 대사를 자연스럽고 멋지게 연기해내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눈빛에 열정이 가득 찬 무대 위의 아이의 모습이 새로워 보였다. 그 친구는 한 달 남짓의 방학 동안, 인생의 새 무대를 하나 더 추가한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개의 무대에서 선다. 가정이라는 무대, 친구와 함께하는 우정의 무대, 직장인, 종교인, 운동인, 봉사자들의 무대... 살다 보면 익숙한 무대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 집에서는 잔소리하는 주부의 역할, 직장의 무대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사회인 역할, 봉사자로서는 타인을 위해 기꺼이 희생자 역할을 한다.
반복되어 익숙해진 무대에서는 더 이상 힘들이지 않고도 연기를 자연스레 할 수 있게 된다. 연기가 정점에 올라 역할을 눈 감고도 해 낼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익숙함에 심드렁해져 또다시 다른 새로운 배역을 찾아 나서고 싶어 진다.
나는 요즘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무대를 하나 더 추가했다. 고민을 들어주는 보이는 라디오 유튜브 영상 발신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내 얼굴이 화면에 나오는 무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얼떨결에 맡게 된 나의 배역은 아이러니하게도 진행자다. 방송 진행을 배워 본 적도 없고 처음 맡아보는 역할이라 낯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벌써 여러 번 촬영을 했는데도 촬영 전날이면 소화 불량에 꺽꺽 거리며, 늘 새로운 무대에 일단 나를 밀어 넣고 보는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다른진행자들은 자연스럽게 잘도 말하는데 나는 익숙하지가 않아서 그런지 숨쉬는 타이밍이며 마이크 높이 등 사소한 모든게 어색하다.
마이크를 바짝 대고 말을 하면 지지직거리고, 좀 띄어 이야기하면 속삭이듯 들려 상대방과의 소리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 어느 타이밍에 숨을 쉬고 어느 쪽으로 내뱉어야 하는지도 고민이 되고 카메라를 보고 진행 하는게 어색해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 같다. 언젠가는 자연스레 진행하며 실수도 재치 있게 넘어가는 프로 같은 나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나는 또 이렇게 선배 연기자들을 보고 슬쩍슬쩍 눈치껏 따라 해 가며 익숙해져 가는 과정 중이다.
인생은 자신이 연출하고 연기하는 여러 연극 무대의 조합이다. 우리가 지금 참여하고 있는 다양한 무대들도 처음에는 ‘한번 해볼까?’라는 마음으로 도전했던 무대들이었을 것이다. 그 안에서 눈치껏 배우고 익히느라 진땀을 뺐었겠지만, 지금은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못해 따분해졌을지 모른다.
익숙한 일상에 새로운 무대를 추가해 보자. 상상력을 총동원해 호기심에 눈빛이 반짝거릴 새로 맡을 역할을 골라보는 거다. 다양한 경험은 삶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상상이 곧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질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