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남편이 생일 카드와 함께 24인치짜리 컴퓨터 모니터를 선물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아내가 노트북을 사용하는 게 맘이 편치 않았는지, 괜찮다고 해도 기어이 사서 설치를 해줬다. 모니터와 함께 보낸 카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다.
"...(중략).. 그 자식 같은 글들은 당신을 고스란히 드러내 줄 것이다. 늦게나마 찾은 당신의 재능.. 그것이 불꽃처럼 살아가길 응원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글들을 쓸 수 있게 항상 건강하길 기도한다."라고...
요사이 그는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나를 응원하는 중이다.
남편은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을 만큼 말이 없다. 집에서도 주로 혼자서 책을 읽는다. 젊어서는 그런 그가 아주 답답했지만, 시간이 지나 덜 하긴 해도 여전히 속 모를 사람이다. 암튼 그런 남편이 가끔 감동케 하는데, 나의 도전을 믿고 적극 응원해 준다는 점이다.
십수 년 전, 평범하게 살던 내가 뜬금없이 예비학교에 합격한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간다고 선언했더랬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남편은 "자기는 한국에서 직장을 다녀야 하니 함께 못 가지만, 꼭 도전하고 싶으면 하라"고 허락했다.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곳에서 어떻게 살려고 가냐?"고 말리는 친정엄마와 시어머니께 "잘할 거라고..." 진심으로 설득한 사람도 남편이다.
나의 도전을 믿어준 남편 덕에, 혼자 미국에 와 아이들을 키우며 커뮤니티대학을 다니며 영어에 매진했다. 조금 지나자, 한국에서의 전공을 살려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겠단 자신감이 생겼다. 많은 사람이 "뉴욕이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다!, 시기상조다"하며 말렸지만, 유일하게 그는 "잘할 거라고..." 응원해 줬다. 그 덕분이었을까? 기존의 업계와 차별화를 하고 열정으로 무장한 비즈니스는 다들 놀랄 만큼 성장을 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의 도전이었지만, 홀로서기를 하고, 나름 성공한 교육사업가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남편이 미국으로 와서 합류했는데, 정작 나는 건강이 안 좋아져 무조건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사업이 궤도에 올라 한참 잘 되고 있던 터라 포기하기엔 너무 아쉬웠다. 몸을 잘 관리하면서 계속해도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는 가족들의 의견에 따라 결국은 좋은 가격에 처분을 하고 비즈니스를 포기했다. 오랜 기간 열심히 해오던 일을 그만두고 한동안 방황했다. 그러나 늘 "잘할 거라고..."라며 평소에 들었던 응원이 나도 모르게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사실, 오랜 결혼생활 동안 남편에게서 그 흔한 명품이나 고가의 선물은 받아본 적이 아예 없다. 기념일이나 생일에도 편지나 카드만 슬며시 줄 때가 대부분이었다. 꼭 할 수 없어서라기보다 가치를 못 느껴서, 나 또한 별 불만을 갖진 않았더랬다. 지금에서야 남편의 조용한 응원이 명품보다 훨씬 더 값진 선물이었음을 깨닫는다.
늘 그렇듯이 도전은 설레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두려움도 있는 게 사실이다. 나 또한 낯선 땅에 아이들 둘을 데리고 혼자 갔을 때, 뉴욕 한복판에서 비즈니스를 도전했을 때도 똑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늘 "잘할 거라고..."라던 마법 같은 응원의 힘이 있었기에 어떤 도전에도 "집중하고, 열정적으로 몰두했으며, 좋은 결과를 가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쓰고, "감성 꽃 소품 크리에이터"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내게 지인이 3개의 안개꽃 리스를 부탁했다. 정성스럽게 만들어 소박한 태그를 넣어 첫 주문 포장을 했다. 아주 작은 도전이지만, 역시 응원을 받으니, 힘이 생긴다. 믿는다! 앞으로도 "잘할 거라고...."
다음은 {안개꽃 리스} 만드는 방법입니다.
1) 준비물: 핑크색 안개꽃, 스페니쉬모스 마른 꽃 조금, 리스틀, 글루건
2) 안개꽃을 나눠서 3-4가지로 작게 만들어 놓는다.
3) 리스 틀에 글루건으로 모스를 삥 둘러 붙여준다.(생략 가능)
4) 조금 큰 마른 꽃(장미가능)을 삥 돌려서 6개 정도 붙여준다.
5) 4번 마른 꽃 사이사이로 안개꽃과 장식용 마른 꽃을 글루건으로 붙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