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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06. 2024
내가 쓴 가면의 진실은?
얼마 전, 지인의 딸이 대학원 졸업을 해서 소품을 만들어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20대인데 일을 하면서, 최우등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으니 대견하고, 축하할 일이었어요. 선물 받은 딸이 너무 좋아한다면서, 지인이 '천사 같은 분'이라는 장문의 글을 카톡으로 보냈습니다.
별 뜻 없는 인사치레의 글일 수도 있지만, 그깟 소품 하나에 그런 말을 들으니, 앞으로 천사 같은 행동을 해야 하나? 부담스럽고, 민망하더라고요. 바로 '아니에요. 천사 같다니요. 다 설정이에요! 설정!'이란 답글을 보냈더랬습니다. 혹시 '착한 척'하는 가면을 아직까지도 쓰고 있는 것 아니야? 란 생각도 들었고요.
친정엄마는 첫아들을 낳자마자 사산하고, 오랫동안 아기가 생기지 않아, 많은 기도를 하고 저를 가지셨다고 합니다. 목 빠지게 손주를 기다리셨던 차라, 조부모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는데요. 3살 무렵부터, 대청마루 밑에 어질러져 있는 대가족들의 신발을 정리하고, 식사 시간마다 수저 젓가락을 나란히 놓고, 저녁마다 조부모님 방에 과일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고 해요. 어린아이가 뭘 알았겠어요? 착하고 기특하단 칭찬에 열심히 했겠지요.
유치원 다닐 무렵엔, 2살 터울인 개구쟁이 남동생이 긴 머리를 잡아당기고, 자전거 타는데 뒤에서 밀고, 장난이 유독 심했습니다. 속으로는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곧 할머니가 대신 혼내줄 것을 알고 참았는데요. 싸움까지 이어지질 않으니 '착하다'란 칭찬을 많이 들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누나 괴롭힌다고 동생이 혼나는 거 보면서 착하게 보이면, 칭찬받고, 사람들이 좋아해!! 란 생각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거 같아요.
그렇게 쭈욱 지내다가, 허허벌판 뉴욕에 와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착하게 보이면, 상대방이 만만하게 볼 수도 있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몇 번 금전적인 손해를 보고, 철저하게 이용당한 무렵인데요. 그때부터 의도적으로 야무진 센 언니 흉내를 내기 시작했어요. 부드럽게 보였던 긴 머리는 짧게 자르고, 옷은 늘 정장으로 입고요. 소심해서 말 못 하고 넘어간 일들도 또박또박할 말 다 했습니다. 심지어는 '저 인상처럼 착한 사람 아니에요. 그러니 나중에 실망 마세요!'라고 미리 선수를 쳤다니까요.
완벽하고, 일 잘하고, 늘 긍정에너지가 넘치는 능력자인 양, 비즈니스에 올인했는데요. 몸이 아파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도, (다들 그렇듯이) 직장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행동하고요. 요즘 흔히 말하는 페르소나 (역할에 따른 가면)에 철저하게 집중했더랬습니다. 쓰고 있었던 가면이 어느 정도 효력이 있었는지 결과도 만족스러웠고요.
그 후 은퇴하고 여러 SNS를 접해보니, 이곳에서도 플랫폼마다 다른 가면을 쓰고 있더라고요. 하핫!!
인스타에서는 나만의 트렌디한 분위기를 보이기 위해 세련되고, 창의적인 모습으로 포장하고요. 브런치에서는 글의 고수들이 많으니 미리 알아서 낮아집니다. 그뿐인가요? 가정에서 아내로서의 모습은 더없이 알뜰살뜰하고요. 교회에서는 믿음 좋고, 순종하는 척합니다. 친구들 사이에선 징징거리지 않고 쿨한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고요.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은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사회적 가면)를 갖고 있고, 상황에 맞게 꺼내 쓴다.’라고 했습니다. 천 개의 페르소나라니 참 놀랍지요? 더불어 적절한 사회적 가면은 사회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고 했고요. 그러니 직장에서, 가정에서 각각 필요한 '나'를 꺼내는 게 당연할 수도 있겠어요.
다행히 글을 쓰며, 그동안 써왔던 수많은 가면을 만나며, 그것 또한 또 다른 '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맡겨진 역활을 잘 수행하려고 썼던 가면들이 반드시 나빴던 것만은 아니었음에 감사했습니다. 오히려 가면의 역활을 잘 활용해 봐야겠단 의욕도 생겼습니다. 친절한 가면, 따뜻한 가면,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가면이라면, 나와 모두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않을까요?
반면, 필요에 의해 이기적이고 질투심 많은 가면, 욕심 많은 가면도 '나'임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글 서두에 쓴 지인이 제게 말한 '천사 같다!"란 의미도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고요. 그 말을 들었다고 불편해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내 안의 많은 나중 하나가 '천사'일 수도 있으니까요.
산책하다 만난 들꽃이 너무 예뻐서 만든 나무 꽃병 틀에 꽂았습니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시는 독자님들과 함께 나눕니다. 더운 여름에 건강히 지내십시오.
길거리 들꽃과 만든 화병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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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토 연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