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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가드너 Jun 15. 2024

마음의 소리가 나를 살렸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대로 따라 하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마음이 주는 소리를 듣고, 생각만 해도 아찔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1995년 6월 29일....

여름으로 들어서는 이즈음이었습니다.  

친정엄마와 집 앞 삼풍백화점에서 시어머니 생신 선물을 사고, 지하 슈퍼마켓에서 장을 함께 보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두 분이 같은 연배여서 좋은 것을 살 수 있을 거 같았거든요. 바로 다음 날이 생신이라 날짜도 확실하게 기억나고요.


그 당시 삼풍백화점은 외관부터 남달랐는데요. 30년 전에는 거의 볼 수 없는 핑크빛의 5층 건물이었습니다. 회색의 고층 아파트 밀집 지역 사이에 있으니 단연 돋보였고요. 대지면적이 6,870평, 연면적이 2만 2,387평에 달했으니, 규모도 상당히 크고, 교통 좋은 교대역 근방이라 만남의 장소로도 용이했습니다. 내부도 널찍널찍하고 고급스러워서 여성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습니다.


암튼 친정엄마와 삼풍백화점 앞에서 5시 30분경에 만났습니다. 함께 1층 로비에 들어섰는데, 보통 때의 쾌적한 분위기가 아니고, 어딘가 쾌쾌하고 후덥지근했습니다. 가끔 날씨가 더운 날에는 백화점으로 피서도 갔을 정도로 시원했는데 이상했어요. 이게 뭐지? 한편으론 설마 냉방비 아끼려고 에어컨을 덜 틀었나? 란 생각도 잠시 했습니다.


시어머니 생신 선물을 사기 위해 2층 '여성 의류' 매장을 갔는데도 공기가 텁텁해서 기분이 안 좋았어요. 블라우스를 몇 번 만지작거리다 내키지 않아, 그냥 현금으로 드리려고 쇼핑을 포기했습니다. 지하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저녁 반찬거리나 사서 가자는 생각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저녁 준비를 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이곳에서도 마음이 강렬하게 불편했습니다. 처음 경험해 보는 이상한 감정이었어요.


같이 있던 친정엄마에게 '엄마! 오늘 이상하게 기분이 안 좋아. 다음에 다시 와야겠어. 그냥 나가자!'라고 말을 했어요. 엄마도 "날씨가 덥긴 하다. 그래! 다음에 오자"라면서 "그러면, 너는 너희 집으로 가고, 난 교대역 앞에 요가원에서 요가 하고 갈게"하고 헤어졌습니다.


백화점 갈 때만 해도 신났는데,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기운 없이 건널목을 건너고, 저희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꽝!!! 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엄마와 헤어져서 나온 게 불과 2분 전이었는데요.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요? 이게 무슨 일이죠?  

 

심장이 벌렁거리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겨우 집에 도착하니 여기저기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집 앞에 있는 삼풍백화점을 자주 이용하는 것을 아는 친구들의 안부 확인이었는데요. 통화를 하면서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분명 다음날이면 드려야 할 시어머니 선물도 안 사고, 슈퍼마켓에 들렀음에도 그대로 나온 상황이요.


사망자는 총 502명에 달했고, 부상자는 937명이 발생했습니다. 국내의 단일 사건 최대 인명 피해로 기록됐습니다. 평일 손님이 가장 많은 시간대에 사고가 발생했고, 퇴근 시간으로 몰려든 차량과 인파로 구조대원의 접근이 어려워 인명피해가 엄청났고요. 그 유명했던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입니다.  


그해 여름 내내 수색 작업을 하느라 계속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심장이 뛰고 불안했습니다. 장대비는 또 왜 그렇게 자주 내리던지.... 잠깐이지만, 백화점 나오기 전에 땀 뻘뻘 흘리며 상담해 준 2층 의류매장의 유니폼 입은 아가씨도 눈에 아른거렸고요. 다행히 저는 빠져나왔어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마음에 빚진 자처럼 괴롭게 한동안을 보냈습니다.   


마음의 소리는 본능적으로 듣기도 합니다. 또한 명상이나 성찰, 종교를 통한 훈련을 통해 다양하게 들을 수도 있겠고요. 크리스천인 저는 백화점에 있는 동안 몇 번이나 나가고 싶었던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거로 생각하고 감사했습니다. 그 후, 중요한 일을 결정하거나 해야 할 때, 머리에만 의존하기보다는 마음의 소리에도 좀 더 귀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6월이 되면, 생각나는 아픈기억입니다.   



 

매일 다니는 산책길에서 만난 야생화를 직접 만든 빈티지 액자에 데코 했습니다.

더운 여름, 잠시라도 쉬어가세요. 감사합니다.

['서툰 인생, 응원합니다.' 연재 브런치 북은 만든 소품을 함께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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