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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가드너 Jul 27. 2024

 인연이 가져다준 선물

뉴욕에서 비즈니스를 한 이야기 1화



요즈음 정원에 백일홍이 한창입니다. 흔한 꽃이고, 알록달록해서 별 눈길을 주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화무십일홍이란 단어가 무색하리만큼 예쁩니다. 일 년생 꽃이라 초봄에 씨앗 파종을 하면, 가을까지 계속 피고 지며 화사하고 풍성함을 선물 해 줍니다. 백일홍 꽃말이 '인연'인데요. 문득, 미국에 와서 우연히 사업을 하게 된 것도 '인연'이 시작이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스치는 인연이요.


정원에 한참 피고 있는 백일홍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20여 년 전, 남편은 한국에서 일을 하고,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미국에 왔을 때입니다. 넓은 뉴욕에서 어느 곳에 정착해야 하는지? 도통 결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의견을 주시긴 했지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점이 다르니 참고만 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살게 될 집을 부동산을 통해 구했는데, 막상 가보니 환경이 좋지 않았어요. 그곳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진 않더라고요. 달리 방법이 없어, 마음엔 안 들었지만, 일단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곤, 우리에게 맞는 동네를 알아보기 위해, 아이들이 학교에 간 시간에 시내버스를 타고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어요. 누가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뉴욕 지리라도 익히려는 마음으로 그랬던 거 같아요. 한 달여를 보내고 나니 어느 동네가 좋은지? 어느정도 판단이 되더라고요. 딸이 토요일마다 맨해튼에 있는 예비학교를 다녀야 하니 교통 좋고, 안전하고, 학군이 좋은 곳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동네를 정하고, 어렵사리 이사 갈 집을 정했는데, 집주인이 미국에서의 크레딧 기록이 없다고 줄 수가 없다는 거예요. 몇 달 치의 렌트비를 선불한다고 하고, 한국에서의 크레딧리포트를 내밀었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고요. 후에 보니 미국 사회는 크레딧 점수가 렌트나 집을 구매할 때 아주 중요한 사항이긴 했습니다. 알고 지내는 몇 안 되는 지인에게 보증을 부탁하려다, 부담 주는 것 같아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고마운 인연을 만났다

그러던 차에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만난 E가 사정을 듣더니 선뜻 코사인(보증)을 해줬습니다. 정말 스치는 인연이었고, 일면식도 없는데 말이에요. 고마움은 말할 수 없었지요. E 덕분에 새집으로 이사하니 이전 집보다 훨씬 좋아 만족스러웠어요. 한국 사람은 거의 없지만, 평화로운 동네였고요. 이삿짐 정리를 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동네 산책을 하던 어느 날이었어요.


꽤나 크고 멋진 단독주택에 초등학생들로 보이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들어가더라고요. 신기해서 보니 oo Afterschool (방과후학교) 란 영어 사인 판이 보였습니다. 미국에선 방과후학교가 가능하도록 허가해 주는 집이 있단 걸 나중에 알았지만요. 번뜩!! 미국에 오기 전까지 수많은 학생에게 피아노를 가르쳤으니 파트타임 일자리라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란 생각에 무작정 들어갔습니다. 밖은 조용했는데, 안은 공부 하는 아이들로 바글바글하더라고요.


일단 원장을 만나 간략하게 제 소개를 했습니다.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학생들에게 피아노 가르치는 경험은 많다. 집도 바로 옆이니 고용해 준다면, 열심히 해보겠다'고요. 원장이 반색하며," 안 그래도 피아노 선생님을 구하고 있었는데, 너무 잘 오셨다"면서 바로 다음 날부터 파트타임으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두드리는 자에게 길이 열릴 것이라"는 성경 구절이 정말 딱 맞았다니까요. 집이 바로 옆이라 이동시간도 걸리지 않고, 뭔가 좋은 인연이 될 거 같았어요. 한국에서도 전문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집에서도 피아노레슨을 꾸준히 해왔던 터라 재밌게 일을 했어요. 학생들과 대화해야 하니, 영어 회화도 공부하면서요.



엉겁결에 사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oo 방과후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던 중, 얼마 지나지 않아 원장이 솔깃한 제안을 했습니다. 학생이 많아져 확장해서 나가려고 하니 이곳에서 독립적으로 해볼 의향이 있냐고요. 좋긴 했지만,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교육사업을 독립적으로 하기엔 자신이 없었습니다. 언어도 문제였고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공부한 것을 평생 활용하면서 살아라!"라고 하시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긴가민가하며 한국에 있는 남편과 친정엄마에게 상의했더니,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면서 응원을 해 주셨습니다. 저도 꼭 해내고 싶어 도전하기로 했고요. 다시 이사를 하고, 1층과 지하에선 방과후학교를, 2층에선 저와 아이들이 살았습니다. 내 집은 아니었지만, 집도 정원도 널찍널찍하고, 나무랄 데 없이 만족스러웠어요. 


미국 온 지 6개월 사이에 원하는 동네에서, 우연히 일자리를 얻었고, 또 그 인연으로 뉴욕에서 사업까지 시작할 수 있어서 이 무슨 축복인가? 운명인가?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저희 아이들을 돌보며 경제적 자립을 하고, 미국 사회에 적응을 빨리할 수 있으니 고마웠고요.  

 




많은 사람이 물었습니다. 새내기 이민자가 사업을 의젓하게 하고 있으니, 신기해하면서요. "어떻게 그렇게 빨리 사업을 시작했어요?" "누가 컨설팅을 해주었나요?" "능력자이신가 봐요!! "등등요. 그때에는 단지 운이 좋았다고 답을 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선하고 좋은 인연이 날 이끌어 주고 성장시켰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악연도 있었고,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경우도 있긴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중요한 순간마다 도와주는 좋은 인연이었습니다.



모든 현상은 인과 연이 작용한 결과라고도 합니다. 모양없는 물이 그릇에 따라 그 형태를 나타내듯이, 인연에 따라 우리의 존재가 나타나진다고도 하고요. 20년 동안 열심히 일을 하고 은퇴한 뒤,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크고 작은 인연을 만나고 있습니다. 글을 통해 상대방과 깊은 만남을 가질 수 있으니 보통 인연이겠습니까? 누군가의 공로로 '좋은 인연'이란 선물을 받는것에 감사도 하면서, 선한 인연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단 당연한 생각도 다시금 해봅니다.  



PS

밀린 숙제처럼 놔두었던 '미국에서 여성이 성공적으로 사업을 한 이야기'를 조금씩 정리하려고 합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용기 내보려고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원산 허브로 만든 티 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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