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기억하는 것들

by 해피가드너



지난 일요일에 기다리던 첫눈이 내렸다. 몇 해 전만 해도 뉴욕은 폭설로 학교가 임시 휴교를 하는 날이 빈번했는데 최근에는 당최 눈을 볼 수가 없었다. 아쉽던 차에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온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다. 집 앞 단풍나무에도 장미 아치에도 소복하게 쌓였다. 한참을 집 안팎의 눈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교회에 갈 시간. 남편이 한 시간 남짓 삽질과 브러시 질로 눈을 치우고 나니 차는 겨우 빠져나갈 수 있었다.


집을 나서자, 거리 곳곳의 나무에 눈꽃들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남편 말로는 날씨가 적당히 추워서 가지에 예쁘게 쌓인 것이라나. 교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예배당으로 향하는 짧은 길을 걷는데 '뽀드득, 뽀드득' 맑은소리가 여간 반갑지가 않다. 그 소리는 잊고 지낸 일기장의 비밀번호처럼 단숨에 어린 시절의 첫눈 오던 날의 새벽을 소환했다. 그때에도 이런 뽀드득 소리가 났었다.




일곱 살 무렵이었을까. 이유는 모르겠는데 나는 새벽마다 피아노레슨을 갔다. 그날도 엄마가 깨워서 일찍 일어났는데 창밖 거리는 온통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엄마는 내게 옷을 몇 겹으로 입히고, 파란 털모자를 씌워 주면서 "우리 딸, 조심해서 다녀와라." 당부 또 당부하시곤 하셨다. 어린 나는 당연히 가야 하는 줄 알고 눈길 위를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내며 씩씩하게 걸어갔다. 뒤를 돌아다보면 골목길을 돌 때까지 여전히 손을 흔들고 계신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유달산 밑에 있는 선생님 댁에 도착하면 김선자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외투부터 하나씩 벗겨주면서 "아이고. 엄마가 많이도 입혀서 보내셨네" 웃으며 하던 말씀은 아직도 생생하다. 눈이 와서 가지 않을 수도 있었던 길. 그 뽀드득 소리와 함께 걸었던 시간은 어린 나에게 작은 영웅이 된 듯한 뿌듯함을 주었다. 그 시절의 첫눈은 칭찬이었고, 희망이었으며, 엄마의 사랑이었다.




엄마의 보호 아래서 중•고등학교를 성실하게 보내고 대학에 가자 '자유'라는 신세계가 펼쳐졌다. 그 자유 속에서 C와 함께 보낸 첫눈 오던 날의 기억. 학교 앞에서 내가 수업 끝나기를 기다리던 그와 131번 버스를 타고 무작정 명동으로 갔다. 우리는 거리가 한 눈에 보이는 '가무'에서 생크림이 듬뿍 들어간 비엔나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커피숍 창밖으로는 눈이 펑펑 내리고, 크리스마스 캐럴은 우리만을 위한 파티처럼 흥겹게 흘러나왔다. 두툼하고 따스했던 손의 온기를 느끼며 걸었던 인파 가득했던 길. 온 우주가 우리를 축복하는 것 같았다. 그 해의 첫눈은 순수한 낭만이고 뜨거운 설렘이었다.





시간이 흘러 미국에 오니 무슨 눈이 그렇게나 많이 내리는지. 폭설도 잦았다. 이민 초기에는 남편은 한국에 있었고 아이들은 어려서 눈 치우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한 번은 눈이 오고 나서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집 앞길이 온통 빙판이 되었다. 혹시라도 누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신고가 들어와서 어두컴컴해질 때까지 뾰족한 징으로 얼음을 깨고 또 깨야 했다. 더 이상 눈은 '뽀드득' 소리가 아닌 날카로운 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한참 동안 쭈그리고 앉아 노동하고 집에 들어가니 머리가 '핑'하며 쓰러질 거 같았다. 소파 한쪽에 누워 한참을 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때의 눈은 내겐 생존이고 고독한 노동이었다.




참 신기하다. 눈은 언제나 같은 눈이었다. 흰색이었고, 차가웠으며,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무거웠다. 하지만 눈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풍경은 세월이 쌓일수록 달라졌다. 교회 주차장에서 다시 듣는 '뽀드득' 소리는 더 이상 아무런 임무도, 기대도 품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의 첫눈은 그냥 좋다. 어린 시절의 희망도, 젊은 시절의 설렘도, 일할 때의 열정도 다 녹아있어서 좋다. 그 모든 시간을 품고 내리기에 오늘의 눈은 더 깊고 부드럽다. 나의 계절들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는 듯이.


- 위 본문의 사진은 글의 장면을 떠올리며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Screenshot_20251216_172143_Studio.jpg 남편과 집에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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