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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행 필유아사

낯선 이에게 한 수 배운 하루

by 공감의 기술


출퇴근 길에서, 약속 장소로 급하게 가는 중에도, 조용히 산책을 하는 동안에 우리는 적잖은 사람들과 마주칩니다.

길을 걷다 스쳐 지나가고, 건널목에서 마주 보거나 혹은 차창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도 있고요.

오늘도 어느 누구와 얼굴을 맞대고 또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겠지요. 가끔은 그렇게 늘 만나는 사람보다 전혀 낯선 사람들을 보며 배우거나 감동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생전 처음 보는 이들과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한 수 배우는 게 가능할까요?




출근길입니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이리저리 몸이 흔들립니다. 꽉 막힌 도로는 답답합니다. 시선은 마땅히 둘 곳이 없어 자연스레 바깥 풍경으로 향합니다. 차창을 내다보며 하루를 분주하게 시작하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물론 차창 밖 사람들은 누가 자신을 보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할 테죠. 근데 오늘따라 유난히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버스는 빨간 신호를 받고 정차 중이었습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로 사람들이 오가는 걸 보다가 시선이 골목길을 빠져나오려는 어느 한 사람에게 고정되었어요. 차 한 대 정도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이었는데요, 세발 지팡이에 의지하며 힘겹게 한걸음 한 걸음씩 딛는 중년의 아저씨였습니다. 땀을 연신 흘리며 한걸음 걷고, 지팡이에 온 힘을 주어 지탱하며 또 한걸음을 떼고 있었습니다.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곧바로 아저씨 뒤로 자동차가 다가왔습니다. 바쁜 출근길, 비좁은 골목, 힘겹게 걷는 아저씨가 비켜서야 차가 나올 수 있었는데요. 아저씨는 차가 오는 걸 알아챘는지 아까보다 더 빨리 걸으려고 애쓰시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얼굴에만 애쓰는 기색이 역력할 뿐 걸음 속도는 별반 차이가 없었고요. 아저씨 바로 뒤까지 온 차량이 당장이라도 ‘빵빵’ 경적을 울릴 것만 같았죠. 근데 차량은 조용히 멈춰 섰습니다. 아저씨가 골목길을 빠져나올 때까지 경적 한 번 누르지 않고 기다려 주었습니다. 아저씨가 애써 비좁은 골목길에서 벗어나자 그제야 차는 속도를 천천히 올려 빠져나오더라고요.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차량을 보는 아저씨의 얼굴은 옅은 미소를 띠며 안도하는 표정이었습니다.

때마침 신호는 바뀌고 내가 탄 버스는 아저씨의 미소를 뒤로한 채 다음 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한동안 그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생각할수록 절로 미소가 지어지며 마음이 환해졌죠.

성질 급한 운전자라면 몸이 불편한 걸 뻔히 보면서도 경적을 울렸을 테고.

몸이 불편한 것도 힘든데 차들이 오든지 말든지 미안해할 필요도 없을 것도 같은데.

길을 빨리 비켜주지 못해서 미안해하는 표정, 힘겹게 걷는 아저씨를 묵묵히 기다려준 운전자분. 그 모습이 참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어찌 보면 별일도 아닌데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 있죠.

몸이 불편해도 피해를 덜 끼치려고 애쓰는 아저씨와 부담 주지 않으려고 말없이 기다려준 운전자 두 분도 서로에 대한 고마움과 배려를 느꼈을 거예요.

덩달아 나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이렇게 밝은 기운을 얻을 수 있다니 신기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길을 가다 처음 보는 사람을 보며 잔잔한 감동을 받는 아름다운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비 오는 날 우산이 없어 급하게 뛰어가는 아저씨에게 다가가 우산을 같이 쓰는 젊은이도 봤고요,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며 손 흔들며 환하게 웃는 아빠와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입가가 올라간 적도 있었습니다.

비좁은 버스 안에서 나이 드신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학생을 보면 내 마음도 흐뭇해집니다.


배움이 별건가요? 보고 깨닫고 느끼는 모든 게 배움입니다.

별 것 아닌 일에도 느끼는 게 있다면 고개를 끄덕이며 한 수 배웁니다.

하찮은 거라 무시한 게 오히려 편견이었음을 알고 반성도 하고요.

무관심하면 보고도 그냥 지나치고, 아무 생각이 없으면 무감동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작은 행동에 감동을 받고 기분이 좋아진다면 지루한 일상에 소소한 활력이 되지 않을까요?


배움은 책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멀리 있지도 않습니다.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고요.

삼인행 필유아사 (三人行 必有我師), 세 사람이 같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하잖아요.

어디라도 자신이 본받을만한 사람이 있다는 공자님 말씀을 몸소 체험한 출근길 아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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