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아이러니한 존재 그 자체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인 부모 자식 간에도 생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칼을 들고 싸우지만 물만 베고 마는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인데요. 살을 비비고 사는 부부,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라고 해도 입장 차이는 엄연히 존재합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듣지 않고 오히려 짜증을 내는 딸이 있습니다.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여러 번 하면 잔소리일 뿐이죠. 대꾸도 없는 아이에게 엄마가 다그칩니다.
"왜 그러는데? 뭔 문제라도 있어?"
딸은 짜증스럽게 소리 지릅니다.
"내버려 둬! 난 사춘기라고!!"
엄마도 바로 응수합니다.
"너만 힘들어? 난 갱년기라고!!"
옆에 있던 아빠도 빠질 수 없습니다.
"난 권태기라고!!"
공부도 벅찬 데다가 사춘기를 겪는 아이, 밖에서 뼈 빠지게 일하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한 아빠, 빠듯한 살림을 쪼개며 아이 진학에 노후까지 신경 쓰는 엄마. 사람은 자기 자신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죠.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입장 차이는 나 자신에게도 둘 다 공존합니다.
좁은 골목길, 사람들이 다니기에도 벅찬데 가끔 별생각 없이 들어오는 차들이 있습니다. 그런 차를 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씩 합니다.
“아니, 뭐 이런데까지 차를 타고 들어와?”하면서 말이죠.
약속 시간이 빠듯해 서둘러 차를 몰고 나섭니다. 차도는 꽉 막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급한 마음에 골목길로 빠집니다. 행여 낫기를 기대하면서요. 근데 사람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마음은 급한데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느긋하다 못해 한가롭기까지 합니다. 1분 1초가 아까운 바쁜 세상은 딴 나라 이야기인 듯합니다. 안절부절못한 마음에 짜증이 납니다.
‘차가 지나가는데 좀 비켜주지’라고 하면서요.
고객을 응대하는 부서에서는 감정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스트레스가 극심한 날이라도 안 그런 척하며 최대한 밝은 미소를 짓습니다. 고객은 왕이니 감정을 거슬리면 안 되니까요. 대개는 무탈한 고객들이지만 간혹 진상고객이 등장합니다. 영수증도 가져오지 않고 무조건 환불해달라, 이 가게 물건값이 다른 곳보다 비싸더라. 상냥하게 응대하지만 무시당합니다. “내가 누군지 알아! 당장 책임자 나오라고 해!” 당연히 누군지 알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고개를 연신 숙이며 아무리 설명을 드려도 막무가내입니다. 하루가 십 년처럼 느껴집니다.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데 아이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어제는 직원이었지만 오늘은 손님으로 가게를 갑니다. 직원으로 보이는 젊은 친구는 나사가 하나 풀린 듯 멍 때리고 있습니다. 가게가 깨끗해도 시원찮을 판에 여기저기 먼지도 보이고요, 무엇보다 찾아달라는 물건이 있는지조차 몰라 초점 잃은 눈만 깜빡깜빡합니다. 짜증이 슬슬 밀려옵니다. 답답한 마음에 ‘여기 사장님 안 계셔?’라고 묻습니다. 물건 하나 사려다 오히려 스트레스만 받습니다.
입장 차이는 시간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내가 수학의 정석, 성문 종합 영어를 들고 다닐 때 하루도 빠짐없이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 공부해라. 공부해서 남 주냐?’ ‘지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한다’ 어찌나 듣기 싫었던지, 하도 많이 들어 다음 레퍼토리가 뭔지 다 알았으니까요. 아무리 부모라지만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잘 살 건데 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지 이해를 못했습니다. 그때는 말이죠.
세월이 흘러 내 아이가 수학, 영어책을 펼칩니다. 책을 펴놓은 그위로 열심히 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도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아요. 보다 못해 한마디 합니다. ‘공부해라. 공부해서 남 주냐?’ ‘이렇게 게임만 하다가는 어른이 되면 진짜 후회한다.’ 이를 듣는 아이의 반응, 몇십 년 전 보였던 내 모습이었죠.
상황에 따라서, 시간에 따라서 입장이 확확 돌변하는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변해도 너무 변하니까, 완전 반대쪽에 서서 화를 내고 있으니 아이러니합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더니 내가 그런 꼴입니다. 어떤 때는 하루에도 내 입장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뻔뻔함에 놀라기도 하고 한편 부끄럽기도 합니다. 근데 어쩌겠어요? 사람 자체가 아이러니한 존재인 것을요.
다만 나의 아이러니를 얼마나 자각하고 거둬내고 애쓰며 사는가에 따라 보다 나은 존재가 됩니다. 제대로 인지조차 못하면 나 자신이 말 안 통하는 부모, 눈살 찌푸리게 하는 진상 고객, 손가락질받는 갑질이 될지도 모릅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술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거죠. 어쩌면 이미 그 입장으로 살았던 적도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지금껏 수도 없이 상반된 모습을 보여왔고 아이러니한 장면을 연출해왔을 테죠.
’내가 저 입장이라면?’
입장을 바꿔서 단 1초만 떠올리면,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을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 본다면 아이러니한 장면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가뜩이나 스트레스받고 화나는 일도 많은 요즘입니다. 입장 바꿔 생각하는 노력을 일상에서 한다면 우리 삶이 조금은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싶네요.
너무 진부한 이야기인가요? 뻔한 이야기인데 잘 안 되는 게 사실이잖아요.
10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요즘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복장을 보면 저물어가는 여름과 절정으로 치닫는 가을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것 같아요. 두 시즌이 절묘하게 겹친 시기가 아닌가 싶어요.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지만 한낮에는 25도를 넘나드는 기온입니다. 어떤 분은 한여름처럼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어떤 분은 무슨 코트 같은 옷을 입고 다니시더라고요. 그리고 가을에만 입을 수 있는 스카프로 한껏 멋 내신 분들도 있고요. 여름과 가을이 공존하는 시기, 패션도 다채롭습니다.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다닌다고 계절의 변화를 모르는 사람도 아닐 테고
두터운 코트를 입었다고 다가올 계절을 미리 준비한다고 하지 않잖아요. 저마다의 사정과 입장이 다 있으니까요.
어제는 운전자였다가 오늘은 보행자가 됩니다. 평소엔 직원이었다가 주말엔 손님이 되고요.
얼마 전까지 학생이었는데 어느새 학부모가 되었습니다.
어제는 청춘이었지만, 지금은 중년. 내일은 노년이 되겠지요.
지위에 따라 시간에 따라 입장은 변하기 마련입니다만 변해가는 입장만큼 상대의 입장도 조금만 헤아려보자고요. 헤아려보는 노력이 스스로를 나은 존재로 만들어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