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라는 말에 담긴 의미

by 공감의 기술


오랜만에 친구가 전화를 했습니다. 반갑다는 인사과 함께 첫 질문은 대개 이 말이죠.

"요즘 잘 지내?"

대답 또한 대개 이렇습니다.

"응. 그럭저럭."


오랜만에 만난 사이라면 힘차게 악수하며 "잘 지내?"라고 반갑게 묻습니다.

같은 건물에 있으면서 며칠 만에 잠시 얼굴을 스칠 때도 "잘 지내?"라는 한 마디를 던지죠.

이직을 하거나 당분간 만나기 힘든 상황이라면 떠나는 이에게 손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하죠. "잘 지내!"

헤어지는 연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날립니다. "잘 지내…"


머나먼 타지에 고생하는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가 연락을 합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어김없이 "잘 지내?"냐고 묻습니다. 자식 입에서 '잘 지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행여 '아니, 못 지내'라고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아무리 품 안의 자식이고, 키워봤자 소용없다고 하지만 부모는 살아있는 한 자식 걱정은 끊이질 않습니다. 자식의 '잘 지내' 한마디가 부모의 시름을 달랩니다.


헤어진 연인을 우연히 만납니다. 복잡 미묘한 감정이 마음을 뒤흔들고 머뭇거리다 어렵게 입을 뗀 첫마디는 '잘 지내?"입니다. 내가 없으니 조금은 힘들었으면, 내가 그리워 마음고생 좀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면서요.

활짝 웃는 얼굴로 "응, 잘 지내"라고 하면 억지웃음을 지으며 '다행이다'라고 대답합니다. 돌아서면 아련한 추억과 함께 괜스레 마음이 허전해집니다.



친구와 통화를 끝내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잘 지내고 있나? 나쁘진 않은 것 같은데. 아닌가?'

'잘 지낸다는 기준이라도 있는 걸까요? 기준이 있다면 뭘까?'

'잘 지낸다면 언제부터였을까? 지금이 잘 지낸다고 할 수 있기는 한 건가?'


하는 일이 대박이 나서 소위 잘 나가고 있으면 잘 지낸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바라고 원하는 일이 이루어져 기쁨이 가득해도 물론 잘 지내는 거죠.

남부럽지 호강까지는 아니어도 그저 먹고사는데 지장만 없어도 잘 지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아프지 않고 건강만 해도 잘 지낸다고 해야겠죠.


일은 꼬이고 되던 일이 난관에 부딪혀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바둥거리고 있으면 잘 지내는 게 아닌지.

사람들에게 닦이고 일에 치여 쓰러질 것 같아도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다면 잘 못 지내는 건지.

이루고픈 사랑에 애달파 될 듯 말 듯 가슴앓이를 하고 있으면 잘 지낸다고 해야 하나, 아니라고 해야 하나.

아프지만 건강해지려고 애쓰고 있으면 잘 지내려는 중이라고 해야 할지.


잘 지낸다는 기준이 애매하긴 하죠. 개개인의 차이도 분명히 있을 거고요.

건강이면 건강, 대박이면 대박, 무탈하면 충분하다. 뭐가 됐든 기준이라도 하나 있다면 대답하기가 훨씬 수월할 텐데 말입니다. 그러기에 '잘 지내?'라는 물음에 '그럭저럭', '덕분에'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래야 다음 대화로 넘어가니깐요.


'잘 지내?'라고 하고 나선 '별일 없냐?'라고 묻기도 하죠. 별일 없냐고 물으면 꼭 별일이 있어야 되는 건지 의아해질 때도 있습니다. 안 그래도 심란한데 별일 없냐고 물으면 내 마음을 들킬 것 같고 골치 아픈 일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 차에 별일 없냐고 물으면 억누르던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물론 마음을 터놓고 표현할 사이가 아니라면 대충 얼버무리고 대화를 마무리합니다.




잘 지낸다는 대답. 그 안에는 모든 걸 받아들이고 산다는 의미도 있을 거예요.

낯선 타지 생활이 힘들고 엄마가 보고 싶어도, 걱정할까 봐 잘 지낸다고 하는 자식의 마음도 있고요.

당신과 헤어져 마음은 아프고 힘들지만 그래도 잘 지내기를 바라는 연인의 마음도 있습니다.

'아휴, 잘 지내니까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 물론 귀찮아서 하는 대답이기도 하죠.


잘 지낸다는 건 지난 무거운 삶을 견뎌내는 의미도 들어있습니다.

삶의 무게가 버거워도 버티는 힘겨움, 숱하게 겪은 좌절을 극복한 노력 혹은 지금도 이겨내려는 애씀이 있어요.

먹고살기에 급급한 삶이라 급변하는 세상살이에 나 자신만 멈춘 것 같아도 알고 보면 지금도 열심히 달려가고 있잖아요. 세상이 가는 보폭을 힘겹게 맞추다 보니 멈춘 것 같이 보일 뿐이죠.


내일이 어찌 될지 모르는 변동성이 큰 세상에서 하루하루 별일 없이 잘 지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톱니바퀴 돌듯 도는 세상에서 따라 도는 부속품이 되어 어제나 그제나 똑같은 일상이 지겹게 반복되죠. 행여 부속품이 고장이라도 나거나 쓸모가 없어지면 지겨운 일상에서 낙오될지 몰라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잘 지낸다는 말은 그저 하루하루 별일 없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어요.


저마다의 입장과 생각 차이가 있습니다. 잘 지낸다는 자신만의 기준을 정한다면 어떤 걸로 만들까요?

대박 나기, 남부럽지 않게 성공하기부터 남들과 비교하지 않기, 가진 것에 감사하기, 욕심부리지 않기, 건강하기, 현실에 충실하며 오늘을 살아가기까지 다양할 거예요. 결론은 교과서에 나오는 답 들이고 선택은 자신의 몫이죠. 하지만 다들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요? 다만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오늘도 다들 잘 지내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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