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개나리, 진달래, 벚꽃.
여름이면 장미, 무궁화, 해바라기.
가을이면 국화, 코스모스, 메밀꽃.
겨울이면 동백, 수선화.
계절이 시작함과 동시에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계절이 바뀌면 조용히 사라지는 아름다운 꽃들입니다. 하지만 사시사철 무럭무럭 자라는 녀석이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잡초입니다.
잡초는 언제 어디서든 맹렬한 기세로 뻗쳐 올라옵니다. 텃밭에는 작물이 반, 잡초가 반. 뽑고 돌아서면 눈 깜짝할 사이에 잡초는 성큼성큼 자라 있습니다. 텃밭을 일구는 농부는 잡초를 보며 혀를 내두릅니다. 이놈의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다고 불평하면서 말이죠.
꽃과 잡초를 비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예쁘기로 따지면 잡초는 명함도 못 내밉니다. 장미, 백합, 목련, 라일락. 이름까지 아름다운 꽃들은 보기만 해도 사람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나무에 핀 꽃들은 시원한 그늘과 함께 추억을 만드느라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어떤 꽃은 열매가 되어 사랑을 독차지합니다. 심지어 약이 되는 약초도 있고요. 계절마다 나물이 되어 입맛을 돋우어줍니다.
잡초 하면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생각만 떠오릅니다. 그래서인지 그 흔한 이름조차 없습니다. 예쁜 꽃을 피우기는커녕 예쁜 꽃을 자라지 못하게 방해를 합니다. 시원한 그늘은 고사하고 잡초 제 몸 하나 자라기 바쁩니다. 잡초를 배경으로 사진 찍어보신 적 있나요? 추억은 개풀 뜯어먹는 소리요, 약재는 언감생심입니다. 맛있는 열매라도 맺는다면 이미 잡초에서 꽃으로 신분 상승을 했을 테죠.
도움이라고는 1도 없는 잡초인데 스스로 잡초 인생이라며 위로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아무것도 없는 잡초라네~' 노래를 부르며 잡초를 연민하면서 말입니다.
잡초인생이라면 잡초처럼 산다는 말일 텐데 잡초의 생은 어떨까요?
어제는 꽃들이 먹을 영양분을 마음껏 먹는 호사를 누렸지만 잠시 뒤 이웃이 쑥 뽑혀 나가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곧이어 친한 친구가 마구 밟혀 아파하는 걸 밤새도록 옆에서 지켜봐야만 했고요.
오늘은 꽃들과 인사를 하며 안면을 텄습니다. 같이 잘 살아보자며 사이좋게 지내기로 했습니다. 꽃들과 친구가 되는 기쁨도 잠시 꽃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며 무자비하게 잘림을 당했습니다. 키가 작았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컸어도 통째로 뽑혀나갈 뻔했습니다. 안 그래도 짧은 몸은 더욱 짧아지고 뿌리만 간신히 남아 이제 세상을 쳐다보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대대손손 잡초가 살아온 생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서러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잡초도 뿌리, 줄기, 잎이 엄연히 있는데도 사랑은 고사하고 지금껏 온전한 눈길 한번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잡초는 실망하지도 좌절하지도 않습니다.
좋을 때나 안 좋을 때나 잡초는 무심한 존재 같습니다.
이웃이 뽑히고 친구가 밟히고 내 몸이 잘려 나가도 내일이면 내일 생을 살아갑니다. 뽑힌 자리에는 또 다른 이웃이 대신하고 밟혔던 친구는 온몸을 훌훌 털고 일어납니다. 두 동강이 난 상처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생각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뽑힐까 봐 베일까 봐 밟힐까 봐 미리 걱정하지 않습니다. 뽑히면 다시 자라고 밟히면 털고 일어나고 베여도 세상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기쁨에 들뜨지 않고 좌절에 굴하지 않는 잡초의 생. 어떤 시련에도 당황하지 않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생명력이 잡초를 끈질김의 대명사로 만들었습니다.
잡초의 진가를 알아본 누군가가 이런 말을 남깁니다.
"잡초는 변장한 꽃일 뿐이다"라고요.
잡초와 꽃의 다른 점은 한 가지뿐입니다. 그건 사람의 관점이죠. 꽃들을 방해하는 잡초라고만 생각하면 눈에 거슬리고 없애야 할 대상이 됩니다만 잡초가 쓸모 있는 존재라고 여겨지는 순간 그 어떤 꽃보다 가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도 이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보면 불편한 사람이 있습니다. 치가 떨릴 만큼 역겨운 일이 닥치기도 합니다. 좌절도 겪어야 하고 실망도 수두룩하기 마련입니다. 아름다운 꽃길만 걸어도 시원찮을 판에 가시밭길에 핀 잡초처럼 인생을 방해하는 장애물 투성이입니다. 자존심이 뽑히고 자존감은 상처 받고 짓밟히기도 합니다.
불편한 사람도, 역겨운 일도, 어려운 시기도 지나고 나면 인생 내공이 되어 삶을 튼튼하게 합니다. 그러니 인생에서 지금 있는 잡초를 겉모습이 아닌 속 깊게 바라볼 줄 아는 넓은 안목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잡초는 꽃으로 태어나지 않았다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잡초로 태어남을 감사하며 끈질기게 버팁니다. 슬픔이 와도 금세 이겨내고 기쁨에 마냥 들뜨지 않습니다.
세찬 비바람이 불어오고,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면 아름답다며 찬사를 받던 꽃들은 힘없이 떨어지고 무섭다고 숨어버리지만 서럽게 자라온 잡초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묵묵히 견뎌냅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야~"
잡초는 좋은 상황이든 안 좋은 상황이든 생의 무상함을 아는 듯합니다.
누가 쓸모없는 잡초라고 무시하나요? 이런 어마 무시한 내공이 있는데 말입니다.
P.S
"잡초는 변장한 꽃일 뿐이다" A weed is no more than a flower in disguise- 제임스 로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