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사무실에 일이 있어서 들렀습니다. 친구는 급하게 처리해야 할 사안이 있다며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사무실이 어떤지 여기저기 둘러보다 벽에 걸린 아크릴 액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Self'
어차피 인생은 Self. 읽을수록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스스로 살아야 하는 인생입니다. 대신 살아주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맨 앞에 있는 어. 차. 피.라는 단어가 자꾸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차피, 어차피. 찾아보니까 순 우리말인 줄 알았는데 한자어였습니다.
어차피(於此彼). 어조사 어(於)에는 '따르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차(此)와 저 피(彼)는 이쪽과 저쪽, 풀이하면 이쪽으로 가나 저쪽으로 가나 따라간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또는 이렇게 되든지 저렇게 되든지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어차피라는 말을 종종 쓰곤 합니다.
기다리기 심심하던 차에 어차피를 넣어서 짧은 글짓기를 해봅니다.
실연을 당한 사람을 위로할 때는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어차피 떠날 사람이었어.'
하다가 실패한 사람을 보며 한 마디 던집니다.
'어차피 안 되는 거였어.'
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을 보며
'어차피 해봤자야.'
이게 좋을까 저게 나을까 선택의 기로에서는
'어차피 그게 그건데 뭐.'
하다 보니 어차피는 가능성이 없는 말 같아 보입니다. 좋아질 리가 없다고 단념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고, 하나마나 의미도, 이래나 저래나 별 차이도 없어 힘이 쭉 빠지는 그런 기분이 듭니다.
어떻게든 해보려는 사람한테, 뭐라도 붙잡으려는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가로막고 초를 치고 들어가게 합니다. 미리부터 한 수 접는 거나 다름없이 들립니다.
처음부터 성공을 확신하고 시작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시작하자마자 쭉쭉 뻗은 탄탄대로를 달리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습니까?
자신감을 가지고 용감하게 나서도 될까 말까 한 마당에 어. 차. 피 되니 안되니 하며 기를 꺾어야 직성이 풀리시겠습니까?
뭐든 새로운 도전에는 위험이 닥치기 마련입니다. 행여 잘못되어 지금 가진 걸 잃을까 봐 두렵다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은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 성공은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요행을 바라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니까요.
어차피 안된다고 안 할 거라면 차라리 요행이나 바라는 게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가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한데 왜 사무실에 '어차피 인생은 Self'를 걸어놨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이번엔 어. 차. 피가 들어간 긍정적인 문장들을 찾아봅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야. 인생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왠지 비장함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처럼 말이죠. 그러니 주저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를 넣어도 자신감을 듬뿍 채울 수 있습니다.
'어차피 해피엔딩. 그러니 걱정 말아요.'
어차피 안 될 거야 하는 말보다 내일 일을 알 수 없으니 말이나 따나 어차피 해피엔딩, 걱정 마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나이 든다고 괜히 기죽을 이유 없습니다. 어차피를 넣어 씩씩하게 받아들이면 그만입니다.
'어차피 예쁠 건데 한 살 더 먹으면 어때.'
듣자마자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살아 보니까 세상 일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납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어차피 다 지나갈 일이고요, 지나고 나면 어차피 잊힐 일은 잊힙니다.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일단 하라고 합니다. 해보지 않고 놓친 기회가 더 후회된다고 합니다.
삶이란 여정을 가다 보면 어차피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도 있고,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하다 보면 가능한 일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것은 하늘에 맡기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후회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어차피 결과는 하늘 만이 알고 있겠지만 지금 여기 내 인생은 Self, 어차피 내 인생이니까요.
어차피 사람이 벌인 일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감당 못할 일은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차피라는 단어가 꽤 괜찮게 보입니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하죠. 그럼 레이스는 길다는 의미입니다.
짧지 않은 인생에서는 모험이 있어야 합니다. 모험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니까요.
어차피 인생이 모험이라면 즐기면서 살겠다고 결심하면서 말입니다.
누군가 할 일이라면 내가 하고, 언젠가 할 일이면 지금 하고, 어차피 할 일이면 최선을 다합니다.
어차피 인생이라는 게 한 번 살지 두 번 사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것만 명심하면 세상에 안될 게 없다며 용기를 북돋워줍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힘이 됩니다.
어차피 오늘을 살아야죠. 그럼 오늘 하루도 힘차게 살아가고요,
어차피 인생도 살아내야죠. 그러니 남은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Self이니까 나 스스로가 멋들어지게 가꾸어야죠. Self가 없다면 인생도 없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