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명을 안다는 지천명, 이 나이를 넘긴 두 친구가 티격태격합니다.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며 타박하는 친구의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친구가 한 마디 날립니다.
"넌 예나 지금이나 철이 안 드냐? 언제 철들래?'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라 그런지 분위기는 서먹서먹, 모두가 어색해합니다. 헛기침만 들리고 다들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사회자가 분위기를 끌어올리려고 난센스 퀴즈를 냈습니다.
"사람의 몸무게가 가장 많이 나갈 때는 언제일까요?"
이런저런 대답은 모두 '땡'. 정답은 '철이 들었을 때'라고 하자 다들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철 좀 들어라"
어릴 때 자주 듣고 자랐습니다. 지금도 어이없는 행동을 하는 녀석을 보면 종종 쓰는 말입니다.
근데 철은 언제, 어떻게 하면 드는지 궁금했습니다. 남자는 군대 갔다 오면, 여자는 아이를 낳고 나면, 남녀 모두 부모가 되면 철이 든다고도 합니다만 군대를 다녀오고 부모가 되어도 여전히 철이 덜 든 것 같습니다.
'철딱서니 없는 것아!' '철 좀 들어' 할 때의 '철'은 순우리말로 사리를 헤아릴 줄 아는 힘이라고 정의합니다. 판단력, 분별력, 자각을 의미하는 뜻으로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하는 힘이 생기는 걸 '철이 든다'라고 표현합니다.
철의 원래 어원은 봄철, 여름철같이 계절의 변화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주역의 영향을 받아 지혜의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씨를 뿌리고, 가꾸고, 열매를 맺을 때마다 철이 바뀌는 계절의 변화처럼 어른스럽지 못하던 사람이 행동거지가 의젓해지고 사리를 분별하기 시작하면 철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반면 사리분별은커녕 나이에 맞지 않게 형편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 철부지라고 부릅니다. '철'이라는 글자에 알지 못한다는 한자어 '부지(不知)'가 합쳐진 말입니다. 어른답지 않게 고집 피우며 보채는 어린아이처럼 엉뚱한 일이나 하고, 옳고 그름을 잘 분간 못한다는 뜻입니다.
나이는 성인인데 생각은 유치하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생각 못 하는 사람,
남들 입장은 전혀 이해하지 않고 매사에 자기중심적인 사람,
절제라고는 전혀 없이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
내 것은 좋고 남의 것은 나쁘다는 식으로 막말을 하는 사람,
자기가 주장하는 바는 항상 옳다고 여기는 반면 남이 주장하면 전혀 쓸모없다고 무시하는 사람,
내가 잘 되면 좋아 자랑질을 하면서도 남이 잘 되면 질투하고 싫어하며 배 아파하는 사람,
우리 주변에 이런 철딱서니 없는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철부지들을 종종 봅니다. 혹시 나에게도 이런 모습이 간혹 나타나지 않습니까?
사리 분별하는 힘인 철, 철이 드는 건 대부분 어른이 되면서 완성되어 가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다 철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나이가 어려도 어른스럽게 철이 든 사람이 있습니다. 철이 너무 일찍 들어 애늙은이 소리를 듣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나이는 지긋한 어른이지만 철이 없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철 좀 들어라'.
자식이 부모에게서 항상 들을 수 있고, 상사나 선배가 후배한테 종종 쓰는 말입니다. 친한 친구 관계에서는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말이기도 합니다.
진짜로 철없는 사람에게는 경고성 발언이지만 알고 지내는 사이에서는 대부분 지금 너의 행동과 말이 거슬리니 다치기 전에 입 다물고 조용히 살아라는 친근한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친하지 않거나, 생판 처음 보는 남한테 이런 말을 한다면 대단히 실례가 되고 자칫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기도 합니다.
농경 사회에서는 각 계절에 따라 절기에 맞춰 농사를 지어야 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경험이 쌓여 농사활동이 계절에 맞춰 몸에 익으면 철이 들었다, 철을 안다는 걸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니 계절을 모르고 절기 따라 농사지을 줄 모르면 철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뿌리고 짓고 수확하고 비우는 자연의 법칙을 모른다면 철이 들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철이 들어가는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다 함께 모여 살아가는 세상에서 나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다 자란 열매는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게 자연의 모습입니다. 그러니 채우면 비울 줄 알아야 하고 나누면 커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일어나기 마련, 그래서 자연 앞에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철이 든다는 건 삶과 자연의 이치를 받아들일 줄 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이 의미를 모르거나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도 철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경험과 인격이 쌓이고 말과 행동으로 아름답게 나타날 때 비로소 철이 든 거니까요.
나이를 먹어 가는데도 여전히 철이 없습니다.
이름 석 자에 철이 들어가도, 몸에 철을 붙이고 다녀도 인생에서는 여태 철이 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철이 완전히 든다는 건 희망사항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긴 그렇기 때문에 삶을 더 배우고 자연 앞에서는 늘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