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 마음껏 누리고 있는 기술이 때로는 우리가 원치 않은 곳으로 내려다 놓는다.” - 셰리 터클
'딩동' 초인종이 아니라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다는 신호입니다.
핸드폰이 수시로 진동을 합니다. 누군가 대화방에 들락날락하고 있다는 알림입니다.
'카톡 왔어' 단톡 방이 개설된 날이면 시도 때도 없이 외쳐대는 소리입니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안에 전화기는 물론 카메라, MP3를 담고도 모자라 아예 컴퓨터를 통째로 옮겨 놓았습니다. 틈만 나면 울리는 메일에 문자 메시지, 여러 SNS에서 보내오는 온갖 알림까지. 그러고 보면 세상 참 편해졌습니다.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들 어디서 밥을 먹고 어디로 구경 가고 누구와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니까요.
SNS 기술이 발달하면서 내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구체적인 개인 신상은 패스합니다. 얼굴은 본 적도 없고, 무슨 일을 하는지, 몇 살인지, 진짜 이름도 심지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른 채 이웃을 맺고 친구가 됩니다. 얼굴을 직접 마주 할 필요도 없으니 속은 편합니다. 목소리 핏대 올려 싸울 일도 없고 부담스러운 만남도 없습니다. 부담이 없으니 다들 SNS 친구 맺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실시간으로 원하는 정보를 주고받고 새로운 사실도 배웁니다. 가보지 않은 여행지의 풍경을 마음껏 감상하고, 주말에 뭘 먹으러 갈까 고민을 단번에 해결해주기도 합니다.
일 년에 한 번뿐인 내 생일은 잊지 않고 축하를 해줍니다. 작년에도 물론 SNS 가입한 후로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년 축하인사를 보내옵니다. 그저 그런 사람 친구보다 훨씬 낫습니다.
SNS에는 다양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이슈를 주로 다룬다는 페이스북 친구(페친), 자신의 의견을 짧고 굵게 쏟아내는 트위터 친구(트친), 트렌드나 취향을 찍어 올리는 인스타그램 친구(인친). 이 친구들이 실제 사람 친구보다 좋은 점이 꽤 많습니다.
마음에 들어도 부끄러워 고백을 못하고 주위에서 맴도는 찌질이도 없고, 싫다고 했는데도 질척거리는 친구도 없습니다. 무리하게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되고, 메시지가 왔다고 당장 급하게 답하지 않아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밥값, 영화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안 맞으면 끊으면 그만입니다.
말 못 할 속상한 일, 진상 같은 고객에게 시달린 사건, 직장에서 받은 부당 대우, 친구와 싸우거나 연인과 헤어져 아플 때 SNS 친구들에게 털어놓기도 합니다. 다들 위로를 해주고 진짜 친구처럼 아파하는 것 같습니다. '익명성'을 통해 상담받기도 합니다.
직장 내 업무도 메신저로 지시를 하고 동료들끼리도 메신저를 주고받습니다. 직접 가지 않고 자리에 앉아 메신저로 이야기하는 것이 편리하고 효율성이 좋아 보입니다. 지금껏 만나서 대화를 하는 것이 불필요한 시간이지 않았나 싶을 정도입니다.
SNS 열풍이 불고 SNS를 하지 않으면 외계인 보듯, 시대에 뒤쳐진 사람으로 취급당합니다. 다양한 SNS가 생겨나고 편리함과 익명성은 보장되었지만 이에 못지않은 역기능도 만만찮게 생겨납니다. SNS를 하다 지치고 힘들어 자신의 온전한 삶을 위해 과감하게 끊은 사람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찾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SNS 계정을 돌아다닙니다. 한 시간에 수십 번씩 들락날락합니다. 방금 나온 SNS에 도로 들어가기도 하고요. 몇 시간 째 계정과 계정을 왔다 갔다 멈추질 못합니다. '시간낭비 서비스'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닌 듯합니다.
출처가 불분명한 글, 가짜 뉴스, 악담에 악성 댓글 같은 사이버 폭력으로 몸살을 앓기도 합니다.
심신을 달랠 여행지에서 SNS에 올릴 사진을 찍고 고르느라 분주합니다. 웃는 얼굴에 눈에 띄는 배경,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와야 하기에 여유로운 휴식을 즐기지 못합니다. 나의 본모습이 아닌 보여주기 식 인생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메신저로 주고받는 업무 역시 소통의 어려움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감정은 배제된 채 흰 바탕에 까만 글자만으로 의미를 충분히 주고받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글도 못 읽느냐며 타박을 받기도 하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리 못 알아듣는지 답답해했던 적도 있습니다.
연인과 헤어진 뒤에 심란합니다. 한동안 SNS를 끊었다가 오랜만에 들어가 봅니다. 힘들어할 줄 알았던 연인은 SNS에 환한 표정을 짓고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 나만 쓸쓸해집니다.
시어머니와 친구 맺었다가 SNS 계정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시어머니가 꿰뚫고 있습니다. 어디를 누구와 놀러 갔는지, 주말에 무엇을 했는지를 내가 알아서 보고한 꼴입니다. '남편은 일하는데 며느리는 친구 만나 놀고 있느냐'는 잔소리를 듣습니다. 스마트폰 시대에 SNS가 낳은 새로운 고부간의 갈등 양상입니다.
생일이라고 해마다 축하해 준 SNS 메시지는 작년과 재작년에도 보냈던 그대로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올해도 보내왔습니다. 감동은 고사하고 무성의하게 느껴집니다.
SNS로만 관계를 맺은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내 정보와 일상을 공유한다는 사실도 불편해질 때가 있습니다.
시간을 아끼고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SNS가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를 낳고 소통을 제한시킵니다. 소통의 힘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왜곡시키고 기술의 힘이 그 관계를 단절시켜버립니다.
상사에게 깨져가며 업무를 배우면서 선후배의 정을 쌓아갑니다. 동료와 티격태격하면서 동료애가 생겨납니다. 몇 줄 메신저보다 차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고 오해했던 일을 풀어갑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다툼보다는 먼저 대화로, 오해도 우선 대화로 해결하자고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고 성장하는데 대화는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대화는 글로 주고받는 게 아니라 말을 하는 거죠. 말을 함으로써 속마음을 드러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표정과 행동을 보며 상대방을 이해합니다. 대화를 함으로써 믿고 의지할 상대를 만납니다. 관계를 정리할 때도 뒤끝이 덜 남습니다.
'웬만해선 끊어서는 안 될 좋은 친구 특징 6가지'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나를 웃게 하는 친구, 잘못된 길로 갈 때 바로 잡아주는 친구, 늘 옆에 있어주는 친구, 사소한 것도 기억해주는 친구, 치킨 닭다리를 양보해주는 친구, 늘 내 편을 들어주는 친구'였습니다.
SNS 친구들도 늘 옆에 있고 내 편을 들어주고 웃게 해주기도 하지만 치킨을 함께 먹으며 사소한 것까지 기억할 수 없습니다.
수백, 수천 명의 인친, 페친, 트친보다 내가 아플 때, 슬플 때, 외로울 때 진정 힘이 되어주는 친구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약한 모습을 보여도 그 모습까지 안아 줄 수 있는 따뜻함은 사람 친구만이 할 수 있습니다. SNS 친구가 죽었다 깨어나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평친(평생 친구), 친친(친한 친구), 비친(비밀친구), 절친. 사람 친구가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
스마트폰이 우리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을 넘어 내 분신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정작 스마트폰을 만든 사람들과 그 자녀들은 스마트폰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니 아이러니합니다.
계절은 겨울이지만 오늘 날씨는 예년보다 포근합니다. 날이 좋아 어디라고 가고 싶은 오늘,
SNS 계정은 잠시 꺼놓습니다.
그리고 사람 친구에게 '커피 한 잔 콜?' 메시지를 날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