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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윤의 해피레터 Jul 16. 2022

08.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건 아직도 어렵다.

2022-07-03 발송 레터 


우리 학원은 장시간 동안 아이들이 책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바른 자세’를 잡게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책을 읽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자세가 무너지곤 했다. 턱을 괸다던가, 엎드린다던가, 엉덩이를 의자 끝부분에 붙이고 매달려 있다거나, 다리를 꼰다거나. 나는 교실을 바쁘게 돌아다니는 와중에도, “바른 자세!”를 외치며 아이들의 자세를 잡아주려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아이들의 자세가 왜 이렇게 무너지지?’하고.


그러다 어느 날, 보게 된 거다. 높은 의자 때문에 허공에 붕- 떠 있는 아이들의 조그마한 발을. 성인인 내가 우리 교실의 의자에 앉으면 두 발이 안정적으로 바닥에 착지한다. 하지만 저학년 아이들은 아직 다리가 짧아 의자에 앉으면 두 발이 허공에 들리게 되었다. 두 발이 바닥에 닿지 않으면 오래 앉아있기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이들은 나름대로 수업 시간을 버티기 위해 자신만의 편한 자세들을 찾은 것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끼는 건, 성인인 내 시야와 사고방식으로 아이들의 행동을 다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의자가 나에겐 편안해도, 다 자라지 않은 아이들에겐 높디 높은 것처럼. 일을 하면서 종종 나는 죄책감에 휩싸일 때가 있었다. 해피레터의 나는 좋은 선생님인 것처럼 비추어져도, 사실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적은 이렇게나 많은데! 하면서 말이다. 오늘의 레터는 내가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 차려주지 못한 순간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적었다.



1. 스티커 두 개를 먼저 요구한 이유


우리 학원은 아이가 글을 쓰면 스캔을 해서 본사에 보낸다. 그럼 본사에서 피드백이 오는데, 그 피드백을 보며 아이는 자신의 글을 한 번 더 고치는 ‘첨삭’을 해야 한다. 당연히 아이들은 이 첨삭 과정을 싫어한다. 문예 창작과도 싫어하는 게 첨삭인데! 아이들이 글을 잘 쓰면 본사에서 ‘좋아요’나 ‘잘했어요’라는 칭찬 피드백이 오기도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칭찬 스티커를 받을 수 있다. 첨삭은 싫어하지만, 칭찬 스티커를 받을 수 있는 피드백은 설레하며 기대하는 게 아이들이다.


그래서 나는 ‘좋아요’나 ‘잘했어요’ 피드백이 와도 스티커를 바로 주지 않고 아이들이 첨삭을 마치면 줬다. 스티커를 받으면 이미 목적을 달성한 아이들이 첨삭을 건성으로 하게 되기 떄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햇살이가 내 규칙을 알면서도 계속 스티커 먼저 달라고 말을 하는 거다. “햇살이 2차 첨삭 끝내면 스티커 줄게요~” 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계속해서 스티커를 달라고 말했다.


‘스티커를 주지 않으면 첨삭을 시작조차 안 하겠다’라는 예감이 든 나는 결국 스티커를 건넸다. 겉으로 짜증은 절대로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약간 짜증을 내고 있었다. ‘2차 첨삭하면 준다고 여러 번 말했는데, 왜 이렇게 스티커를 달라고 하지?’하면서. 두 개의 스티커를 받아 스티커 판에 붙인 뒤 아이는 내게 불쑥 손을 내밀었다. 어리둥절하면서 스티커 판을 보는데, 바로 보였던 칸이 있었다. ‘선생님과 가위바위보 하기’(가위바위보를 해서 선생님을 이기면 스티커를 하나 더 받을 수 있다.)


아이는 나랑 가위바위보를 하고 싶어서 스티커를 빨리 달라고 재촉한 것이었다. 뭔가 자연스럽게 상상이 됐다. 스티커 판을 보니 선생님과 가위바위보 하기 칸까지 모아야 하는 스티커는 두 개 남았는데, 마침 피드백에서 ‘좋아요’가 두 개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빨리 스티커를 달라고 했겠지. 나는 속으로 ‘햇살아 미안해..’를 삼창하며 아이와 가위바위보를 했다.



2. 포켓몬 카드를 집어넣지 않은 이유


비슷한 일로는 이런 일도 있었다. 햇살이가 포켓몬 카드를 보여주며 이것저것 자랑을 했다. 원래 수업 시간에는 수업에 방해될만한 걸 절대로 꺼내게 하면 안 된다. 그 날은 햇살이가 10분 가량을 일찍 왔고, 교실에 아이들도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아이가 열심히 모은 카드에, 정말 멋지다는 듯 진심을 다한 리액션을 해주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햇살이가 물었다.


“선생님은 어떤 포켓몬을 좋아하세요?”


“선생님은 이브이! 그리고 펭도리도 좋아해.”


내 말을 들은 아이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꼬부기도 좋아해요?”


“꼬부기? 응! 꼬부기도 좋아하지~ 귀여우니까!”


그렇게 대화를 한 뒤 이제 수업 시간이 되었다. 햇살이가 이제 포켓몬 카드를 집어넣으면 좋겠는데, 아이는 계속 포켓몬 카드를 뒤적이며 보느라 정신이 팔려있었다. “햇살아 이제 수업 시작하니까 카드 넣자.”라고 아무리 말해도 “잠깐만요”라고 대답할 뿐 넣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다른 아이들이 수업에 들어올까 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포켓몬 카드로 아이들이 정신에 팔리면 수업 분위기를 다시 잡는 게 매우 힘들어진다.


기다리다 못해 따끔하게 한 번 더 말을 하려던 순간 아이가 나에게 불쑥 카드를 내밀었다. 받아보니 꼬부기 포켓몬 카드였다. 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 카드 선생님 줄게요.”


나는 그제야 햇살이가 나에게 왜 좋아하는 포켓몬을 물었는지, 내가 대답을 이브이랑 펭도리라고 하자 왜 약간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는지-자신에게 없는 카드여서-, 뭘 찾느라 그렇게 카드를 뒤적이고 있었던 건지 한 번에 이해가 갔다. 받은 꼬부기 카드를 소중하게 핸드폰 케이스 안에 넣어두었다. 그러면서 나는 ‘카드 이제 넣으라고 따끔하게 말했으면 큰일날 뻔했다..!’하고 안도했다.


화려해진 나의 핸드폰 케이스. 한 명의 햇살이가 스티커를 붙여주기 시작하자 너도나도 붙여주기 시작했다.



3. 세상에얼마나 자랑하고 싶었을까.


레벨업을 준비하고 있는 햇살이가 있었다. 레벨업을 하기 전엔, 이해도(독서 퀴즈 평균 점수)를 올릴 필요가 있다. 그래서 원장님이 그 햇살이에게 점수가 낮게 나왔던 독서 퀴즈를 다시 보게 하라고 하셨다. 문제는 햇살이가 이미 읽었던 책은 너무 다시 읽기 싫어했다. 어르고 달래도 책 읽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탓에 수업 진행이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일단 그날 수업을 위해 쉽고 얇은 2레벨 책을 가져왔다. ‘햇살이 이제 2레벨업 얼마 안 남았죠? 우리 이 책으로 재밌게 수업해봅시다!’라고 말하며 동기부여를 해주니 그제야 마음을 잡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책으로 본 퀴즈도 재시험을 봐야 하는 점수가 나오고 말았다.. 그날 나는 재시험 결과가 나와 책을 다시 읽기 싫어하는 햇살이를 붙들고 끝까지 수업을 했다.


2레벨 책으로 수업을 하다 보니 어느 시점에서 속으로 약간 후회를 했다. ‘그냥 1레벨 책 재시험 준비를 시킬걸. 아직 햇살이에게 2레벨은 무리였구나.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그래도 그날 햇살이는 내 도움을 받아 2레벨의 형식에 맞는 줄글의 독서 감상문 쓰기도 끝냈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속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햇살이는 1레벨 재시험 준비를 시키리라’ 다짐하고 있던 때였다.


수업 시간 내내 묘하게 울상이던 햇살이가 엄마가 데리러 온 걸 알자 표정이 화사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내가 말리기도 전에 자신이 쓴 독서감상문을 들고 엄마를 향해 뛰어갔다. 흥분한 햇살이의 목소리가 교실까지 들려왔다. “엄마! 이것 봐. 나 2레벨 책 읽고 독서감상문도 이만큼 썼어.” 그 목소리를 듣는데 마음이 짠해졌다. 세상에,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을까. 햇살이는 요즘 1레벨 책에서 재시험 점수가 많이 나와 시무룩해져 있던 상태였다. 그러니 재시험 부담이 커져 1레벨 책을 다시 읽고 싶어하지 않은 거였다.


집으로 가면서 나는 2레벨 책으로 진행한 오늘 수업이 햇살이에게도 많이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햇살이에게는 그렇게 힘든 2레벨 책 수업이 차라리 1레벨 책 수업보다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레벨업을 싫어하는 아이는 없구나 다시 느낀 순간이었다. 수업 시간엔 레벨업을 해도 무표정에 덤덤한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레벨업 소식으로 보호자님꼐 연락을 드리면 햇살이들이 너무 기뻐했다거나, 온 집안에 레벨업 했다고 자랑했다는 소식을 듣곤 한다.



4. 선생님이 너무 바빠요


저학년이 특히 몰린 시간대가 제일 바쁘다. 고학년에 비하면 저학년들은 매일 하는 커리큘럼도 하나씩 넘어가면서 물어본다던가, 사이트 로그인부터 어려워한다거나, 수업 때 책을 읽기보다는 말을 더 많이 하고 싶어하는 장난꾸러기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손이 많이 가는 저학년들을 봐주느라, 고학년이 알아서 척척 할 일을 하고 있으면 잘 못 가는 경우가 많다.


어느 날 원장님을 통해 한 보호자님의 클레임을 듣게 되었다. 우리 교실에 있는 고학년 햇살이가 선생님이 너무 바쁘셔서 자신에게 잘 못 온다는 것이었다. 그 햇살이가 오는 시간표를 보니 특히 저학년들이 많이 몰린 시간이었다. 건의를 한 햇살이는 알아서 자신의 일을 스스로 척척 잘해서 나에게 큰 힘을 주는 아이였다.


그래도 선생님이 햇살이에게 도움을 주어야지, 거꾸로 선생님이 햇살이에게 도움을 받게 되는 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햇살이는 레벨업 욕심도 있어서 적극적으로 잘 해주는 아이였다. 햇살이 입장에서는 저학년이 많아 비교적 소란스러운 우리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게 좋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원장님과 충분히 상의한 끝에 햇살이의 교실을 바꿨다. 햇살이와 헤어지는 건 아쉬웠지만 이게 고학년인 햇살이에게는 더 좋은 방향이라 생각했다. 반을 바꾸고 얼마 안 되어서 행정 실장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교실이 바뀐 뒤 햇살이가 한참 동안 바뀐 반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고. 선생님 교실 문 뒤에서 서성거렸다고. 그럴 거라고 전혀 예상 못한 내가 놀라자 실장님이 조심스럽게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제 생각에는 햇살이의 건의사항은 정말로 반을 바꿔 달라는 의미라기보다는, 그냥 선생님도 자신에게 와주고 관심 가져주면 좋겠다는 표현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반성했다. 이 세상에 ‘어른스러운 아이’는 없다고. 고학년이고 성숙해 보였던 햇살이었기 때문에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했을거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그래서 고학년이 많고 차분한 분위기의 반이 햇살이에게 더 맞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햇살이도 그저 내 눈길을 한 번이라도 더 받고 싶고, 시선을 마주치고 대화하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을 뒤늦게야 하게 되었다.



논술 학원 선생님 일을 하며 느끼는 건, 아이들은 정말 섬세한 존재라는 거다. 언젠가 한 햇살이는 나에게 귓속말로 우리 학원에서 주는 카라멜이 먹고 싶다고 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갈 준비를 하는 햇살이에게 카라멜을 주는 걸 까먹을까 봐 큰 소리로 말했다. “햇살아, 카라멜 먹고 싶다고 했지! 선생님한테 받아가!” 그러자 햇살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자기는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에게 햇살이가 슬며시 다가와 또 귓속말로 이렇게 말했다. ‘자기는 애들 많은 데서 그렇게 크게 말하면 창피하다고.’ 아! 그랬구나! 나는 귓속말로 햇살이에게 알겠다고 한 뒤 아이들 몰래 조용히 햇살이에게 카라멜을 챙겨주었다.


첨삭은 싫지만 스티커는 좋은 아이, 포켓몬 카드를 선생님께 드릴 생각에 열중한 아이, 선생님이 저학년에게만 가서 아쉬운 아이, 카라멜은 받고 싶지만 큰 소리로 불리는 건 싫은 아이. 아이들은 이렇게 저마다 자신만의 세계가 있어서 내가 섬세하게 접근해야겠구나 배우곤 한다. 아직 자라는 중이기에, 자신만의 세계를 넓혀가고 확충해야 하는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을 대할 때 어른의 사고방식에 끼워 맞추려고 하면 그 아이의 세계를 너무 좁게만 보게 된다.


가끔 몇몇 사람들이 아이의 한 일부 행동만 보고 ‘버릇 없다’ ‘요즘 아이들은 영악하다’ ‘알 거 다 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만난 아이들을 보면 아이들은 정말로 생각보다 큰 악의가 없다. 정말로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친절히 알려줘야 한다.


오히려 어른인 우리가 한 아이를 ‘버릇없네’라고 판단함으로써 기분 좋은 명쾌함을 얻으려 한 게 아닌지 돌아보면 좋겠다. 누군가를 판단하고 낙인 찍어버리는 건, 자신이 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우월감도 갖게 한다. 그 우월감에 사로잡힌 건 아닌지.


우리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요즘 햇살이들을 보면서 나를 거쳐 갔을 수많은 어른들을 생각한다. 그 어른들이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알 수 있다. 분명 어른들의 수많은 배려가 있었기에, 나는 나의 세계를 지킬 수 있었을 거라고. 성장하며 내 세계를 쑥쑥 넓혀갔을 것이라고.


요즘 나는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내가 본 걸 떠올린다.


나에게는 너무나 편안했던 의자가 햇살이들에게는 너무 높았던 것을.


허공에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그 작은 발들을.


Q.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나만의 방법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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