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방 주인이 추천하는 그림책
걸어요
문도연 글·그림 / 44쪽 / 15,000원 / 이야기꽃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는 3월 말, 문도연 작가의 첫 번째 책 『걸어요』가 출간되었다. 가방을 메고 초록색의 수풀 사이를 미소를 띤 채 걷는 한 사람. 표지와 ‘걸어요’라는 제목을 보고 걷기 좋은 봄에 어울리는 책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더구나 내가 사는 제주를 연상시키는 그림이 있어 더 반가웠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떠오르는 책이 한 권 있었다.
야시마 타로의 그림책 『까마귀 소년』이다. 이 책은 내가 책방을 운영하는 중간중간 힘이 들 때 떠올리는 책이다. 상황이 어려워도 묵묵히 내 앞에 놓인 길을 가다 보면 남들은 발견하지 못하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고 나 스스로 빛날 수 있다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다.
『까마귀 소년』과 『걸어요』가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걷는다는 행위만 나타나 있을 뿐이지만 삶의 자세를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걸어요』의 걷는 사람은 주변 상황이 바뀌는 걸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분다고 걷기를 멈추지도 않는다. 주어진 상황에 따라, 자신의 형편에 따라 걸을 뿐이다. 삶도 비슷하다. ‘내 삶의 주인은 나’라고 하지만 내가 모든 걸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 그럴 때 통제되지 않는 현실을 아쉬워하고 탓하기보다 ‘타박타박’ 내 삶을 살면서 스스로 즐거움을 찾는 것도 주체적인 삶의 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런 모습이 능동적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소극적으로 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부지런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시간을 낭비하며 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삶의 모습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신이 선택했다면 비록 통제할 수 없더라도 현재 상황을 즐기는 것, 타인의 삶과 내 삶을 비교하지 않는 것, 그것이 온전한 내 삶을 사는 방법이 아닐까?
『걸어요』의 걷는 사람은 무엇을 위해 걷는지, 어딜 향해 걷는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림도 길이나 목적지 중심이 아니라, 길 위를 열심히 걷는 사람과 그 옆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풍경이 중심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지만 걷다가 아름다운 풍경을 만난다. 당장은 무엇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나의 현재와 나의 주변에서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것 또한 내 삶을 사는 방법일 것이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을 쉬지 않고 ‘타박타박’ 걷고 있다. 걷는 속도와 방향, 이유, 방법 등은 모두 다르겠지만 내 삶에 이미 존재하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잠시 멈춰서 생각해볼 일이다.
김지연_제주 북스페이스 곰곰 책방지기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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