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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an 06. 2023

타박타박 내 삶을 사는 사람

그림책방 주인이 추천하는 그림책

걸어요

문도연 글·그림 / 44쪽 / 15,000원 / 이야기꽃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는 3월 말, 문도연 작가의 첫 번째 책 『걸어요』가 출간되었다. 가방을 메고 초록색의 수풀 사이를 미소를 띤 채 걷는 한 사람. 표지와 ‘걸어요’라는 제목을 보고 걷기 좋은 봄에 어울리는 책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더구나 내가 사는 제주를 연상시키는 그림이 있어 더 반가웠다.

“걸어요, 뚜벅뚜벅, 타박타박.”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떠오르는 책이 한 권 있었다. 

“땅꼬마는 바보 멍청이라고 하건 말건, 날마다 타박타박 걸어서 학교에 왔어.” 

야시마 타로의 그림책 『까마귀 소년』이다. 이 책은 내가 책방을 운영하는 중간중간 힘이 들 때 떠올리는 책이다. 상황이 어려워도 묵묵히 내 앞에 놓인 길을 가다 보면 남들은 발견하지 못하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고 나 스스로 빛날 수 있다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다.


『까마귀 소년』과 『걸어요』가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걷는다는 행위만 나타나 있을 뿐이지만 삶의 자세를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 누군가와 만나면 만나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 불면 부는 대로, 혼자 가야 할 때는 혼자 가야 하는 대로. 걷다가 지치면 잠깐 쉬면서 차 한 잔 마시고.”


『걸어요』의 걷는 사람은 주변 상황이 바뀌는 걸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분다고 걷기를 멈추지도 않는다. 주어진 상황에 따라, 자신의 형편에 따라 걸을 뿐이다. 삶도 비슷하다. ‘내 삶의 주인은 나’라고 하지만 내가 모든 걸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 그럴 때 통제되지 않는 현실을 아쉬워하고 탓하기보다 ‘타박타박’ 내 삶을 살면서 스스로 즐거움을 찾는 것도 주체적인 삶의 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런 모습이 능동적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소극적으로 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부지런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시간을 낭비하며 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삶의 모습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신이 선택했다면 비록 통제할 수 없더라도 현재 상황을 즐기는 것, 타인의 삶과 내 삶을 비교하지 않는 것, 그것이 온전한 내 삶을 사는 방법이 아닐까?


『걸어요』의 걷는 사람은 무엇을 위해 걷는지, 어딜 향해 걷는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림도 길이나 목적지 중심이 아니라, 길 위를 열심히 걷는 사람과 그 옆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풍경이 중심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지만 걷다가 아름다운 풍경을 만난다. 당장은 무엇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나의 현재와 나의 주변에서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것 또한 내 삶을 사는 방법일 것이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을 쉬지 않고 ‘타박타박’ 걷고 있다. 걷는 속도와 방향, 이유, 방법 등은 모두 다르겠지만 내 삶에 이미 존재하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잠시 멈춰서 생각해볼 일이다. 


김지연_제주 북스페이스 곰곰 책방지기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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