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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전화벨

by 신선경






양치질과 샤워를 하는 중에도 세워 둔 휴대전화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로션을 바른 후 머리를 말려야 하나 싶을 때 메시지가 왔다.


[ 가게에 혼자 있을 거니까 6시쯤 와 ]


소진에게서 온 답장이었다. 거울 앞에 서서 드라이기를 내려놓고 미용실에 전화를 걸었다. 아내가 나간 이후로 선우도 집 밖을 거의 나가지 않았었다. 지금 행색이 데이트보다는 서울에서 자연인 다큐를 찍기에 딱 어울렸다.


머리를 자르는 동안 장미꽃을 주문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1층 꽃집이 자주 일찍 닫아서 걱정했는데 마침 ‘카탈리나’와 ‘참오브파리’가 남아있다고 했다. 좋아하며 웃을 소진을 떠올리자 눈썹이 들썩거렸다.


[ 엄마가 가게에 오셔서 7시에 건너편 카페에서 봐~ ]


시간을 보니 5시였다. 무인함에서 꽃을 꺼내고 집으로 다시 가려던 참에 전화벨이 울렸다.








4층 | 청담미용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저 찾으셨다고요.


미용실 열림 버튼이 눌리자 입구를 보고 있던 지화자가 쏜살같이 달려갔다.


-아이고오~ 우리 유나씨~ 바쁜데 내가 부른 거 아니에요? 오호호홍

-아니에요, 안 바빠서 왔어요.

-그래요 그래. 우리 커피나 한잔하자고요~~


원장은 유나의 팔짱을 끼고 카운터 뒤쪽 탕비실로 데려갔다.


-며칠 새 얼굴이 핼쑥해졌어! 원래도 내 얼굴 반만 하면서~~ 설마 다이어트하는 거야? 아니면 신발 사장이 부쩍 일을 많이 시키나? 아우! 원래 친한 사이가 더 그렇다니까~


상대의 대답은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 원장은 쉬지 않고 말하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어마마! 더치커피 사둔 게 딱 떨어졌네~ 애 둘 낳고 보니까 내가 이래요~ 오늘은 그냥 저거 먹읍시다. 괜찮지 자기?


원장은 한 번도 더치커피를 사본 적이 없었다. 미용 손님은 가공 커피와 오렌지주스면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본업보다 중요한 얘기를 해야 했기에 없는 소리를 했다. 그저께 오픈한 곳에서 받아먹은 더치커피 가격이 말에 힘을 실어줄 것 같아서 말이다.

얼음을 꺼내 유리컵에 담고 네스프레소 시티즈 전원 버튼을 눌렀다. 몇 초 후 드르륵 소리와 함께 크레마가 얼음을 찰랑였다. 유나에게 완성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네며 원장도 마주 앉았다. 그리고 바로 호구조사가 시작됐다. 고향은 어디인지, 부모님 연세와 형제지간, 남자 취향까지. 거품 속에서도 당찼던 얼음은 어디 가고 검은 물만 불어났다.


유나는 그녀가 부를 때부터 직감하고 있었다. 지난주 가게에 와서 신발을 주문하며 사귀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 왔었다.


-아이고 우리 원장님, 또 이러신다. 우리 매니저는 지금 연애에 관심 없어요~ 결혼 생각 없고 일에 이렇게 열심이라니까


남자가 눈치를 채고는 먼저 선을 그었으나 원장은 한 번 웃어줄 뿐이었다. 연애에 왜 관심이 없겠어? 마음에 드는 짝을 못 만났으니 그렇지! 내가 다 해결해 준다 이거야. 속으로 힘차게 외치며 나가던 지화자였다.

오늘 아침, 가장 오래 근무한 건물 미화원이 가게로 유나를 찾아왔었다. 점심시간에 4층으로 올라올 수 있겠냐는 원장의 말을 전했다. 남자에게는 밥을 먹고 온다는 말만 하고 나왔다. 결혼까지는 아니어도 다른 이성을 만나 이 미친 상황을 끊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네, 저는 직업이나 나이도 상관없어요. 호적에 이상 없는 사람이면 되는데 그런 것도 확인해 주실 수 있나요?

-어머~ 자기야! 나 청담미용실 지화자야~~ 그런 의심스러운 멘트는 서운하려고 해~~


그때 유나 바지 주머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어디야?

-가게 바빠?

-혹시 4층이니?

-... 응.

-내려와 얼른.


남자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계속-

매주 화, 수요일 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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