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발이 준 선물
지은아.. 병원에 검사하러 다녀올게..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가 다시 또 입원을 할 거라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잠시 검사하고 평소 일상으로 복귀할 거라 믿었다. 재발과 전이로 항암치료를 하면서 몸이 조금씩 약해지기는 했지만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많은 추억과 좋은 기억들을 쌓고 싶었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으나 그 시간 또한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코로나라는 팬데믹이 처음으로 심각하게 오면서 요양 병원에 있었던 엄마를 만나고 면회하는 게 쉽지 않았다. 자주 못 만났던 터라 만나면 꼭 앉고 포옹을 하였다. 같이 생활하지 못했기 때문에 엄마의 상태를 일일이 파악하기는 어려웠지만 엄마와 소통하며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했다. 무엇이든지 잘 먹고 맛있게 먹었던 엄마가 항암 이후 점점 맛을 잃어 갔고 그렇게 엄마의 건강 상태에 적신호가 오는 것 같았다. 정말 괜찮은가? 먹고 난 후 자주 구토증상이 일어나는 엄마 상태에 심상치 않음을 느꼈던 우리 가족은 진료를 받고 검사를 해야겠다고 판단이 들어 다시 병원에 간 것이다.
금방 돌아올 거야..
그렇게 금방 돌아올 거라고 믿었던 엄마의 입원 생활은 끝나지 않은 경주를 시작하게 되었다.
입원절차를 밟았고 보호자 없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은 점점 보호자가 급히 필요한 상황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실시간 어머니의 상황을 간호사와 통화하며 직접적으로 확인했고 갑자기 열이나며 악화되기 시작한 엄마의 상태가 위급상황이 되면서 아버지는 결국 병원에 조치를 취하고 달려가 엄마 곁을 지켰다. 아버지의 빠른 판단과 정성으로 간호한 덕에 다행히 응급 상황들의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엄마는 1인실로 옮겨 추후 경과를 지켜보며 회복되길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아버지에게 들려온 이야기는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기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엄마의 상태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답답하기만 했다. 호스피스병동은 면회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엄마를 향해 호스피스병동으로 급히 갔다. 아버지가 안내한 그곳에서 엄마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그 순간 마르고 핏기 없이 휠체어를 타고 앉아 있는 엄마를 처음 마주하였다. 황달에 지친 모습이 역력한 엄마 얼굴을 보며 찢어지는 가슴과 슬픔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그 마음을 가다듬고 엄마 손과 몸을 꼭 감싸주었다. 암에 걸리기 전 혈액순환이 안된다는 딸의 손을 만지며 엄마의 체온으로 온기를 나누어 주었던 엄마 손이 차가웠다.
지은아.. 엄마 배즙 먹고 싶으니깐 그거 사줘..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아이 같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늘 엄마가 나의 보호자가 되어 내 처지를 걱정하던 든든한 엄마였는데 그 씩씩함을 온대 간데없고 그저 지금은 힘없이 보호받아야 하는 아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 기억들은 내 가슴을 후벼 팠고 지금도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는다.
내 몸이 건강하여 엄마를 위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간병을 하며 엄마 곁을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사방이 막혀 버린 상황에 면회조차도 어렵게 되어 입원한 건물만 빙빙 돌며 쳐다봐야 하는 현실과 말라가고 움직임이 둔해지는 엄마를 보면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고통스럽기만 했다. 나는 이 회사에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관두고 싶었다. 하지만 감정과 이성적인 마음의 갈등 속에 현실을 직시하며 마음을 다잡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고민했다.
지은아.. 정신 차리자.
그렇게 나와 우리 가족에게 그 모든 상황들은 절망스럽고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최선을 다하여 보내기로 마음먹었고 나는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갖기로 했다. 지금 내가 할 일은 엄마의 생명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내가 주어진 그 자리를 지키며 지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엄마와 함께 보내며 나는 엄마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삶과 죽음이라는 마지막 끝자락에 있는 가운데서 엄마가 남기고 싶은 게 무엇일까? 엄마의 소망이 무엇일까?
육십 평생 엄마의 일생을 생각해 보니 그동안 엄마는 내가 아닌 가족을 위해 살아왔다. 엄마도 본인 인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 자신의 것을 구하지 않고 오로지 가족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었다. 그것이 이 세상을 누리지 못하는 엄마의 초라함과 안타까움으로 보일수 있겠지만 엄마는 알았을 것이다. 인생은 잠시 피었다 지는 꽃과 같다는것을 그래서 인생에서 누릴수있는 복이 전부가 아니라는것을 말이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두 남자의 영혼을 위해 끝까지 놓지 않았던 엄마의 삶과 마음을 통해 나는 진정한 사랑을 배웠다. 또한 신앙을 남겨주고자 했음을 깨달았다. 비록 나약한 이 몸이 썩어 없어질지라도 영원한 것을 추구하며 다 함께 만날 그날을 향해 엄마는 소망을 갖지 않았을까?
그런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희생한 어머니의 사랑에 나는 감사와 존경함을 표하고 싶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희생은 가치 있는 희생이었음을 믿는다. 이제 나는 엄마가 있는 영원한 나라 본향을 향하여 달려갈 것이며 꽃이 지는 그 순간까지 이 땅에서 주어진 내 삶을 엄마에게 받은 사랑 전하며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꽃을 좋아하셨던 엄마.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