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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Jun 22. 2022

꼬마 구름 파랑이

아이와 토미 웅거러의 <꼬마 구름 파랑이>를 읽었다. 이 책을 열 손가락이 넘치도록 읽었는데도 아이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이 책을 책장에서 빼온다. 여러 책과 섞여서 찾기도 힘든데 아이는 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면 보물 찾기를 하듯 책을 뒤져가며 가져온다. 읽어주는 나로서는 하도 많이 읽었더니 눈을 감아도 각 페이지에 펼쳐져 있는 그림이 다 기억이 난다.


<꼬마 구름 파랑이>에서  꼬마 구름 파랑이는 어른 구름이 겁을 주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상을 이곳저곳 여행을 한다. 이곳저곳에 흔적을 남긴 파랑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 인사가 되고 심지어 신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어느 날 파랑이는 서로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사라질 때까지 파란 비를 내린다. 색이 달랐던 사람들은 같은 색을 갖게 되고 더 이상 싸움을 하지 않는다.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도끼를 들고 서로를 죽이는 모습은 아이와 함께 보기에 조금은 불편하다. 이 책을 가지고 깊은 대화를 나누려고 시도했지만 나의 설명이 쉽지 않아서 인지 아들은 알듯 말듯한 표정만 짓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파랑이 덕분에 사람들이 더 이상 싸우지 않게 되었다는 말은 한다. 그림책을 읽는 이유가 아이가 다양하게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이기에 읽을 때마다 아이의 반응에 호응해준다.


어제는 책을 읽고 나서 한 시간이 흐른 후 아들이 나에게 툭 한마디 던졌다.


"엄마, 그거 알아? 대한민국에도  파랑이 도시가 있는 거?"

"파랑이 도시? 어디에 있는데?"

"지중해 마을에 가면 지붕이 파랗잖아. 지붕이 파란 것을 보니 분명 파랑이가 다녀갔을 거야."


아산에 가면 그리스의 산토리니 마을이 연상되는 '지중해 마을'이란 곳이 있다. 파란색 지붕과 흰 벽으로 지어진 집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런 곳이다. 어린이날에 아이와 그곳에 갔었는데 그때를 기억하고  파랑이를 떠올린 거다.


파랑이가 다녀간 마을이라는 아이의 답변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이에게 아산에서 싸움이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파랑이는 왜 다녀간 거야라고 되물었다. 나에게서 질문이 나올거라고 생각못한 아들은 잠시 당황하더니 웃으면 대답했다.


"엄마, 사람들이 자기 집에서 싸우면 우리는 모르잖아. 파랑이는 알걸."


또다시 피식 웃음이 났다. 격렬하게 남편과 싸우지는 않지만 가끔 데시벨이 올라간 대화는 주고받는다. 아들이 엄마, 아빠의 몸짓이 없는 싸움을 기억해서 다른 집도 싸운다고 느끼는지는 모르겠다. 파랑이만 아는 싸움이라니.. 남편에게, 아이에게 화를 내도 파랑이가 알 거라고 생각하니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싸움을 말려주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늘 존재한다고 여긴다면 덜 싸우게 될까?


지중해 마을에 가면 '파랑이' 생각나고,  남편과의 의견 충돌이 이어지면  순간에도 파랑이가  머릿속에 등장할  같다. 아들 덕분에 익숙했던 것들에 새로운 이미지가 덧씌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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