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리 May 13. 2024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선택하는 기준

어떤 사람, 어떤 시간, 어떤 일이든 아무 생각 없이 이어지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각각 자기만의 기준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하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내내 고민해 보았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가장 많이 사들이고 있는 것은 책이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스스로 책을 고르고 사기 시작한 것은 20대 초반이었다. 제대로 책을 산 것은 30대 초반인데 도서정가제가 실시되면서 책을 함부로 생각 없이 사지 않게 되었다. 그때부터 책을 고르는데 신중해지고 기준이 생겼다. 10대에는 순정만화, 판타지 소설, 무협소설, 세계명작을 많이 읽었었다. 만화방을 하던 이모 영향도 있지만 그저 재미있는 책이 좋았기 때문이다. 20대에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여행을 자주 다니지는 못해서 여행 에세이를 주로 읽었고 30대에 접어들면서는 심리학이나 다양한 산문집까지 그 범위가 넓어졌다. 나는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게 어려웠고 나만 이렇게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게 힘든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나의 문제와 나의 상황에 따라 달라졌는데 기준은 점점 명확해졌다. 이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작가가 되었다. 검증된 작가만을 선택하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따라가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작가를 만나면 그 작가의 책을 전부 사들이고 싶어졌다. 모든 책을 전부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면 고민 없이 사려고 한다. 대표적인 작가는 이병률, 이승희, 최은영, 최진영, 정세랑, 박준, 김소연, 은희경이다. 나열하고 보니 민망하게도 대부분 검증된 유명한 작가뿐이다. 또 다른 기준은 제목이다.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제목만으로도 사게 하는 책이 있다. 좋아하는 작가인 데다 제목까지 좋으면 정말 스스럼없이 사게 된다. 잘 모르는 작가인데 제목이 마음을 흔들고 반하게 되면 그때도 산다. 하지만 그렇게 사고 실패한 책이 많다 보니 사기 직전까지 신중해지고 싶은데 제목에 홀라당 넘어가 버리니 손을 묶어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제목에 넘어가 장바구니에 제목에 반한 책을 담고 있으니 누굴 탓하랴. 그저 그게 나의 기준이구나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책을 고르듯 사람도 고를 수 있을까? 책은 사물이어서 내가 마음에 들면 사면되는 것이지만 사람은 일방적으로 고를 수는 없으니 기준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 그러나 그 기준 안에 들어오지 못한다면 결국 관계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함께하고 싶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내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같이 있을 때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다. 믿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내향형 100%인 나는 같이 있는 시간이 불편하면 참을 수가 없다. 어릴 때부터 심술 가득한 얼굴에 틱틱거리는 말투로 주변 사람을 많이도 불편하게 만들었었다. 낯을 가려서라고 핑계를 대보기도 하지만 사람을 상대할 줄 몰랐고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미소 짓는 얼굴, 따뜻한 말 한마디, 다정한 손길이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 좋다. 다정한 침묵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은 함께 있어도 불편하지 않고 침묵의 시간도 힘들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다. 그동안 지나온 나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라이프스타일이 비슷한 사람과 오래 함께할 수 있었다.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술 마시고 놀러 다니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 당시의 나는 흥청망청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놀았는데 그때는 그게 좋았고 친구들과도 잘 맞았다. 그 와중에도 책을 보고 여행도 가고 블로그도 열심히 쓰고 했었던 것을 보면 내 취향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었던 것이라고 포장해 본다. 


취향이 확고해진 것은 30대 초반이 넘어서였다. 그때부터는 정적인 것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고 여전히 좋아하는 일은 어린 왕자처럼 오래도록 일몰을 보는 일, 비 오는 날 산책하는 일, 뽀득뽀득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을 걷는 일, 책 속 문장을 옮겨 적는 일, 기차 타거나 케이블카를 타는 일이다. 점점 더 좋아지기 시작한 일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는 일, 조용한 카페에서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일, 꽃을 보고 감탄하는 일, 초록의 숲을 산책하는 일,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 밤이 되면 달을 찾고 별을 찾는 일, 파도치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일 등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해 주길 바라며 살았지만 쉽게 만나지 못했다. 분명한 취향은 사람을 가리게 되고 부담스럽게도 했다. 함께하는 일이 즐겁지 않으면 좋아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함께할 때 불편하지 않고 취향이 비슷하며, 고마움과 미안함을 아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마음이 예쁜 사람을 사랑한다. 미안할 때 미안하다고 하고 고마울 때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누군가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지는 것은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렇게 마음을 드러낼 줄 알고 상대의 마음도 생각하는 그런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표현이 익숙하지 않고 온전히 나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것이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단 하나의 이유밖에 없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그 사람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기 때문이다.

기준이라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고 상황에 따라 바뀌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취향과 사람을 만나는 기준은 변하기 않기를 바라고 바란다.


내가 사랑하는 풍경들을 첨부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바다는 잘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