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담의 골짜기를 지날 수 있는 사고방식
흔히 공평함을 이야기할 때 주로 사용하는 예시가 있다. 첫 번째는 누구나 죽는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다는 것이다(물론 부자가 시간을 더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겠지만).
시간은 그만큼 누구에게나 공평히 주어진 자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온전히 나에게 달려있다. 그래서 시간의 활용에 대해 미쳐있었나 보다. 프랭클린 다이어리, 3P바인더, PDS노트 등 안 써본 게 거의 없을 정도로 시간 사용에 집착이 있었다. 지금은 그냥 시간단위를 잘게 쪼개서 기록하기보다, 그날 그날 해야 할 일을 적고, 동그라미 치는 정도로만 하고 있다. 너무 시간 기록 그 자체에 몰입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제임스 클리어의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 나오는 단어인 낙담의 골짜기는 내가 어떤 일을 꾸준히 하고 있지만 눈에 띄는 성과가 보이지 않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그 상태를 말한다.
나는 항상 낙담의 골짜기 앞에 무너졌었다. 이번 연휴에도 낙담의 골짜기 앞에 잠시 무너졌었다. 약 4개월 간 나름 치열하게 나의 루틴을 지켜왔지만 체감할 수 있는 성과는 없었다.
맨몸운동을 4개월 중 1일 빼고 전부 완성했고, 러닝도 2일 빼고 다 완수했다. 책도 13권을 읽었다. 일기도 꾸준히 쓰고 있다. 설거지를 비롯한 집안일도 매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튜브도 다시 시작했고, 브런치 글은 올해에만 63개를 썼다.
그런데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이때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 '이렇게 계속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이게 정말 내 인생에서 필요한 걸까?' 떠오른다. 이런 잡스런 생각들이 떠오를 때면 나는 그만두곤 했다.
센님의 '애니만 봤더니 일본어를 잘하게 된 건에 대하여'를 읽었을 때 가장 와닿았던 구절이 있다. 바로 의미 없는 시간은 없었다는 것이다. 코난을 보면서 일본어를 시작했던 그 모든 시간들. 혼자 시작했던 유튜브. 이런 시간들을 계기로 지금의 자신이 있다는 것이었다. 낙담의 골짜기를 먼저 지난 센님의 깨달음이었다.
문득 '이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라고 생각이 든 내게 이 시간들이 나중에 돌이켜 보면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나는 20대 때 방황을 시작했다. 첫 입사한 대기업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나왔다. 정말 오래 공부해서 성공의 길에 들어섰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너무 힘들어서 관뒀다. 그때부턴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고 싶어서, 생산직 공장도 들어가 보고, 숙식 노가다도 해봤다. 석사출신이라 위촉연구원으로 근무도 해봤다. 보험 설계사도 해보고, 카페를 개업했다가 망했다. 스타트업 제조업 마케팅부서로 입사해 고생도 오지게 해 봤다. 정말 별의별 일을 다 해봤지만 정말 좋아하는 일은 찾기 쉽지 않았다.
참 후회를 많이 했다. 그냥 대기업에서 버틸걸. 첫 대기업 관두고 합격한 다이소에 근무할걸. 등 다양한 말도 안 되는 후회를 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이게 다 내 인생에 도움이 되고 있다. 어디에 있냐 보다 거기서 무얼 배우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은 걸 남한테 전달할 때 내 기존의 경험, 시간들이 가치가 생기는 것도 알았다.
의미 없는 시간은 없었다. 다만, 내가 의미를 찾지 못했을 뿐. 그 값진 시간들에 내가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을 뿐이다. 지나간 시간들, 경험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은 그 값진 경험과 시간들을 활용하는 것이다.
보험설계사로 일한 경험 때문에 여행자보험, 자동차보험을 다이렉트로 설계할 때 한치의 망설임도 없다. 주변에서 보험사고가 나면 내 노하우를 알려준다. 회사 직원들의 보험 분석도 해주고, 알고 있는 보험설계사도 많아 물어볼 곳도 많다.
예전에 나사를 박던 생산직 공장 옆에서 미팅을 할 일이 생겼다. 다시 가보니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그곳에서 일주일간 나사 한 개당 2원을 받으면서 열심히 박았던 게 생각났다. 9시에 출근해서 2시간에 10분 쉬면서 일했다. 미팅하던 대표님께 그 옆에서 나사 박았다고 얘기하니까 엄청 놀라시면서 '열심히 사셨네요~'란 말도 들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일하는 건 아주 편하고 좋다. 지금에 감사할 수 있다.
이때 경험했던 것들을 풀어내면 또 하나의 콘텐츠가 될 테고, 의미가 될 것이다.
결국 의미 없는 시간은 없었다. 지금의 낙담의 골짜기도 나중이 되면 하나의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느낄 것이다. 바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자. 하루하루 차곡차곡 쌓여 무엇인가 변해있는 날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성급하게 굴지 말자. 내가 겪는 모든 것들, 모든 시간들이 나에게 의미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