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드 2

살아있음

by harrymerry

몇 달 전, 내 세계는 박살이 나버렸다.

공들여 만들어 논 그것은 너무 작은 모래알 크기로 갈기갈기 조각이 나서, 나는 무너져 버렸다.

아주 아주 비참하게.


사고였다.

너무 놀랐고, 난생처음 공황을 겪었다.

괜찮은 줄 알았다.


사고 이틀 후부터 공허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내 몸은 바로 여기에 있는데, 내 영혼은 여기에 없는 기분.

말 그대로 속 빈 껍데기.

가슴이 뻥 뚫렸지만 피도 안 나는 메마른 공허함.

왼손을 들어 올려 꼼지락거려보지만, 이 손은 내 것이 아니었고

말하고 있는 내 자신에게서 낯섦을 느꼈다.

웃음도 가짜였다.

뭐지?


병가 승인을 위해선 진단서가 필요하다는 사장님의 말에 터덜터덜 병원에 갔다.

평소답지 않게 잔뜩 말린 몸으로 그때의 상황과 그 후의 내 감정에 대해 얘기하니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확신으로 굳어져갔다.


"ASD(Acute Stress Disorder, 급성 스트레스 장애)입니다. 맞아요. 내버려 두면 PTSD로 이어질 수 있어요."


PTSD? 몇 년 전인가 장난처럼 유행했던 단어가 바로 내 눈앞에 있으니 그것은 공포였다.

충격으로 의사 선생님의 오른쪽 옆구리와 공기 그 사이 어딘가를 바라보며 그녀가 하는 말을 들으려 애썼다.


"... 밖에 나가기 싫으시겠죠. 그래도 바깥공기도 좀 쐬시고, 친구들도 좀 만나시고.."


그 말에 왈칵, 울음이 쏟아졌다.

억울함, 세상의 배신감, 좌절, 두려움, 공포, 처절함, 절실함.

이 온갖의 감정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토해냈지만 나를 잃은 무서움은 해소가 되지 않았다.

기억력이 나빠지고 말이 어눌해지며 하루 종일 잠이 쏟아졌다.


그래도 공허함은 계속됐다.

다채로운 색이었던 난, 회색으로 변해버렸다.

밝고 명랑했지만 회색이 돼버린 된 나는 슬프고 추웠다. 내 모습이 그리워 많이도 울었다.

이 모든 게 싫고 너무 괴로웠다.

그래서 쓰러진 상태로 가만히 있었던 나는 손을 짚고 발을 디뎠다.


그때, 나 잊었어? 하고 손을 내밀어준 글쓰기.

나는 지금 타자를 누르는 손끝에서부터 변하고 있다.

그 손끝으로 부서진 알갱이 하나하나를 이어 붙이다 피식, 웃었다.


이 부서진 파편들은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흉 진 회색과 손 물든 색이 제법 잘 어울린다는 기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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