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u May 20. 2021

삶을 노래하고 싶어서

과연 삶은 노래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라 성인이 되고 나서도 늘 나를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드는 거대한 질문이었다. 내가 살아가는 사회는 과연 사회적인가. 지극히 비사회적인 사회에서 사회적 인간이 되려는 내 노력은 과연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나는 이 사회를 비극적으로 만들어가는 데에 일조하는 구성원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아니, 내가 반드시 사회의 충실한 구성원이 되어야 하나.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그것이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그렇게 살라고 교육받아왔고, 남들도 그렇게 사니 그래야 하는 건가. 시니컬한 몽상가요, 낭만주의자인 내가 늘 짊어지고 다니며 굳이 스스로 괴롭히던 질문들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더 냉소주의자가 되어 갔다. 나뿐 아닌 대부분이 그랬다. 냉소주의자들로 가득한 세계에서 이상주의자가 되려는 몸부림으로 끝없이 쓰고, 끝없이 질문하고, 끝없이 반성하며, 스스로 갈등을 초래했다. 갈등의 근원은 나조차 나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 삶의 어느 방향으로 키를 잡아야 할지 모르니 이리저리 흔들리고 잘못된 길을 택했다 돌아 나오길 반복했다. 반복되는 일상의 반사적인 쇼핑으로 옷 한 벌을 사거나 화장품 하나를 사더라도, 내가 좋아서 사는 건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길 바라서 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다수가 만들어 놓은 ‘미’의 기준에 들려고 이러는 건지, 내가 진정 이 옷을 입고, 이 화장을 해서 스스로 만족이 되는 건지 나는 알지 못했다. 


잡지사 에디터로 일하며 나는 사람들을 좇았다. 그들이 밟아온 삶의 행적으로 이룬 결과물보다는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나 시선이 궁금했다. 나에겐 그런 걸 갖추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티스트와 그들의 아트워크를 해석하며 스스로 감각을 열고 감동했다. 에디터 일은 순전히 개인적인 이익 추구였다. 스스로 영혼을 살찌우고 나만의 삶의 태도와 시각을 갖추고, 주저 없이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배우고 축적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엔 성공과 돈, 명예를 좇는 이들도 수두룩했지만, 진정한 삶의 본질과 가치를 탐구하는 이들도 많았다. 내 안에 다른 이들의 삶의 재료가 어느 정도 쌓였다 느꼈을 때, 나는 세상 누구와도, 그리고 어떤 것과도 상관없이 스스로 흔들림 없는 중심을 잡게 되었다. 


생각보다 나는 오랜 시간 너무 나를 몰랐다. 다른 이와의 비교를 멈추니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보였다. 화려한 패션계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이 패션이라 믿는 수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나는 BYC 러닝셔츠에 청바지, 반스 운동화로만 수년을 보냈다. 그리고 자신만의 멋진 스토리를 가지고 신념으로 이어 나가는 작은 스트리트 브랜드들을 찾아 입었다. 아무도 모르는 의미지만 그들이 알고 내가 알면 그만이다. 비슷한 철학을 가지고 같은 방향을 지향하는 그들과 내가 연대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커뮤니티의 힘이라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나는 역시 나를 너무 몰랐다. 생각보다 나는 용기 있고, 나를 사랑하며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여태 엄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 숱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모자라고 허술한 대로 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 나가는 것, 그리고 그것을 마침내 실행하는 것.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스스로 사랑하고 지지하겠다는 결심. 그 모든 과정을 거치고서야 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잘 나가던 회사에 쿨하게 사표를 던지고 멋지게 태국 외딴섬으로 떠난 것처럼 보이는 과정의 이면엔 숱한 갈등과 자기혐오와 절망과 실망과 두려움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떠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나를 사랑하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그러자 내 삶이 애처로워 보였다. 내 삶은 이보다 더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션, 언론계에선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쿨병’처럼 도처에 퍼져있지만 나는 설령 그것이 촌스럽고 트렌디하지 못하다 하더라도 진정으로 삶을 축복하고 노래하고 싶었다. 삶 자체의 놀라움과 경이로움, 아름다움을 주체하지 못해 어디서든 망설임 없이 노래하고 춤추는 삶. 내가 다른 이의 눈에 어찌 비칠까 걱정 없이 인생, 그 자체를 순수하게 바라보는 삶. 아주 작은 것에도 놀라고 희망하고 절망하고 사랑에 빠지는 삶. 내 인생에 아주 잠시뿐이더라도 좋으니 생에 단 한 번이라도, 영원하지 않더라도, 지속되지 않더라도, 그런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나는 그런 삶을 누릴 가치 있는 존재이니까. 


시니컬한 몽상가이자 냉소주의자, 차가운 여자가 뜨겁고 펑키한 여름의 섬으로 떠난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고도 명료했다. 나는 삶을 온전히 살고 싶었다. 




이전 02화 도망칠 용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