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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u Jun 28. 2021

모순의 시간


이곳은 모순의 섬. 면적 21제곱 킬로미터에 인구 2천 명 남짓인 이 작은 섬에서도 사람들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혐오한다. 동시에 서로 사랑하고 연민을 품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연대한다. 태국의 외딴섬 꼬따오에 정부의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다. 나는 이곳을 망망대해에 떠 있는 ‘무정부 국가’라 부른다.


몇 년 전 섬에서 여행하던 젊은 영국인 커플이 살해됐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 섬을 ‘Death Island’라고 떠들기 시작했다. 대부분 꼬따오에서 며칠 지내다 간 게 전부인 사람들이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더 자신 있게 떠든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유튜브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잘 알지도 못하는 꼬따오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어댄다. 정작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침착하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사는 나라, 도시에선 하루에 몇 명의 사건, 사고, 살해가 일어나냐고. 


섬에 경찰서가 하나 있긴 하지만 경찰은 꼬따오 주민들이 겪는 불편을 이래저래 해결해 주는 ‘홍반장’ 역할에 가깝다. 섬에 거주하는 대부분이 외국인이기에 모두 이 섬을 빌려 산다는 마인드다. 누구도 이곳의 주인임을 자처하지 않지만, 모두 이곳을 ‘제2의 홈’이라 부른다. 그래서 로컬들은 항상 서로 조심하고 존중한다. 멕시코 유카탄반도에서 케이브 다이빙을 할 때 그 아름다운 곳을 제집보다 못하게 막 대하는 아메리칸 관광객들을 보며, 인종차별을 서슴지 않는 백인들을 보며 꼬따오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도 한몫한다. 이 작은 섬에서 서로 등져봐야 마주칠 수밖에 없다. 길 가다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열에 아홉은 미소로 답한다. 이 작은 섬 커뮤니티의 자정 능력은 거대하고 아름답다.


시스템이 없는 곳에도 여전히 시스템의 존재를 느낄 때도 있다. 꼬따오에서마저 느끼는 정치의 힘이다. 수년 전 태국 군사정권이 쿠데타를 일으킨 이후, 태국에서 사는 외국인들은 비자 문제로 수난을 겪었다. 나는 강사 시험 며칠 전 비자 런에서 90일 체류 기간 대신 7일을 받아 혼이 나간 적이 있었다. 당시 태국 고위 관료 가족이 관광을 위해 한국에 입국하려 했다 거절당했다는 이유였다. 나는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나비효과처럼 보복당했다. 아무리 작고 외딴섬에 꼭꼭 숨어있다고 해도 때론 정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잡지 에디터 생활을 그만두고 한국을 떠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 건 세월호 참사였다. 잡지 판에서 폭로된 ‘열정페이’ 사건도 있었다. 정치적 발언을 많이 하기로 유명한 맛 평론가 황교익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서민이 먹는 쌀값, 반찬값, 채솟값, 생선값 모두 정치로 결정되는 거라고. 그래서 그는 음식이 가장 정치적인 영역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글로, 또 광장에 나가 끊임없이 싸웠다. 지금도 바다에 들어가면 세월호 아이들 생각이 난다. 우리의 어그러진 정치 시스템에 희생된 수많은 약자 생각을 많이 한다. 어른으로서 나의 책임과 양심, 부끄러움, 죄책감을 오늘도 조금씩 덜어낸다. 여전히 극복하기 힘든 트라우마다.


스페인에서 배낭여행 온 친구들에게 다이빙을 가르친 적이 있다. 세 친구 중 하나가 청각장애인이었다. 물속에서 인간은 말을 못 하기에 다이버들은 모든 소통을 수신호로 한다. 그 친구는 이제야 자신에게 맞는 세상을 찾은 것이다. 물속은 지상에서의 패러다임이 유일하게 뒤집히는 곳이다. 물속에선 말 제아무리 말을 잘하는 사람의 능력도 무용지물이 된다. 들리는 사람이 더 많아 듣지 못하는 친구가 지상에서 받아왔을 혐오와 차별, 농담이 물속에선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발리나 보라카이, 꼬따오 같은 동남아시아 섬엔 유난히 동성 커플이 많다. 고국과 도시, 커뮤니티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섬에서 다이빙하며 전 세계에서 출발해 세상을 떠도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성소수자,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 마음의 장애가 있는 사람들, 소통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 중독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 인종과 출신 국가로 인해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사람들, 또 같은 이유로 누군가를 차별하고 혐오하고 무시하는 사람들.


‘파라다이스’라 불리는 이 섬에도 끔찍한 인종차별과 혐오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 세상 끝까지 도망쳐도 인간의 혐오와 차별의 본능에선 자유로워지지 못할 것이다. 인간이란 원래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혼자선 세상을 마주할 자신이 없기에 자신과 비슷한 점을 찾아 그룹화하고 내 편을 만든다. 자연스럽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편이 된다. 그 과정 자체에서 인간은 소속감을 느끼고 안전함을 느낀다. 다른 이에게 폭력을 가함으로써 자신의 안위를 우선하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인간은 그리도 위선적이고 모순적이고 약한 존재이다. 자기방어라는 핑계로 인간이 알게 모르게 휘두르는 칼날은, 그리고 선명한 칼자국은, 이 작고 외딴섬 곳곳에도 새겨져 있다. 스쿠버 다이빙 입문 코스에서 뒤로 서서 입수하는 자세가 있다. 전 세계 수많은 영어권 다이빙 강사와 다이버들은 이를 ‘Dead Mexican’ 엔트리라 부르며 다이버가 뒤로 눕는 자세로 떨어질 때 옆에 다른 이는 총을 쏘는 장면까지 연출한다. 심지어 내가 일하는 다이빙 센터엔 멕시코에서 온 강사 Manu가 있었다. 나는 절대 장난이나 농담으로라도 그런 명칭을 교육생에게 가르치지 않는다. 그리고 멕시코의 한 많은 슬픈 역사에 대해 더 공부했다. 


중국인에 대한 조소와 비하, 미얀마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국인들의 태도, 아시안을 무시하는 서양인들의 기본적인 삶의 태도를 나는 이곳에서 너무 많이 봐왔다. 내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강사를 바꿔 달라는 덴마크 가족도 있었다. 명백한 인종차별이었다. 나 역시 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로 소수자에 속한다. 소수자는 곧 약자다. ‘소수자’라는 개념은 상대적이어서 ‘다수자’에 의해 결정된다. 힘센 다수자들이 먼저 떼로 뭉쳐 하나, 둘씩 떨어져 있는 소수자들을 괴롭히고 짓밟기 시작한다. 만약 이 세상에 사는 인간의 70%가 동성애자이고 나머지가 이성애자라면, 이 세상의 70%가 여자고, 30%가 남자라면, 이 세상의 70%가 흑인이고 30%가 백인이라면? 20년에 가까이 기독교인 눈치 보느라 차별금지법도 통과 못 시키고 있는 나라, 인간의 평등권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만 국민의 평등을 보장하지 못하는 나라의 시민으로서, 나는 부끄럽다.


내가 얼마나 철없이 거만한 태도로 삶을 살아왔는지 어리석게도 내가 소수자로서 겪는 차별과 혐오와 불이익을 경험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의 각성은 꽤 늦었다. 세상 모든 인간 하나하나는 어떤 식으로든 모두 소수자에 속한다. 나는 이제라도 늦지 않았길 바라며,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내가 해온 혐오와 차별을 담은 말과 행동이 ‘그저 농담’으로 정당화되진 않았는지 돌아봤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자연스럽게 노출되어온 ‘씨꺼먼스’ ‘맹구, 없~다’ ‘싸장님~ 타이 마싸~지’ 같은 코미디는 모두 소수, 약자를 비하하고 조롱함으로써 다수를 위한 재미를 찾았다.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았고, 아니 불편한 사람들을 헤아리지 않았고,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거나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다수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연약하고도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다. 문화를 통해 서서히 스며드는 고정관념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하다.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는 대부분 여성, 인종,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서 기인한다. 그럼, 대체 뭐로 웃기냐, 삶의 재미는 어디서 찾냐, 불평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차라리 그런 코미디로 웃을 바에 웃음기 없는 무미건조한 세상에서 차별과 혐오, 비하 없이 사는 게 훨씬 좋다.


가장 끔찍한 건 동일 집단이라는 미명 하에 휘두르는 권력이다. 나는 이 섬에서 의도적으로 한국인 커뮤니티를 멀리했다. 한국 다이빙 동호회를 기웃거리지 않은 이유와도 같다. 여자 강사는 대부분 ‘얼굴마담’으로 치부되며, 예쁘장한 얼굴과 볼륨감 넘치는 몸매, 나긋한 성격이 강조된다. 누구도 여자 강사의 다이빙 실력과 스킬엔 관심이 없다. 다이빙은 물론 여럿이 함께 하는 거지만, 동시에 독립적이고 개인적이고 사적이다. 그래서 시작한 꿈같은 다이빙을 한국인 커뮤니티의 혐오와 차별, 괴롭힘 때문에 결국 그만둔 여자 강사들을 이 섬에서 많이 봤다. 과중하게 일하다 보수도 제대로 못 받고, 성차별과 성희롱에 시달리다 도망치듯 이 섬을 나가는 어린 친구들은 한국인 커뮤니티에 속하지 않은 한국인이자 여자인 나에게 보복의 공포와 부담에서 벗어나 하소연하곤 했다. 나는 그녀들이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우길 바랐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한국인 커뮤니티에 복종하지 않고, 그들의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웨스턴 샵에서 영어로 다이빙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이 섬의 많은 한국인은 나를 적대시하며 경계했다. 자신들의 그늘로 들어와 알아서 기지 않는다는 이유다. 나를 찾아 이 섬에 들어오는 한국인 다이버 손님들이 늘자 본격적인 시기와 질투, 훼방이 늘기 시작했다. 사돈에 팔촌이 집을 사도 배가 아픈 게 한국의 속담이다. 한국에서 이곳으로 도망 온 나는, 여전히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으로부터 절망했다. 지긋지긋하면서도 안타까웠다. 이곳에서 지내는 한국인들 역시 모두 저마다 다른 이유로 한국을 도망쳐왔을 텐데 여전히 세상을 보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한국의 것 그대로 고집하고 답습하는 모습이. 내가 만약 한국 커뮤니티에서 다이빙 강사 생활을 했다면, 나는 이렇게 오랜 시간 꾸준히 다이버로 성장하지도, 꼬따오에 머물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여성 다이버들이 진로 상담을 해오면 무조건 영어를 배워 웨스턴 다이빙 센터에 일하기를 권한다. 그리고 항상 이 말을 덧붙인다. 웨스턴 센터에 그런 문제들이 아예 없다는 게 아니라 그나마 ‘덜’ 하다는 것. 언제나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여자들이다. 특히 젠더 이슈는 절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작은 섬과의 인연이 시작된 게 2015년이다. 타국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면 어느새 한국인도 아니고, 태국인도 아니고, 이도 저도 아닌 나를 발견하게 된다. 시스템이 잘 갖춰진 한국의 도시 생활에서 나는 사회적 동물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왔다. 그러다 이 섬으로 도망쳐 들어왔다. 느슨한 시스템과 아름다운 커뮤니티에 반해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지만, 이곳에도 때론 정치가 있고, 때론 먹고사는 문제가 앞설 때도 있다. 다이빙이 좋아서, 이걸로 먹고살기로 작정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했지만, 그걸 실행에 옮기며 좋아하는 걸 지켜 나아가는 과정에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타협도 해야 하고, 사업 수완도 발휘해야 한다. 모두 내가 그리 썩 잘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삶이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시스템에서 벗어나려 도망친 이곳에서 또 다른 시스템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니!


트로피컬 아일랜드,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햇빛 쨍쨍 일 거라 생각하지만, 365일 일 년 내내 날이 좋은 곳은 지구상에 단 한 곳도 없다. 지구가 돌고 달이 차고 기울며 바람이 바뀌고 물이 바뀌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도, 바람 부는 날도, 심지어 이곳마저 추운 날도 있다. 삶도 그러하다. 자연의 이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상을 바라고 떠나온 곳에서도 시간은 흐른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상은 현실이 된다. 가끔 한국에 가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에겐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삶이 고달픈 건 여기나 거기나 마찬가지야. 뭐가 더 나아서 꼬따오에서 사는 게 아니야. 적어도 선택은 내가 했다는 거지.”


여유를 찾아온 곳에서 여유를 잃어갈 때도 있다. 바쁜 스케줄에 치이고, 사람에 지친다. 그 와중에도 여유를 잃지 않는 유러피안들의 DNA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다. 삶을 온전히 즐기는 모습에 그렇지 못한 나는 질투가 날 정도다. 내 DNA에는 애초에 ‘쉼’과 ‘여유’가 없다. 휴가에도 열심히 노느라 더 피곤한 한국인의 DNA를 나는 어쩌지 못한다. 여유가 있어도 쉬는 방법을 나는 아직도 모른다. 그래서 외국에서 한국인은 성공하기 쉽다. 한국에서 하던 거 반만 하는데도 일하는 웨스턴 다이빙 센터에서 나는 가장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열정적인 강사라는 평을 받는다. 스스로 노력도 많이 했지만, 여성이라고 아시안이라고 차별하지 않고 서포트해주는 다이빙 센터와 보스를 만난 덕에 나는 센터를 대표하는 트레이너가 될 수 있었다. 


어딜 가나 나에게 가장 힘든 건 사람이다. 모든 것이 발가벗겨지는 이 섬에선 아무도 자신을 속일 수 없다. 도시의 욕망과 이기심을 그대로 가져온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섬에서도 그것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 역시 그렇다. 수년 전 꼬따오는 섬에서 생긴 쓰레기를 어쩌지 못하고 큰 산을 만들며 지냈다. 누구도 꼬따오가 이렇게 여행자들에게 사랑받는 섬이 될 거라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화물선을 통해 주기적으로 태국 본토로 모두 실어 나른다. 나에게 다이빙을 배웠던 한국인 손님 중 하나가 바이크를 타고 섬을 돌다 이걸 보고 ‘미개한 나라’라며 불평했다. 그가 살고 있는 한국 서울과 수도권은 이제 더 이상 쓰레기를 묻을 곳이 없어 문제인데, 그건 모르는 모양이다. 자신이 버린 쓰레기가 결국 어디로 가는지 이 섬에서는 그게 눈에 보여 불편한 것뿐, 모든 게 가려지고 감춰진 도시 생활자라고 자신이 더 우월한 사회 시민인 건 아니다. 


한국에선 ‘로켓 배송’을 혁신의 상징처럼 떠벌리지만, 그로 인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니 우리가 보려고 하지 않는 곳에선 그 빠름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다. 그로 인한 탄소 배출과 환경오염도 심각하다. 모든 게 빠르고 편리해지는 만큼 더욱더 많이 생겨나는 희생자들, 그리고 점점 더 이기적이고 염치없어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만드는 사회, 시스템, 세상, 나는 그런 세상에서 최대한 멀어지고 싶을 뿐이다. 이 섬에선 물건을 하나 온라인으로 주문해 일주일 안에 받으면 축배를 들어야 할 정도이지만, 나는 더 이상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의 ‘빠름’을 자랑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계획대로 되어야 안심이 되는 ‘컨트롤 프릭’인 나에게 어쩌면 이 작은 섬이 그래서 더 잘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꼬따오보다 훨씬 규모가 큰, 이웃 섬 코사무이에만 가도 도로를 쌩쌩 지나다니는 차들과 넘치는 사람들에 어쩔 줄 모르는 나다. 이 섬에서 몇 년 지내다 떠난 친한 친구 Dav가 타던 바이크를 얼마 전 세븐일레븐 앞에서 봤다.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된다. 이 섬에 사는 대부분 사람들은 바이크를 주차해도 키를 꽂아 놓는다. 그걸 훔쳐 가 봤자 이 섬 안이다. 술 취한 밤, 실수로 서로 다른 바이크를 타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모두 주인을 찾아간다. 이 섬에 사는 친구들끼리 주고받는 ‘꼬따오 총량의 법칙’ 농담이 있다. 한 사람이 이 섬에 들어오면, 누군가는 반드시 이 섬을 떠나 균형이 맞춰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7년간, 단 한 번도 이 섬에 사람이 지나치게 넘쳐난다고 느낀 적이 없다. 모든 것엔 다 자연스러운 이치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며 산다. 선 곳이 달라지면 풍경이 달라진다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내가 변하지 않으면 파라다이스에서도 전쟁을 치른다. 변화를 얻으러 떠나온 곳에서 정작 자신이 변화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파라다이스에서 불행한 건 도시에 갇혀 불행한 것보다 더한 고통이다.


오늘도 이 섬에선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자신만의 싸움을 이어간다. 이 섬에 들어오는 순간, 모든 문제가 마법처럼 한 번에 사라지진 않는다. 죽을 때까지 절대 끝나지 않을 싸움이다. 괴물과 싸우다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다만, 껴안고 있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과 방법은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나와 화해를 시도한다. 한국에서, 서울에서 무던히 시도하고 또 실패했던 일이다. 나의 정체성과 자존감, 그리고 중심을 찾아 나가는 훈련은 오늘도 계속된다. 과정은 외롭고 더디고, 또 고되다. 나에게 상처 주는 것도 나요, 나를 용서하는 것도 결국 나다.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는 것, 내가 마음에 드는 내가 되는 것, 이런 변화가 이 섬에서, 나에게, 일어나길 바란다. 가장 중요한 건 내 마음의 상태다. 마음에 낙원을 지으면 감옥에 있어도 낙원이요, 마음에 지옥을 지으면 낙원에 살아도 지옥이다. 이 한 가지 무거운 깨달음을 앞으로도 실천하며 살고 싶다. 무엇보다 다행인 건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 이 섬에 사는 우리 모두, 이방인이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이자 동지가 된다. 각자의 문제에서 도망쳐 이 작고 외딴섬으로 모여든 사람들, 자신을 사랑하고 탐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이 섬은 늘 사랑과 존중이 넘친다. 모순의 섬에서 모순의 시간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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