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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Jun 20. 2024

도시파업자가 숲속에서 길어낸 무해한 욕심

숲으로 간 고래의 노래.


서울은 나에겐, 늘, 다가갈 수 없는 태양이었다. 그럼에도 태양으로 돌진하는 이카루스처럼 나는 서울을 욕망하고 달려들었다. 서울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나면, 나는 또다시 터덜터덜 태양계의 행성 중 하나인 집으로 돌아갔다.      


모두가 고만고만하게 살던 시절,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재개발과 상업화로 위성도시로 밀려나 유년시절을 보냈다. 인천으로 대학을 다니면서도 수업만 끝나면 1호선에 뛰어들어 집으로 가는 역을 지나쳐 신도림에서 2호선을 갈아타고 홍대역으로 향했다. 밤새 홍대 클럽에서 알바를 하고 다시 2호선 첫차에 몸을 싣고는 1호선을 갈아타 집으로 돌아갔다.


잡지사 에디터가 되어 강남으로 통근할 때도 퇴근만 하면 홍대에 들러 강남의 때를 씻어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빽빽한 시루 속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는 콩나물 중 하나가 되어 하루에 왕복 4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수년간 지하철에서 서서 보냈다. ‘이건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잠깐 지상으로 존재감을 내보이는 지하철이 당산철교를 지나며 아름다운 노을과 서울의 야경을 보여줬다.   

   

그럴 때면 나는, 잠시 그 모습에 매료되어 언젠가 내 삶도 언젠가 한강 변을 수놓은 불빛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낭만에 빠졌다. 서울은 요망했다. 그렇게 나를 들었다 놨다 구워삶으며 내 삶에서 서울을 필수불가결의 존재로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에 동조했다.      


하지만 그런 삶을 지속하기엔 나는 너무 예민하고 공감을 잘하면서도 시니컬했다. 나처럼 서울을 욕망하며 모여든 사람들이 만든 시스템에는 사기와 정치와 비열함이 가득했다. 잘못된 일에 대해 분노하고 당하고만 사는 사람들의 편을 들자 서울은 나에게 더 계산적이고 냉철해지고 정치적이 되어야 한다고 훈계했다. 그것이 마치 대단한 깨우침이라도 되는 듯 적당히 타협하고 애교도 좀 부리고 턱을 내리고 눈을 깔라며 어기적거리는 걸음과 음흉하고 오만한 미소로 나에게 합류를 권했다.      


일찌감치 서울에서 자취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건 내가 언제까지 서울을 버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에겐 서울, 그리고 그보다 못하지 않은 온갖 욕망과 환락의 찌꺼기들이 고여있는 위성도시에서의 경험이 삶의 전부였다. 도시가 싫은 건지, 그 도시를 채운 사람들이 싫은 건지, 아니면 그 도시에 있는 나 자신이 싫은 건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암묵적으로 합의된 도시의 규율에 따르며 서로를 감시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며, 그리고 사회가 공식적으로 서로의 삶을 훔쳐보라 공인한 SNS로 서로의 삶을 훔쳐보며 끝없이 반복되는 자기혐오와 자격지심, 피해의식과 싸우는 삶은 결국 겉으로 다른 이들에게 좋아 보이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단 한 번도 내 삶에서 무언가를 선택해 보지 못했다. 선택을 학습해 본 적이 없으니 삶에서 이따금 마주하는 선택은 늘 주저됐고, 실패했고, 움츠러들기를 반복했다. 그럴수록 ‘더, 더, 더’ 끊임없이 나를 채근하며 종착역 없이 순환반복되는 지하철 2호선처럼 살았다. 자신의 내면을 더 채우지는 못할망정 스스로 갉아먹고 착취하는 생활이 지속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대학을 갔고, 대학을 졸업했으니 취업을 했고, 취업을 했으니 결혼을 해야 할 거고, 결혼을 하니 애를 낳고, 그러려면 대출을 받을 테니 앞으로 영원히 열심히 일해야겠지.      

내 안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 공허함을 감추기 위해 자존심만 강해졌다. 상대적으로 자존감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높은 자존심과 낮은 자존감, 그 사이의 간극의 모순을 스스로 알아챌수록 자기혐오는 더 극단으로 치닫았다. 도시는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자아와 현실의 콤플렉스가 충돌할 때 더욱더 비대해지는 나르시시스트로 가득하다. 모두들 아닌 척하고는 있지만 나와 별 다를 게 없었다. 그래도 다들 티 안 내고 잘 해내고 있는 듯 보였다.      


거대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서울에서의 모순되고도 외로운 방황의 시간을 버티게 해 준 건 내가 두 발 벗고 찾아가 만난 예술가들이었다. 나처럼 정치적이고 교활하지 못했던 사람들, 하지만 예술로 자신만의 작은 방패를 삼는 사람들. 하지만 예술가가 될 용기가 없었던 나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 작은 방패마저도 없다는 자괴감에 휩싸였다.


몇 년 후, 내가 열렬히 추앙하던 브리티시 록 밴드의 아이콘, 노엘 갤러거의 단독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만해야 할 것 같아,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옮기는 건.

이제 진짜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함께 있던 포토그래퍼에게 대뜸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사표를 냈다. 


수많은 예술가의 삶을 훔쳐다가 나의 삶에 덧붙이는 건 이제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개체(Media)로서 책과 영화, 예술가로부터 얻은 간접 경험을 이제 나만의 경험,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Source)와 본질(Essence)을 찾는 과정에 쏟아야 하는 때였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스스로조차 낯 뜨거운 기만의 게임을 끝내야 할 때였다. 본질에 대한 갈증이 쌓여 자연스럽게 생겨난 직관이었다.                     








“이 풍경은 과연 내가 선택한 것인가?”  

   

2호선 지하철 당산철교를 지나며 탐스럽게 물든 한강의 노을을 보며 스스로 던진 질문이었다.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이 달라진다. 풍경이 달라지면 관점이 달라진다. 하지만 도시에서 태어나 온 시간을 보낸 나는 비교 대상조차 없었다. 내가 그토록 서울을 추앙했던 건 질문과 의심이 허용되지 않았던 맹목적인 사회적 학습의 결과였다. 무엇보다 나는, 서울의 한강변 아파트 불빛 중 하나를 원하지 않았다. 도시 자체나 도시 안의 사람들을 싫어하는 거라면 일단 도시를 떠나면 된다. 하지만 내가 어디에 있든 나 자신이 싫은 거라면 차원이 다른 문제다. 나는 아무래도 모든 것에 해당하는 듯했다.  


나는 오랜 시간 스스로 ‘희생자’를 자처했다. 사람들은 ‘희생자 스토리’를 좋아한다. 불행한 사람일수록 다른 이의 불행한 이야기에 친숙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희생자는 늘 비난할 누군가를 찾는다. 유령 같은 ‘가해자’를 만들어놓고, 나는 더 깊은 불행 속으로 제 발로 들어간다. 


내가 선 곳의 풍경을 바꾸기로 선택하면서 나 자신을 더 이상 ‘희생자 스토리’에 끼워 맞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누가 더 불행한가 겨루는 경쟁을 그만두기로 했다. 스스로 희생자가 되는 걸 멈추면, 더 긍정적인 일이 일어난다. 


“이 삶은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인가?”  


다른 이의 삶에는 질문을 잘도 해왔으면서 정작 내 삶엔 스스로 제대로 된 질문을 해본 적이 없었다. ‘뭘 입을까, 뭘 먹을까, 뭘 살까’ 하는 질문은 하루에도 수없이 하면서도 정작 내 인상의 목적과 방향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은 늘 모른 채 해왔던 나는 책에서만 읽었던 ‘주도적이고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으로 떠나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서울을 떠나는 것도 모자라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해외의 작은 외딴섬, 그것도 깊숙한 바닷속으로 풍경을 바꿨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 역시 누구도 모르는 섬에서 평생 써온 언어 대신 새로운 언어를 쓰며, 이렇게 떠나지 않았다면 평생 만날 일 없었을 수많은 나라의 서로 다른 문화에서 모인 사람들을 만났다. 가엽고 오만했던 나는, 서울은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줄 알았다. 또 다른 대체품을 찾아 내 자리를 메꾼 도시가 한편으론 서운하고 또 한편으론 후련했다. 도시에서 내가 쌓은 직업적 경력은 자연에 기대어 사는 삶에서 한 줌 모래와도 같았고,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되는 게 왠지 모르게 짜릿했다. 


나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그리고 바다와는 한 발 차이인 아담한 섬에서 내가 사랑하는 책과 음악과 영화, 삶의 예술가들에 둘러싸여 춤추고 노래하고 글을 쓰며 삶을 노래했다. 그리고 나는 자존감과 자존심의 간극을 조금씩 매워가며, 나를 인정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갔다. 


열 손가락을 다 꼽을 햇수를 바닷속과 정글 속에서 보내며 나는 아마도 다시는 도시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너무 변한 내 모습을, 도시 역시 반기지 않을 테다.   









나는 한 마리 고래가 되어 한국의 아름다운 숲 속으로 돌아왔다 ⓒ 조하나


                            

10년을 서울에서, 또 다른 10년을 바닷속에서 보낸 나는 한 마리 고래가 되어 한국의 아름다운 숲 속으로 돌아왔다. 10년 전 보고 기사를 썼던 영화 <Her>가 현실이 되고, 돈만 있으면 누구나 우주여행을 떠날 수 있으며, 로봇의 무한한 생명과 강인함을 빌린 인간의 몸에 칩을 심은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아무도 의심치 않는 시대, 오히려 나는 진정한 삶의 의미와 본질을 찾는 여정을 계속하려 한다. 도파민에 중독된 뇌가 갈망하는 더 강한 외부 자극 대신 여백을 채울 내면의 풍요로움을 찾아 가꾸려고 한다.      


도시에 살 땐 내가 가진 것보다 없는 것이 더 잘 보였다. 그것을 채우려 더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소비자’가 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나는 이 세상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전하며, 창조하기 위해 살아있다. 풍요로움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자연에 깃들어 있다. 나무, 바다, 모래, 꽃, 구름, 태양과 달, 눈과 비, 자연의 모든 것에 풍요로움의 본질이 있다. 더 많은 ‘좋아요’를 바라는 전전긍긍하는 마음 대신 세상과 사람들, 자연의 풍요로움에 대한 신뢰와 안정감을 가지고, 그 풍요로움의 기운을 품고 자연의 모습과 닮은 삶을 살며 나의 ‘과민성 공감 증후군’을 긍정적이고 발전적으로 쓰는 것, 그것이 내가 도시파업자가 되어 깨달은 삶의 한 조각이다.      



나는 진정한 삶의 의미와 본질을 찾는 여정을 계속하려 한다 ⓒ 조하나



2호선 서울지하철의 순환이 아닌 자연의 흐름과 순환대로, 해와 달의 주기와 한 달, 한 계절, 한 해를 알아채고 이에 어울려 살기 시작하며 나는 도시에 살 때보다 훨씬 건강해지고 풍요로워졌다. 자연은 어떤 목적도 없이, 어떤 계산도 하지 않고, 어떤 이익도 취하지 않고, 매 순간 나의 안녕을 돌본다.    



자연은 매 순간 나의 안녕을 돌본다 ⓒ 조하나



  

나는 김창완 밴드의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노래 가사처럼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않으며, 바다에서 데려온 내 마음 고래 한 마리를 품고 담대하게, 오만과 편견의 굴레에서 빠져나와 하루하루 살아간다.      


손에 잔뜩 흙을 묻히고는 ‘무(無)’의 소리, 거대한 자연의 침묵의 결에 몸을 맡기고 서늘한 바람 속 별들의 수다에 귀 기울인다. 아직 지구에 닿을 시간이 없었던 별들을 생각하며, 우주의 무한을 깨닫는 데 여전히 한계에 부딪히는 인간으로서의 겸손함을 배우며, 우주의 그 무한하고 거대한 힘에 압도되어 허무주의에 빠지는 대신 ‘나는 곧 바다요, 숲이요, 우주’라는 사실을 매일 복기하고 실천한다.      




거대한 자연의 침묵의 결에 몸을 맡기고 서늘한 바람 속 별들의 수다에 귀 기울인다 ⓒ 조하나



이 책에는 도시파업자가 무해한 욕심으로 길어낸 삶의 풍경과 의미, 내면의 성장, 인생의 중요한 질문과 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또 다른 삶에 대한 따뜻한 응원의 마음이 담겼다. 더 이상 나는 ‘희생자’가 아니다.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걸어 나와 들숨과 날숨을 천천히 내쉰다. 모든 것은 한없이 아름답고 간결하다. 언제나 빛을 품고, 누군가 그늘을 드리우면 아낌없이 그 빛을 나누리라.              



James Vincent McMorrow ‘G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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