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하나 Oct 14. 2024

16. 오이, 오이! 마이 올드 차이나!

 새벽 5시면 그녀는 알람 소리 없이 저절로 눈을 뜬다. 작은 섬 곳곳 수탉들의 합창 소리가 알림 시계로 바뀐 지 오래지만 이제 그녀는 그 도움마저도 필요 없다. 그녀는 일어나자마자 발코니 창문을 활짝 열고 푸르스름한 새벽녘 공기에 섞여 들어오는 초록빛 물 내음을 크게 들이마신다. 겨울이 없는 섬이어도 태양이 외면하는 한밤엔 이슬이 맺히고 밤새 간절히 빛을 기다리던 초록빛 풀과 나무들은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 지쳐있다. 아직도 야생의 숲과 정글이 반 이상을 차지하는 섬에서 나름 늠름하게 또 하루 버텨내고 살아남았다는 생명들의 의지가 샘솟는 이 시간을 그녀는 사랑해 마지않았다. 그 살아남은 생명 중 하나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새벽 5시는 그녀에게 익숙한 시간이다. 홍대 클럽 거리를 집 삼았던 몇 년간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첫차를 타는 시간이었고, 신사동 골목을 집 삼았던 몇 년은 마감을 마치고 택시를 타고 돌아오거나 혹은 반대 방향 사람들로 가득한 1호선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을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녀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건 1호선이었는데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너무 딱 붙어 서 있어 나중에 내리고 나면 섞여버린 향수 냄새에 이유도 없이 자신이 더럽혀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부천역 승강장에서 멀리 오는 지하철을 바라볼 때면 인천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사람들로 이미 꽉 차버린 객차가 마치 뚱뚱한 김밥처럼 보였다. 그녀 역시 곧 그 김밥의 속 재료가 될 참이었다. 다음 역, 또 그다음 역, 열차가 정차할 때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다 어떻게 타는 거지, 하면서도 어떻게 또 꾸역꾸역 창밖의 사람들이 사라지는 기적이 이뤄졌다.

      

 그녀는 어떨 땐 딱 붙어선 낯선 이가 듣는 음악을 이어폰 너머로 함께 듣고, 어떨 땐 누군가가 보는 영상을 어깨너머 함께 보고, 또 어떨 땐 누군가의 등에 슬쩍 기대 졸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가 잊지 않은 건 조금이라도 움직일 공간이 있다면 최대한 여자가 서 있는 곳으로 붙거나 그마저 여의찮으면 들고 있던 백을 가슴 앞으로 끌어당겨 안거나 엉덩이 뒤에 바짝 갖다 붙였다. 그게 그녀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였다. 남자들은 자신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며 불쾌해했지만, 그건 팔 한 짝 들어올리기도 힘든 출근길 지하철에서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에게 가슴과 엉덩이를 도둑질당하는 여자들이 많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니 생기는 반작용이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남자들로 인해 자신들도 잠재적 범죄자로 싸잡혀 억울하다면, 그들이 진정 화를 내야 할 건 진짜 범죄를 저지른 남자들이지 여자들이 아니다. 세상에는 작용과 그에 따른 반작용이 있고, 늘 반작용의 편에 서야 했던 그녀에겐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의 크고 작은 성추행은 하루의 예고편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로 빼곡한 객차 안에서 생면부지의 여자들은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녕을 빌었다.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눈빛을 보면 그들은 어떻게든 서로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부실하더라도 조그만 방패막이 되어 주었다. 신도림역에서 모두가 해방되었을 때 함께 밀려오는 안도감과 분노는 언제나 수치심이 되어 오롯이 그녀들의 몫이 되었다. 대한민국 수도권에 사는 직장인이 하루의 1/6, 인생 전체의 20%를 지하철에서 보낸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아니, 그러기 싫었다.

      

 이제 그녀는 조그만 스쿠터를 달달거리며 5분이면 닿는 바닷가 다이빙 센터로 출근한다. 며칠 전 섬에 있는 유일한 관공서 앞 널찍한 운동장에서 그녀는 클로드에게 스쿠터 운전하는 법을 배웠다. 어릴 때 자전거를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알아서 배울 때와는 달리 클로드는 어디에선가 엉성한 무릎 보호대와 헬멧까지 구해다가 한사코 싫다는 그녀에게 씌웠다. 전동식 스쿠터의 오른쪽 핸들은 그녀가 당기는 만큼 같은 빠르기로 앞으로 나아갔고 처음엔 그녀의 빠른 성질을 그대로 알아들어 몇 번이고 중심을 잃어 비틀거렸다. 그때마다 클로드는 바짝 따라붙으며 종종걸음으로 스쿠터 뒷좌석을 힘으로 끌어당겨 속도를 늦췄고 그녀는 왼쪽 핸들의 브레이크 대신 두 발을 땅에 붙여 세웠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습관적으로 자신을 나무랐지만, 클로드는 ‘허허허허’ 웃으며 아무 말 없이 ‘천천히’라는 다이빙 수신호를 보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혼자서 천천히 운동장 두어 바퀴를 돌게 되었을 때 그녀는 마른 흙뿐인 코너를 돌다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그녀의 한쪽 무릎에서 천천히 피가 배어 나왔고 “어이쿠, 며칠간 다이빙은 다 했네” 하고 클로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날 그녀는 곧바로 중고 스쿠터를 구했다. 이 섬에 들어와 눌러앉는 사람만큼 또 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섬을 떠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타던 스쿠터를 비롯한 잡다한 살림살이들을 SNS 커뮤니티 그룹에서 팔았다. 스쿠터 등록증도 면허증도 필요 없었다. 온 섬을 통틀어 신호등 하나 없고 포장된 길이라곤 관광객과 여행자들을 실어 나르는 픽업 택시들이 지나다니는, 남북으로 섬을 가로지르는 길 하나에, 모든 길은 제한속도 40킬로미터로 족했다. 그런데도 가끔 요란한 굉음을 내는 더트 바이크를 타고 지나가는 젊은 유러피안들이 있었는데, 자동차로 신분을 드러낼 수 없는 섬에서 그게 그들의 유일한 낙이었다.

      

 “다이버는 다치는 순간, 물에서 아웃이야.” 케빈은 흘러내린 피가 딱딱하게 굳은 그녀의 무릎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고는 구급약품이 잔뜩 들어있는 상자를 가져와 꼼꼼히 상처를 치료했다. “왜 안 돼? 나 정말 다이빙하고 싶은데….” 입이 불쑥 튀어나와서는 어린아이처럼 칭얼대는 그녀에게 케빈은 말했다. “여기선 작은 상처도 자칫 잘못하면 감염돼 크게 고생할 수 있어. 상처가 아물 때까지만 며칠 쉬고 다이빙을 더 오래 하는 게 어때?” 그녀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다이빙을 오랫동안 하지 못한다는 건 그녀에게 더 큰 벌이었다. 섬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오른쪽 정강이에 하얀 붕대를 감고 다녔다. 대부분 스쿠터의 달궈진 배기관에 화상을 입고는 무시하고 계속 다이빙하다 감염으로 번져 바다에서 멀어지는 벌을 받는 중이었다. 섬사람들은 그걸 ‘꼬따오 타투’라고 불렀다. 


 다이빙 금지령이 내려진 후에도 그녀는 매일 아침 일찍, 이 섬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소유가 된 스쿠터를 타고 다이빙 센터로 향했다. 5분 남짓 스쿠터를 타고 천천히 달리면 일렁이는 상큼한 바람을 맞으며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사람들과 하나하나 눈 맞춤 인사를 하는 게 좋았다. 길 양쪽에 늘어선 키가 큰 야자수부터 이름 모를 키 작은 들꽃까지 모두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가끔 그 출근길이 너무 좋아 다이빙 센터에 도착하고서도 스쿠터를 돌려 반대 방향으로 한참 섬의 북쪽 끝이 보일 때까지 달렸다. 그리고 다시 다이빙 센터로 돌아와 케빈과 클로드와 인사한다. “굿모닝, 선샤인!” “굿모닝, 스윗하트!” 하고 서로의 이름을 마음껏 부른다. 그녀의 이름은 30년을 산 한국에서보다 이 섬에서 훨씬 자주 불리고 있었다. 눈을 마주치고 따뜻한 포옹을 나누며 볼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는 인사에 그녀는 조금씩 적응하고 있었다. 어떤 날은 그녀가 먼저, “티?”라고 물으면 케빈과 클로드는 “예스, 플리즈”라고 자동반사적으로 답한다. 그러면 그녀는 케빈의 미니언즈 머그잔과 클로드의 첼시 머그잔, 그리고 그녀의 노란색 머그잔을 꺼내 검은 티백의 진한 찻물을 우려내고 우유를 조금 끼얹어 차를 가득 만든다. 세 사람은 아담하고 늦은 티테이블에 앉아 모랫바닥에 맨발을 반쯤 묻고는 별일 없었던 지난밤 이야기를 나눈다. 클로드가 잠을 제대로 못 잔 티를 내며 더 까칠한 날은 새벽의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첼시가 맥을 못 췄다는 의미였다. 그녀는 언제나 밍밍하고 심심한 영국식 티에 대해 불평했고, 케빈과 클로드는 그 모습을 재밌어했다. 케빈과 클로드는 사르카즘이 섞인 지극히 영국적인 농담을 자주 주고받았는데 그녀는 사실 그중 반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보통 한국에선 대화할 때 자기 말만 하고 마는데 케빈과 클로드는 몇 마디 하고는 꼭 그녀가 잘 듣고 있는지, 잘 이해하는지 살폈다. 그때마다 그녀는 애써 고개를 끄덕였지만, 케빈과 클로드는 전보다 훨씬 천천히 또박또박 발음했다.

      

 그러다 가끔 셋이 함께 나눌 이야깃거리가 떨어지면 케빈은 “이건 한국어로 뭐라고 해?”라고 물으며 대화를 환기했다. 그녀가 대화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한 배려였다. 그녀는 또박또박 한국어로 답하고 나서 그녀 역시 잘 몰랐던 사물의 영어 단어를 물었다. 가끔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영국식, 미국식 발음이 다른 ‘바틀’이나 ‘토마토’ 같은 단어들을 끄집어내 웃음이 터졌고, 클로드는 주로 런던 사람들이 쓰는 비속어와 욕설을 잔뜩 가르쳐주었다. 그녀 역시 한국어의 찰진 욕과 비속어를 몇 개 맞바꿨다. 의미와 앙스를 아는 사람들끼리 하면 욕이었지만, 그걸 모르는 이방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건 그저 의미 없는 소리일 뿐이었다. 셋은 그걸 그렇게 서로 재밌어했다. 클로드는 특히 런던에서 친한 친구들끼리 인사할 때 쓴다는 표현 ‘오이, 오이! 마이 올드 차이나!’을 그녀에게 공들여 가르쳤다. 푹푹 찌는 더위에 나이도 출신도 언어도 문화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른 셋이 모여 앉아 뜨거운 영국식 차를 홀짝거리며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로 낄낄거리는 소박한 아침이 그녀는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아침 다이버들이 한바탕 소란을 떨고 바다로 나가면 그녀는 케빈을 도와 고장 난 다이빙 장비를 보수했다. 사이사이 다이빙을 하고 싶다는 손님을 맞이하기도 했고, 앞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파는 다와 수다를 떨다가 옆 가게에서 과일을 파는 조이에게 망고스틴의 아름다움에 대해 떠들기도 했다. 그러다 아침 다이버들이 돌아오면 이번엔 그들이 어느 바닷속에 갔는지, 바닷속에서 뭘 봤는지,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캐물었다. 벌겋고 선명한 마스크 탠 자국을 얼굴에 새긴 채 소금기 머금은 머리카락이 햇빛에 바래 미역 줄기처럼 뭉쳤는데도 그녀에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로 보였다. 아침 다이버들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오후 다이버들이 또다시 바다에 나가면 클로드는 오픈워터 코스 이론 수업을 시작했고, 그녀는 학생들과 함께 강의실에 들어가 수업을 훔쳐 들었다. 이미 형식과 오픈워터 코스를 마쳤지만, 그녀에게 15년 동안 다이빙을 가르쳐 온 클로드의 수업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지금 어차피 말해봤자 이해 못 하니 그냥 외우세요”라던 형식에게 잔뜩 주눅이 들어 배운 내용은 어차피 머리에도 가슴에도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클로드는 학생들과 질문과 답을 서로 주고받으며 그만의 독특한 유머를 섞어 마법처럼 수업을 풀어갔다. 이토록 쉽고 명료하고 다정하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사람은 그녀가 다녔던 학교를 모두 통틀어도 만나지 못했다.

      

 쉬는 시간, 무언가 홀린 듯한 표정으로 강의실을 빠져나온 그녀를 보고 케빈이 물었다. “하나, 클로드 수업은 어땠어?” 그때 케빈과 함께 티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는 붉은 머리의 남자가 보였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내 이름은 로리야. 길 건너 조금 올라가면 보이는 다이빙 센터에서 일하는 강사야. 케빈에게 네 이야기 많이 들었어.” 로리는 일어나 그녀에게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나눴다. “와… 무슨 마법이라도 부리는 것 같아, 클로드는.” 그녀는 여전히 얼이 빠진 얼굴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나도 클로드에게 다이빙 강사 과정을 배웠어. 이 섬에서 명성이 자자해, 클로드는. 영국에서 가족이 이 섬에 놀러 와 다이빙을 배운 적이 있는데, 내 동생이 물을 하도 무서워해서 다이빙을 배우다 번번이 실패한 경험이 있거든. 내가 하다 하다 안 돼서 그 친구를 클로드에게 부탁했어. 그리고 며칠 후 다이버가 되었지. 이 섬의 많은 강사들이 가르치다 힘든 교육생들 있으면 클로드에게 데려오곤 해. 이 섬에 다이빙 강사들은 많아도 제대로 된 이들은 드물어. 클로드가 경력으로나 실력으로나 진즉에 코스디렉터*가 돼야 는데… 다이빙 강사 협회 회장이 직접 와서 부탁해도 저 양반이 고집이 세서 저러고 있네. 클로드가 아무나 강사 후보생으로 안 받는데… 하나, 너 참 운이 좋다.” 로리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옆에서 케빈은 씽긋 그녀에게 윙크를 지어 보였다. 마침, 평소와 다름없는 까칠하고 피곤한 얼굴로 뭔가 혼자 중얼거리며 강의실을 빠져나와 테이블 쪽으로 다가오는 클로드에게 그녀가 다짜고짜 이렇게 외치자 그 자리에 있던 케빈과 로리라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고, 클로드는 그녀에게 쓱 눈을 흘기고는 이내 씩 미소를 반쯤 지어 보였다. “오이, 오이! 마이 올드 차이나!”


*코스디렉터: 스쿠버 다이빙 강사가 된 후 일정 기준과 자격 요건을 달성하면 올라갈 수 있는 최상위 레벨.





이전 15화 15. 웰컴 투 네버랜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