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여왕>이 되었다?!
우리가 사랑했던...그 시절....ㅋㅋ 금쪽같은 내새끼가 아니라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 가 있었다. 지금의 금쪽이가 있었다면,
그 당시에는 <생각하는 의자>가 있었다면 더 빨리 이해가 되려나.
내가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의 피디였을때는 20대였다.
당연히 결혼전이였고, 당연히 아이도 없었다 . 하지만 , 프로그램에 대한 열정은
20대의 혈기가 다 투입되었을때였으니, 열심히 매우 열심히 일했다.
그때 전문가로 나오셨던 오은영 선생님과의 인연도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당시에도 늘 유쾌하시고, 한아이 한가족들을 진심으로
대해주셔서 선생님과의 촬영은 매번 즐거웠고, 신났다.
지금의 금쪽이 프로그램과 달랐던 점은 <우아달>은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 이후의
과정과 솔루션에 큰 방점을 두었다. 다시 말하면, 일단 아이가 <달라지는 것!!>이 중요했다.
따라서, 아이의 케이스가 결정되고 나서 혹여나 달라지지 않으면 어쩌나...의 우려가 늘
디폴트 값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허무하게도 단 한번도, 달라지지 않은 아이는 없었다.
이제와서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너무 빨리 달라지고 바뀌어서 이거이거 방송분량이 안되는거 아닌가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 안에 힘껏 애써주신 오은영 선생님을 비롯한 수많은 전문가 분들의
노고 덕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포인트는, 사실 케이스가 정해지고, 문제점을 발견하고 솔루션 하는 과정에
많은 스태프들이 현장에 투입되고 , 특히 그 아이들은 많은 이들에게 집중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다. 그 당시 제작진 끼리는 아이들의 애정결핍(?)이
단기간에 엄청나게 충족(?) 되면서 아이의 문제점이 넘치는 사랑으로 나아지는게
아닌가라는 말도 있었다. 물론 이런 억측 조차도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무경험자의
시선이었던것이지만 말이다.
20대의 철없고 열정만 가득했던 피디가 어줍잖은 조언이랍시고 부모님께
뭐라뭐라 한 장면들은 그냥 미친 이불킥이다.
( 하지만, 전문가 선생님들의 디렉션이 바탕이 되어 있으니, 영 뻘소리는
아니었음을...^^ .)
하지만 20대 미혼이었던 내 기억에 촬영 현장은 아이의 문제점 앞에서
세상 가장 작은 사람들이 되어 있던 부모님들의 모습이었다.
클리쉐처럼, 처음은 늘 눈물이었다.
그 눈물의 쓰라림과 무게를 나는 20여년이 지나서야 뜨겁게 알아차리게 되었다.
인생사. 아무도 모른다. 증말.
아이의 발달이 너무나 늦고, 말을 하지 않는 사실 앞에서 나는 부끄럽게도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냥 , 조금 느리구나, 뭔가 치료를 열심히 하면
다 괜찮아지겠지.........
아이의 손을 잡고, 오은영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 출연자와 피디가 아니라, 부모와 의사선생님으로
이렇게 만나게 될줄이야......
인생사. 아무도 모른다. 증말.
여러 검사를 거치고, 아이는 당연하게도. 발달지연 판정을 받았다.
1년이상 발달이 느린 상태였고, 그 이후, 이런저런 치료들을 시작했다.
언어치료, 감각통합치료, 놀이치료 등등...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결국 어느날..선생님은 내게
"음....아무래도, 대학병원에 가봐야할거 같아."
아이는, 명백하게 모든 자폐스펙트럼의 모습이었다.
그 이후, 대학병원에 갔고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카스 검사를 받았다.
카스 (CARS- CHILDHOOD AUTISM RATING SCALE):
만 2세이상의 아동을 대상으로 자폐성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진단하기 위한 도구점수 체계.
점수는 최저 15점(정상)부터 최고 60점까지이며,
자폐와 기타 발달장애를 구분하는 경계점수는 30.0점.
30.0~36.5점은 경증 및 중간정도의 자폐,
37.0~60.0점은 중증 자폐로 분류.
한국에서는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여
CARS 점수 해석에 있어서 다소 다른 기준을 적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일부 연구에서는 한국이나 일본의 경우 CARS 점수가 25.5 이상이면 자폐로 판단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카스 검사 결과는, 중증자폐로 나왔고...
나는 그제서야, 그 결과를 받아들였다.
(라고 썼지만...한동안 온갖 몸부림 치며 부정 - 분노의 파도를 오르락 내리락 했다)
우아달 피디로, 객관적으로 부모님들에게 조언을 건네던 내가,
그 당사자가 되어보니, 이제야 그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는지. 아니
그 어떤 단어로도 형용할수 없는 바닥인지를...
온몸으로 느꼈다.
내 표현력의 한계로, 언어의 한계로 그 때의 나의감정을 표현못하겠다.
그 당시 내 상태는 폭우가 내린 후 바닥에 붙어버린 바스락거리는 나뭇잎같았는데
정말로, 아이의 치료 센터를 다녀 온 후 나는
그냥 침대에 누워 멍하니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울거나 한숨을 쉬거나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
그래도 달라지는건 없었다.
우리 아이는 달라지지 않았고,
나는 눈물의 여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