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퇴원하던 날, 의사는 회복을 위해 꾸준히 운동하기를 당부했다. 하루 1만 보를 걸으라는 조언에 따라 우리는 대개 오후 5시부터 7시 사이에 걸었다. 말이 쉽지 1만 보를 채우려면 할머니네 마을을 벗어나 발이 붓도록 여기저기 쏘다녀야만 했다. 이 날도 엄마와 나, 이모는 옆 마을의 임도를 걷고 있었다.
이웃 마을의 논 사정과 밭작물, 축사의 소들을 두리번거리며 지나가던 중 엄마의 발이 멈췄다. 파란 지붕 집 마당에서부터 길가까지 연분홍 꽃들이 군락을 이룬 곳이었다. 평소에도 들꽃을 좋아했던 엄마는 이름 모를 그 꽃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엄마와 내가 "무슨 꽃일까." "할머니 집에도 좀 심었으면 좋겠다." "장날 읍내에 나가면 혹시 살 수 있을까." 등의 대화를 시작하던 찰나 이모는 일말의 주저함 없이 그 집 마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소일거리를 하고 있던 이웃에게 "꽃이 너무 예쁘다"라고 말을 거는 것이었다.
친화적인 시골 분위기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한 터라 그 행동이 낯설진 않았다. 내가 놀란 것은 이어진 이웃의 모습이었다. 처음 보는 그 아주머니는 "그럼 좀 주지 뭐"라고 말하며 호미부터 집었다. 이모는 또 그 호미를 받아 들고 능청스럽게 "조금만 캐 갈게유"라며 꽃나무를 함께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시골 인심이 좋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이웃이 때 맞춰 건넨 종이포대로 감싼 꽃은 금세 근사한 꽃다발이 됐다. 시골 꽃집에서만 얻을 수 있는 단 하나뿐인 꽃다발이었다. 그는 꽃 이름이 달맞이꽃이라는 설명도 함께 덧붙였다. (선물 받은 달맞이꽃은 은행나무집 화단과 이모네 집 입구에 옮겨 심어 예쁘게 자리 잡았다.)
나는 잠시 그대로 서서 파란 지붕 집에 만개한 꽃나무와 내 손에 들린 꽃다발을 번갈아 봤다. 땅에 뿌리내리고 있는 저 꽃들과 우리 손에 전해진 이 꽃으로 이웃 사이는 한 뼘 더 가까워지지 않았을까 싶다.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햇살과 함께 마음이 따땃해진다.
예쁜걸 예쁘다고 말하고, 또 예뻐서 키운 것을 혼자만 보지 않고 공유하는 모습에는 계산이란 없었다. 이웃과 무엇 하나 나누고 싶어도 '좋아할까', '괜히 욕만 먹지 않을까', '혹시 부담스러워하진 않을까',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진 않을까' 열 가지 생각부터 앞서는 나로서는 그게 참 부럽다. 시골생활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눈을 마주친 이웃이 누구 건 "안녕하슈~"라고 인사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