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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ul 02. 2020

감자야 감자야 넌 어디서 왔니

알고 먹는 즐거움

시골의 식사는 단순하다. 오늘 뒷마당 대나무밭에서 죽순을 캐면, 저녁 식탁이나 다음날 아침엔 어김없이 식탁에 올라오는 식이다. 엄마는 이모와 산으로 밭으로 다니며 머위와 마늘쫑, 취나물 같은 찬거리를 따왔고 요리는 내가 맡았다. 나의 살림 솜씨를 처음 본 엄마는 '소꿉놀이' 같다며 웃었다. 나는 되려 엄마의 채집이야말로 추억을 쫓는 놀이 같다고 생각했다.


순수하게 자연에서 얻는 것 외에도 이모가 가꾼 밭이 있어 대부분의 식재료는 자급자족했다. 동네에서 구할 수 없는 것들은 10리 안팎의 유일한 대형마트인 H마트에서 샀다. 마트는 자가용으로도 10분 이상 떨어져 있었다. 시골에서 도보 생활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는 꼭 사야 하는 식료품이 생겨야만 겨우 발걸음을 하곤 했다.  


시골살이 2주 만에 처음 마트를 찾았을 때, 나는 이 곳을 좋아하게 되리라 직감했다. 한쪽 벽에 빼곡히 붙어있는 농산물 재배자의 얼굴 때문이다. 마트에 들어서면 각 농산물의 가격표 옆에도 재배지와 생산자의 이름이 있다. 덕분에 우리 집 먹거리의 출처는 보다 선명해졌다. 오늘 우리가 먹을 감자는 옆 동네의 김 아무개 씨가 재배했고, 엄마가 먹고 싶어서 산 참외는 농부 박 아무개 씨가 길러냈다.


짧은 경험이지만 출처를 알고 먹는 삶엔 여러 장점이 있다.


첫째,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H마트에 진열된 채소나 과일을 보면 수확일이 당일인 경우가 많다. 산지가 가깝기에 가능한 일이다. 직접 채집한 식재료는 두말할 것도 없다. 농약을 치지 않은 날 것들은 오래 보관할 수 없고, 채집한 수고를 생각하면 아까운 마음까지 더해져 최대한 빨리 먹어 없애게 된다.


둘째, 식탁 위 이야기가 있다. 엄마가 산에서 나물이라도 따 온날이면 이야기는 엄마의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외할머니가 집 앞에 보이는 높은 산에서 나물을 한 소쿠리 가득 캐오곤 했고, 엄마도 이모들과 나물을 뜯으러 다녔다는 등 소재가 끊이지 않는다.


셋째, 환경에 좋다. 지금의 업을 갖기 이전 첫 직장이었던 환경단체에서 '푸드 마일리지'라는 개념을 배운적이 있다. 식품이 생산될 때부터 소비자에게 도달할 때까지의 이동 거리를 뜻한다. 이 거리가 길 수록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동안 머리로만 알고 실천을 못했는데 시골에 오니 저절로 환경운동이 되는 것 같다.


알고 먹는 즐거움을 알아버린 나는 일상으로 돌아가면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다. 아무래도 생산지와 떨어져 있는 도시에서는 이것저것 따지는데 제약이 많을 테다. 생협을 이용하면 그나마 어디서 온 먹거리인지는 알겠지만 생산지와의 거리까지 극복할 수 있을까. 결국 소소하게라도 텃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삶일까. 흙 만지기를 꺼려하는 전형적인 도시 사람인 내가 시골에 머물며 별 생각을 다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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