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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Jun 29. 2023

식용유 없이 살기


기름을 먹지 않는다. 참기름도 들기름도 몸에 좋다는 올리브유도 먹지 않는다. 기름은 내가 기피하는 첫 번째 음식이다.


왜?


때는 재작년의 일이었다.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이 생겨 식단에서 육류와 기름진 음식을 모두 제외했다. 가공식품은 일절 먹지 않고 소화가 잘 되는 음식만 찾아 먹었다. 그렇게 한 달을 지나고 보니 내가 먹고 있는 음식들이 식물성 식품을 가공하지 않고 먹는 자연식물식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쭉 기름을 먹지 않는 채식인 자연식물식을 하고 있다.


초반에는 예전에 즐겨 먹던 음식이 종종 생각났다. 그리운 맛을 찾아 몇 번 기웃거렸지만 돌아오는 건 실망감이었다. 밥반찬으로 즐겨 먹던 조미김을 먹어 보니 기름 냄새부터 났다. 좋아했던 과자들도 날 배신했다. 깡이 있다는 고구마 과자도, 정말 말릴 수 없는 짱구 과자도, 명절에 즐겨 먹던 갈색 약과도 첫 입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럴 수가, 나는 지금껏 무슨 음식을 먹어 왔던 것인가. 기름 맛밖에 나지 않았다.


자연식물식을 시작하고 먹었던 기름이 들어간 음식들은 맛있기는커녕 손과 입술에서부터 느껴지는 기름기가 불쾌하기만 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치킨도 속이 부대끼기만 하고 전처럼 맛있지가 않았다. 입맛이 깨끗해지자 그동안 얼마나 기름진 음식에 길들여져 있었는지를 체감하게 되었다.




기름을 먹지 않으면 가장 좋은 점은 생활의 편리함이다. 기름 하나 안 먹을 뿐인데 생활이 얼마나 편리해졌는지 열거하자면 입이 아플 정도다. 이제는 기름을 맛으로도 건강을 생각해서도 안 먹지만, 기름을 먹지 않으면 편리하고 간소해지는 생활이 좋아서 유지하고 있다.


우선 요리할 때 기름을 쓰지 않으니 뒷정리가 편하다. 프라이팬과 가스레인지에 튄 기름을 닦을 일이 없다. 설거지도 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수세미로 가볍게 물로만 닦아내면 끝이다. 생선이나 고기, 튀김 냄새를 지우려고 초나 인센스를 피우지 않아도 된다.


그뿐이랴. 기름 냄새가 옷에 배지 않으니 한여름이 아니면 집에서 입는 옷은 자주 빨지 않아도 된다. 이전에는 볶음 요리를 자주 해먹는 편이었다. 옷에 밴 기름 냄새가 싫어서 옷을 자주 갈아입었는데 그렇게 쌓인 빨랫감이 매번 스트레스였다. 이제는 땀을 흘리지 않는다면 항상 쾌적한 상태를 유지한다. 빨래도 집안일도 덩달아 줄었다. 게다가 기름을 먹지 않으면 치약 없이 물로만 양치를 할 수도 있다. 생활 전반이 간소화된 것이다.



기름 없이 요리하기


기본적인 요리법은 찌기, 삶기, 굽기다. 주로 하는 요리는 찜 요리. 나물도 찜기에 올려 가볍게 익혀 소금이나 간장으로 간을 한다. 좀 더 고소하게 먹고 싶다면 참기름이 아닌 깨를 올린다. 김밥도 참기름을 바르지 않으니 일회용 비닐장갑이 필요 없다. 김밥은 제일 쉬운 요리라 자부할 수 있다. 기름 없이 요리하면 매번 해먹는 집밥도 전혀 수고롭지 않다.


식용유가 없어도 얼마든지 맛있는 요리를 해먹을 수 있다. 기름 없이 전을 부쳐 먹을 수 있고 잡채도 만들 수 있다. 이제는 담백한 맛을 그대로 즐긴다. 기름이 안 들어간 음식이 바뀐 입맛에 더 잘 맞다. 깔끔하고 정갈한 이 맛이 더없이 좋다. 소화도 잘 되니 속도 편안하다. 속이 편하니 마음도 편하다.




지금은 기름이 불편하기만 하다. 마치 내가 물이라도 된 양 기름과 섞이기를 거부한다. 기름진 음식을 자발적으로 입에 넣는 일은 거의 없다. 지방을 섭취하기 위해 기름을 챙겨 먹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기름 요리는 대체로 맛으로 먹는다.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웬만한 음식에 기름이 들어가면 맛있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건강과 영양을 생각한다면 기름 섭취는 자제해야 한다. 건강에 좋은 기름이란 없다. 기름은 그냥 기름일 뿐이다. 지방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섭취하는 쌀, 채소, 과일에도 들어 있다. 고품질의 지방을 섭취하고자 한다면 견과류, 참깨, 들깨 등을 먹으면 된다.




기름을 안 먹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식용유는 늘 집에 구비해 두는 식료품이었다. 그런데 기름 없이도 잘 살아진다. 그리고 바뀐 식생활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 내가 먹는 음식처럼 담백한 사람이 된 것만 같다.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아 깨끗해진 속처럼 몸도 기분도 일상도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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