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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Jun 13. 2023

편식하는 어른이가 될래요

푸드 미니멀라이프


미니멀리스트의 24가지 편식


나는 타고난 먹보였다. 어려서부터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식성이었다. 과일과 채소도 좋아했다. 곱창, 닭발, 선지, 천엽 같은 음식은 안 먹어도 웬만한 음식은 다 먹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릴 때도 안 하던 편식을 다 큰 어른이 되어 하고 있다. 성인이 되어 시작한 편식은 보통 어린이가 하는 편식과는 다르다. 단순히 음식이 맛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되지 않는다. 내가 하는 편식의 기준은 건강 관리, 환경 의식과 윤리 의식, 생활의 편의성 같은 여러 요인으로 복합적이다.


음식을 선택하는 기준이 달라진 이 시점에서 지난 식습관을 돌아보자. 미니멀라이프를 이야기할 때 더 이상 사지 않는 물건과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나열하듯이 내가 더 이상 먹지 않는 음식, 불필요한 음식에 대해 말해 보려고 한다. 먼저 주관과 기호, 식습관에 따른 점을 밝힌다.



먹지 않는 음식



우선 의식적으로 먹지 않으려 노력하는 음식은 기름과 설탕 두 가지밖에 없다. 다른 음식은 2년 전 자연식물식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멀어졌다. 사실 기름과 설탕 이 두 가지로 대부분의 음식이 걸러진다.



식용유

기름 없이 요리한다. 기름을 먹지 않으면 생활이 정말 편하다. 설거지도 쉽다. 냄새도 나지 않는다. 가끔 섭취하게 되는 기름은 (가끔 먹는) 조미김, 라면, 빵에 들어간 경우. 개인적으로 '건강한 기름'은 없다고 생각한다.


설탕

설탕은 중독을 부른다. 그래서 설탕이 들어간 음식은 피한다. 집밥만 먹을 때는 설탕을 아예 먹지 않고 일 년에 손꼽을 정도로 드물게 먹는 떡이나 라면에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동물성 식품

위염, 역류성 식도염을 계기로 끊었다. 지금은 먹고 싶지 않아서, 필요하지 않아서 먹지 않는다. 허용한다면 사랑이 담긴 김치의 젓갈 정도. 음식이 아깝게 버려져야 한다면 과감히 먹을 수 있다. 못 먹는 게 아니라 안 먹는다.


육류

지난 2년간 고기를 직접적으로 먹은 것은 세 번. 만족스럽지 않은 식사였다. 이후로 먹지 않는다.


달걀

계란은 씻어서 까고 다시 손을 씻고 싱크대와 조리 도구를 세척하는 과정이 너무 귀찮다. 살모넬라균은 너무 피곤한 존재.


유제품

시리얼을 아침으로 먹거나 식전 요거트를 챙겨 먹곤 했다. 유제품은 알레르기의 주된 원인이라서 먹지 않는다.


해산물

해조류를 제외한 해산물을 먹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영화 <씨스파라시(Seaspiracy)>를 보고 대규모 상업적 어업으로 인한 해양 생물종 파괴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배달 음식

배달 음식은 먹지 않고 집밥만 먹는다. 배달 음식은 무엇보다 일회용 쓰레기가 나오는 게 싫다. 먹는다면 (용기를 들고 가서) 포장해서 먹겠지만 그것도 과거의 일. 집밥만 먹는 게 여러모로 편하다.


가공식품

라면, 냉동식품은 먹지 않는다. 예전에 장을 볼 때면 항상 라면을 한두 봉지(5개입)씩 꼭 주문하곤 했다. 올해는 아직 한 번도 먹지 않았다. 드물게 라면이 먹고 싶을 때는 비건 라면(건면)을 사 먹는다.


찬 음식

한 여름에도 찬물을 먹지 않는다. 과일도 차게 먹지 않고 냉장고에 있던 것은 꺼내서 실온에 최소 30분 이상 두었다가 먹는다. 물론 찬 음료, 아이스크림도 먹지 않는다.


차(Tea)

차는 마시지 않는다. 커피, 홍차, 녹차, 보리차, 카모마일차, 메밀차, 허브티 등. 커피는 좋아하지 않았고 홍차와 밀크티를 즐겼으나 지금은 모든 차를 마시지 않는다. 물 이외에 마시는 음료는 없다.


술도 마시지 않는다. 성인이 되었을 때 친구들과 즐기긴 했지만 그 이후로는 먹지 않는다. 술은 먹고 마셔야 하는 음식 중에 가장 먼저 제외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영양제

챙겨 먹는 유산균, 영양제는 따로 없다. 음식으로 영양을 섭취한다. 특정 성분만 추출한 것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음식으로 충분한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챙겨 먹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


견과류

특별히 챙겨 먹지 않는다.



가끔 먹는 음식



버섯

버섯을 좋아하고 영양이 풍부하니 챙겨 먹으려고 했었으나 지금은 먹고 싶을 때만 먹는다.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버섯을 더 안 먹게 된 이유도 비닐, 플라스틱 포장 때문이다. 게다가 손질하고 세척하는 게 번거로워서 선호하지 않게 되었다.


두부

두부를 좋아하지만 이제 즐겨 먹지 않는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오는 게 싫어서 잘 안 먹게 되었다. 두부 대신 그냥 콩을 먹는다. 먹는다면 직접 만들어 먹을 것 같은데 아직까지 두부를 만들어 본 적은 없다.


콩나물

한국인만 먹는 작물 콩나물. 사실 콩나물은 자연스러운 음식은 아니다. 햇볕 받고 자란 다른 채소도 많은데 굳이 영양 생각하며 먹어야 할 채소는 아니다. 먹는다면 맛으로만 먹는다. 두부를 안 먹는 이유와 비슷하다. 콩나물을 먹을 바엔 콩을 먹자 주의. 일 년에 한두 번 사 먹는 정도.


오신채

냄새 때문에 즐겨 먹지 않는다. 먹게 된다면 익혀 먹는다. 직접적으로 먹는 것은 양파밖에 없다. 가끔 요리할 때 넣어 먹는 정도. 마늘은 몸에 맞지 않아서 먹지 않는다. 가끔 김치로 섭취하지만 요리할 때 쓰진 않는다.


떡볶이가 소울푸드였던 사람인데 예전만큼 즐겨 먹지 않는다.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는 현미 떡으로 만들어 먹고 있다. 다른 떡은 아주 가끔 먹는다.



자제하는 음식



수입 과일

*탄소발자국을 생각해서 수입 과일은 피한다. 오렌지 대신 국내에서 재배되는 만감류(귤, 천혜향, 카라향)를 먹는다. 바나나도 아주 가끔 먹는다.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전체 과정에서 발생되는 온실 기체의 총량


수입 농산물

채소나 다른 작물도 산지 소비를 하려고 한다. 가까이에서 자란 농산물을 소비하는 게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막는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제철 채소가 더 싸고 구하기도 쉽다.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음식

비닐,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식품은 되도록 소비를 자제한다. 과일, 채소도 마찬가지. 이왕이면 음식물 쓰레기가 덜 나오는 것을 먹는다. 이건 모든 음식을 고르는 데 적용되는 중요한 기준이다.




이렇게 살펴보니 그간의 식이 변화가 새삼스레 느껴진다. 예전에 좋아하던 음식들도 불편하고 번거롭고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가리게 되었다. 이제는 뭘 먹는지 적는 편이 더 빠를 것 같기도 하지만, 채식을 시작하고 새롭게 먹게 된 음식도 많다.



그럼 뭐 먹고 살아?




'대체 이 인간은 뭘 먹고 사나' 의문이 들 수 있겠다. 평소 자연식물식을 한다. 최대한 가공•정제하지 않은 통곡물, 과일, 채소, 콩류, 해조류 등을 주식으로 먹고 있다. 여전히 먹는 것을 좋아하고 잘 먹는다. 그리고 충분히 잘 먹고 있다. 그저 세상에 넘쳐 나는 음식들 속에서 내가 필요한 음식만을 골라 먹고 있을 뿐이다.


나에게만 불필요한 음식뿐만 아니라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여 생산된 음식도 자제한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음식을 찾고 최대한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먹는다. 단순한 음식은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가 적게 들뿐만 아니라 그것을 소비하는 비용도 줄일 수 있다. 또한 그 음식을 소화시키는 데 필요한 에너지도 덜 든다. 이것저것 빼다 보면 먹을 게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더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을 것이 차고도 넘친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물건 미니멀리즘을 통해

적은 물건으로 만족을 얻는 것처럼,

음식 미니멀리즘을 실천하여

적은 음식으로도 충분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먹을까 보다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먹을까를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할까를 생각한다.


그게 내가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이다.








차를 안 마시는 이유


술을 안 마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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