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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키 Dec 01. 2024

여인의 초상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저는 책장에서 모딜리아니의 화집을 꺼내 (중략)


'굉장하다.' 다케이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했습니다.

'지옥의 말 같다.'

'역시 괴물이라는 거야?'

'나도 이런 괴물 그림, 그리고 싶다.' _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中


*

(작가, 미술 기법, 역사적 배경 등 일체의 객관적 사실을 배제한 하루키의 감각과 추상표현으로 쓴 감상입니다.)

Amedeo Modigliani <Portrait of an Unknown Model>, (1918) 출처: Artuk



+ 하루키 감상

이탈리아 유대인계 가정의 넷째로 태어난 모딜리아니, 모딜리아니의 어머니 유지니 가르신Eugénie Garsin은 모딜리아니의 유년기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 아이의 성격은 아직 미성숙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아이는 버릇없는 아이처럼 행동하지만 지능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번데기 안에 무엇이 있는지 기다려 볼까요? 아마도 예술이겠죠?" _Werner, Alfred (1967)


1906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 몽마르트의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영향을 받습니다. 툴루즈 로트레크의 그림을 좋아했지만 폴 세잔을 접하고 그에게 완전히 빠집니다. 그와 어울린 친구들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파블로 피카소, 조르조 데 키리코, 앙드레 드랭 등이 있습니다. 가난하고 무명의 모딜리아니는 잘생겼고, 개성이 강했으며, 철학적이었습니다. 그는 압생트(당시 유행한 싸구려 술)와 해시(대마초)를 즐겼고, 보헤미안적(전통적 사회 규범을 벗어난 삶의 방식 추구) 자유를 즐겼습니다. 늘 손에는 니체의 책이 있었고, 니체의 말을 자신이 말처럼 인용했습니다.


"1901년 모딜리아니는 미술 아카데미의 스승이었던 마키아올리Macchiaioli의 접근 방식을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마키아올리Macchiaioli의 호의를 얻었고 그는 모딜리아니를 "위버맨쉬(초인)"라 불렀습니다. 이 이름은 모딜리아니가 예술에 매우 능숙했을 뿐만 아니라 니체Nietzsche의 글을 자주 인용했다는 사실을 반영한 애칭입니다." _Mann, Carol (1980)


1917년 봄, 러시아 조각가 차나 오를로프의 소개로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19세) 잔느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과 운명적 만남을 갖습니다. (32세) 모딜리아니는 순식간에 사랑에 빠집니다. 에뷔테른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알코올 중독에 마약 중독. 병약한 모딜리아니와 사랑에 빠집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을 피해 니스로 이사합니다.

잔느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


니스에서 모딜리아니는 에뷔테른과 첫 번째 딸을 낳고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모딜리아니는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에뷔테른을 그리고 또 그립니다.

잔느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의 초상화 (1917), (1918), (1918) 출처: Wiki


모딜리아니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지만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알코올로 인한 기억상실이 자주 발생합니다. 1920년, 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겨 걱정하던 친구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모딜리아니의 집을 찾아갑니다. 모딜리아니의 집에 도착하자 (침대에서) 정신을 잃은 모딜리아니를 에뷔테른이 붙잡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1920년 1월 24일 결핵성 뇌수막염으로 모딜리아니는 사망합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친정 집에서 안정을 취하던 에뷔테른은 갑자기 5층 창문에서 뛰어내립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납니다. 모딜리아니가 있는 곳으로,


하나의 묘비가 두 사람을 기리고 있습니다. 그(모딜리아니)의 비문에는 "영광의 순간 죽음에 쓰러졌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녀(에뷔테른)의 비문에는 "극단적인 희생을 치른 헌신적인 동반자" _Lappin, Linda (22 June 2002)

실제 페르 라세즈 묘지에 있는 모딜리아니와 에뷔테른의 무덤. 출처: Wiki



&



1. 에곤 실레는 죽기 1년 전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죽음) 프랑스 미술계의 초청으로 프랑스에 방문했다. 우연히 모딜리아니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개인전을 관람했고,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처음 본 모딜리아니의 그림. 나부裸婦(알몸의 여인)에서 자신이 그토록 갈망했던, 원초성과 모성(생명의 기원)을 보았기 때문이다. 

1917년 개인전 누드화. 당시 지나치게 노골적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전시가 중단됩니다. 출처: Wiki


2. 실레는 빡빡한 일정으로 3일간 정신없이 보냈다. 프랑스를 떠나기 전 날 저녁.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잠시 숨을 돌리던 중 모딜리아니의 나부가 생각났다. 어쩌면 영원히 모딜리아니도 그의 그림도 볼 수 없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 급히 모딜리아니의 집을 수소문해 약속도 없이 찾아갔다. 그의 집 앞. 벨을 눌렀다. 따르릉따르릉


3. 피부가 하얗고, 아몬드 모양의 눈을 한 앳된 여인이 나왔다.


"누구세요?"

"밤늦게 실례합니다. 저는 오스트레일리아 화가 에곤 실레입니다. 여기가 화가 모딜리아니의 집입니까?"

"네"


4. 에뷔테른은 실레를 모딜리아니의 작업실로 안내했다. 작업실은 초상화로 가득했다. 모두 에뷔테른의 초상화로 보였다. 에뷔테른은 곧 모딜리아니를 부르러 자리를 비웠다. 혼자 남은 실레. 자신에게 강렬한 충격을 준 나부 그림을 찾았다. 보이지 않았다.


5. 문득 생기 잃은 아몬드 모양의 눈과 마주쳤다. 방금 자신을 안내한 에뷔테른은 아닌 것 같은데, 누구일까? 머리카락을 손으로 살짝 가려봤다. 얼굴이 아니라 가면 같았다. 긴 목은 아프리카 원주민 부족의 미美의 상징 같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여인을 만난 것 같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어쩌면 실제 하지 않을, 영원이 변치 않을 얼굴. 여인의 페르소나(가면). 《여인의 초상》

* 화가 - 아메데오 클레멘테 모딜리아니Amedeo Clemente Modigliani (1884 – 1920, 이탈리아)

+ 전기(1884-1914)

1884년 모딜리아니는 이탈리아 리보르노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그의 어머니는 가난한 환경에도 아이들의 교육을 중시합니다. 1902년부터 모딜리아니는 피렌체의 미술 학교에 입학해 미술 교육을 받습니다. 이후 베네치아의 미술 아카데미로 옮겨 본격적으로 공부합니다.


1906년 예술의 중심지 파리, 몽마르트로 이주한 모딜리아니는 몽파르트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스타일을 발전시켰고,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세잔의 작품에 큰 감명을 받습니다. 1912년 첫 전시에 참가해 주목을 받습니다.


+ 중기(1915-1918)

1915년부터 조각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조각에서 영감 받아 길고 우아한 목과 얼굴의 특징을 강조한 스타일을 개발합니다. 이 스타일은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이 됩니다. 1917년 모딜리아니는 첫 개인전을 열었지만, 그의 누드 작품들이 지나치게 노골적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전시가 중단됩니다. 이 사건은 모딜리아니에게 큰 충격을 주었지만, 모딜리아니는 더욱 독창적이고 대담한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1918년 건강 악화로 인해 니스로 이동해 작품 활동을 이어갑니다. 이 시기 그는 초상화를 많이 제작하였고, 특히 연인이자 뮤즈였던 잔느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을 중점적으로 그립니다.


+ 후기(1919-1920)

1919년 모딜리아니는 파리로 돌아옵니다. 건강이 매우 악화된 상태였지만, 작품 활동은 활발히 이어갑니다. 1920년 모딜리아니는 결핵성 수막염으로 사망합니다. 모딜리아니가 죽은 다음 날, 에뷔테른은 친정 부모와 함께 살았지만 절망한 그녀는 5층 창문 밖으로 몸을 던져 자신과 태어나지 않은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납니다.


+ 비평적 관점

일부 비평가들은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기술적 완성도가 부족하다고 비판합니다. 그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비례 왜곡과 단순화된 형태는 미숙함으로 비쳤고, 특히, 인물들이 모두 길쭉하고 왜곡된 모습으로 그려져 기술적 결함으로 평가했습니다. 또한, 모딜리아니의 초상화에서 나타난 모델의 내면보다 외형 집중은 작품의 감정적 깊이나 인물의 성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단순히 시각적 아름다움에만 치중했다고 보았습니다.



* * *


+ 주요 특징


1. 인물화의 단순화된 형태

모딜리아니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인물의 길어진 신체 비율입니다. 그의 인물들은 일반적으로 길고 가느다란 목, 몸통, 팔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스타일은 그의 조각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인물의 우아함과 신비로움을 강조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2. 독특한 얼굴 표현

인물화에서 눈은 아몬드 형태로 그려지며, 이는 그의 작품에서 상징적 요소 중 하나입니다. 눈은 종종 비대칭적으로 배치되거나, 때로는 공백으로 남겨져 있어 신비로운 느낌을 줍니다. 이러한 표현은 인물의 내면을 강조하기보다 외형적 특징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인물들은 종종 중립적인 표정을 짓습니다.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외모와 존재감 자체를 강조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작품에 고요와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합니다.


3. 색채 사용

단순하고 강렬한 색조를 사용해 인물들을 강조합니다. 색채 팔레트는 주로 따뜻한 색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배경은 종종 단색으로 처리되어 인물을 돋보이게 합니다. 이는 강한 시각적 충격을 주는 한편 인물의 형태를 강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 의식 안의 미술관

초상화에서 눈은 중요합니다. 모딜리아니의 초상화 속 눈은 생기나 오오라가 느껴지지 않는 대신,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한편, 관객의 감정을 비추는 거울 같은 느낌도-

출처: Wiki





"자, 12월이다. 한 달 내내 크리스마스 음악을 들려드리지는

않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아름다운 예수 탄생 노래로 12월 열자." _1일 1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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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Magnum Mysterium"의 라틴어 텍스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O magnum mysterium, et admirabile sacramentum" (오, 위대한 신비이자 놀라운 성사) 인류를 위한 순교, 구원, 부활. 12월의 주인공 _하루키

Winchester Cathedral Choir - O Magnum Mysterium

* "O Magnum Mysterium"은  모르텐 로리드센(Morten Lauridsen)이 작곡한 유명한 합창곡입니다. 이 곡은 1994년에 초연된 무반주 합창을 위한 모테트로, 성탄절의 경이로움을 주제로 한 텍스트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동물들이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그리스도를 목격하는 순간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삶이 고양될지 혹은 무해할지, 의식 안의 미술관을 꿈꾸며 ... 감사합니다. 하루키




+ 출처


[1] 위키피디아: Amedeo_Modigliani

[2] GuggenheimAmedeo_Modigliani

[3] Elespace: Amedeo_Modigli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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