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내용을 보면 꼭 기록합시다.

by 보이저

오랜만에 책장을 정리하다가 색이 바랜 작은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냉정과 열정 사이'


20년 전에 봤던 책이었다. 이 책을 아직도 갖고 있었구나 싶다. 책장을 휙휙 넘겨 보는데 눈에 띄는 구절이 있었다.


"홀로 멀리 여행을 떠나라. 그곳에서 가장 그리운 사람이 바로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내 마음을 확 파고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하지 않고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삶을 살던 나였다. 이 좋은 문구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지! 스마트폰 앱을 켜고 이 문구를 기록한다. 어느 새 내 앱에는 이런 문구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기록의 중요성


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명언들과 좋은 글귀, 갑자기 떠오르는 반짝이는 생각들이 있다. 이건 꼭 같이 나누면 좋겠다 싶은 내 경험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1분만 지나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 기억에서 싹 사라지고 만다. 그만큼 휘발성이 강한 것이다.


꼭 기록해야 한다. 글을 쓸 때, 강의를 할 때 이 하나하나는 귀중한 자산이 된다. '신입사원의 바람직한 자세'를 주제로 글을 쓸 때, 이론이나 자기 생각만 나열한 글과, 드라마 속 장면과 함께 실제 사례들, 책에 있던 문구들을 같이 활용한 글은 깊이가 다르다. 더 쉽게 잘 읽히고 마음에 와닫는 것이다.


똑같은 돼지국밥을 요리하더라도 그냥 돼지 부산물을 물에 넣고 양념을 넣어 적당히 끓인 국밥과, 잡내를 없애기 위한 나만의 재료를 넣고 정확한 시간을 숙성해서 남들이 사용하지 않는 양념으로 끓여낸 돼지국밥은 그 맛이 다르다. 평소에 꼼꼼하게 기록하는 습관은 그 다른 맛을 만들어 낸다.



어떤 것들을 기록할 것인가?



그 어떤 것이라도 다 좋다. 연예, 스포츠, 문학, 시사, 역사..그 어떤 것도 다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다. 이런게 무슨! 싶은 것도 뜻하지 않게 좋은 재료가 된다.


- 앞 선 타석에서 세 번 연속 삼진을 당했던 타자가 끝내기 홈런을 치고 영웅이 된 일 (대반전은 있다)


- 나 때는 태권도 노초띠, 보라띠 이런 것 없었는데 첫째 아이 태권도 승급 심사 때 보니 무지개처럼 많은 띠가 추가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 (왜 자꾸 띠가 늘어나는걸까)


- 매일 아침 7시 45분에 범계역에서 4호선 상행선 지하철을 타면 10-2칸에서 마주치는 이국적인 외모의 30대 초반 여성 승객 (어디 사는 누구일까)


- 왠만한 생일 케익 가격이 이제 4만원 가까이 되는 것 (초코파이로 케익 만들어야 하나)


- 선거철만 되면 튀어나오는 우리 동네 경부선 철도 지하화 공약 (나 초등학교 때도 나오던 공약인데)



이 모든 것들이 다 글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바람 빠진 풍선 마냥 쭈글쭈글해져서 사라지지 않도록 꼭 기록하자. 나는 꿈에서 나온 좋은 소재들이 있으면 사라지기 전에 바로 폰에 저장한다.


요즘 슬슬 쓸만한 소재가 떨어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나르시시스트 6부작을 쓴 뒤로 그 현상이 부쩍 심해졌다. 폐광의 기로에 선 금광같은 처지이다. 다시 노트를 뒤적거리면서 일못러 탈출방법을 다시 생각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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