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을 적는다는 것

좋은 난임일까?

by 로에필라
Fear is inevitable, I have to accept that, but I cannot allow it to paralyze me.
두려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두려움이 나를 마비시키게 할 수는 없다.
- Isabel Allende (이사벨 아옌데)




글을 쓴다는 게 이렇게 두려운 일이었던가?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으며, 항상 책을 쓰는 것은 나의 버킷리스트의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막상 내 이야기를 하려니까 두려움이 크다.

내성적인 나는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다.

나는 나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게 서툴다.

일단 말을 하면 상대방의 반응에 신경을 쓰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신중하게 말한다.


이제는 조금조금씩 내 이야기를 더 하려고 한다.

나의 상처가 꽁꽁 곪아 터지는 것보다는 글을 통해서 오픈함으로써 치유되는 게 분명히 있을 거라고 믿는다.


글을 쓰는 것은 상처가 많은 나 자신을 위한 작은 위로의 시간이다.

작아지는 나에게 보내는 위로의 편지이다.




난임에 대한 내 생각을 글로 풀어낼 수 있는 브런치가 있다.


글을 써야겠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살아 숨 쉬고 생각하고 있음을

나의 뇌가 깨어있음을 내 손으로 표현해야겠다.


사각사각

연필 굴리는 소리가 듣기 좋다.


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글을 쓴다.


조금이라도 나에게 나은 능력이 있다면, 그 능력을 키워야만 한다.

그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나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선물이다.



너는 임신도 못하는 바보가 아니야.
잘하는 게 있어.
의기소침해지지 마.



인생이 고통스러워도 그 고통에 함몰되지 말자.


어떻게든 견뎌내고 이겨내자.

미래에 보면 너무 작은 괴로움이고, 그것을 이겨낸 다음 바라보면 별 거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가 나의 품에 오면, 지금 느끼는 모든 고통이 다 사라질 거다.


지금까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반복되었는가.

살면서 나름의 힘듦은 항상 있었지만, 단지 지금 겪는 건 다른 종류의 힘듦일 뿐이다.


힘들어하고, 힘들어하고, 힘들어했다.


그러다 보면 조금 나아지는 날들이 오기도 했고,

또 다른 힘든 일이 다가왔다.


그게 바로 인생 그 자체인 것 같다.


모든 고통은 적고, 구겨서 다 날려버리자.


때로는 버거워도 중간중간 돌아오는 작은 기쁨과 행복, 그리고 희망이 날 살아가게 한다.




남편에게 내가 쓴 글들을 보여줬다.


난임에 대해서 글을 쓴 거여서 쑥스러운 마음이 있었었다.

글을 읽고 피드백을 해달라고 했다.

결국엔 우리의 이야기를 쓴 거니깐 남편에게도 본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남편은 하나하나 읽으면서 격한 리액션을 보여줬다.


글을 고치긴커녕 잘 썼다는 칭찬만 들었다.

이렇게 잘 쓰는 줄 몰랐다고 고칠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남편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쩌면 난임에 뜻이 있을지도 몰라. 이런 좋은 글들을 쓰게 됐잖아."


내가 생텍쥐베리의 야간비행(Night Flight)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글귀가 생각났다.


"불면증이 작가에게 좋은 글을 쓰게 한다면, 그것은 좋은 불면증이다."


If a composer suffers from loss of sleep and his sleeplessness induces him to turn out masterpieces, what a profitable loss it is!
만약 작곡가가 수면부족을 겪고 있고, 수면부족이 명작을 탄생시킨다면 그것은 얼마나 생산적인 부족인가!
- Antoine de Saint-Exupéry, Night Flight (앙트완 드 생텍쥐페리, 야간비행)


난임이 나에게 글을 쓰게 했으니, 이건 좋은 난임일까?


남편은 나의 브런치 글들을 기대한다고 했다.

쑥스럽고 기분이 좋았다.

나를 응원해 주는 남편 덕분에 글쓰기가 더 재밌어졌다.


글을 자주 올려야겠다.

남편에 대한 사랑과 우리의 이야기를 더 풀어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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