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양파다

문제의 술

by 걸침

‘술이 들어가면 비밀이 나온다.’

‘술은 차를 대신할 수 있으나 차는 술을 대신할 수 있다.’

술에 대한 예찬론은 많다.


‘술이 마시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 시간에 마음은 쉬고 있기 때문이다.’

딱딱하고 냉철한 의식의 시간이 비키면 한 꺼풀 밑의 뜨겁고 부드러운 본능의 시간이 들어오는 시간이다. 좌뇌가 쉬고 우뇌가 활발해지는 시간, 노자가 이야기한 곡즉전 즉, 직선의 세계에서 곡선의 마당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파키스탄이란 나라에 간 적이 있다. 술은 반입이 안 되는 이슬람 국가이다. 그러나 어쩌랴. 뺏길 각오를 하고 짐 속에 술 한 병을 넣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공항검색에 걸렸다. 뭐냐고 물어보길래 물이라고 했다. 한자를 모르는 그들은 흰색병에 파란 라벨이 붙어있는 소주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그대로 통과시켰다. 그날 밤 숙소에 모인 우리는 오랜 산삼을 모시듯이 그야말로 손톱만 한 병뚜껑에다 돌려가며 따라 마셨다. 누구 하나가 한 눈금이라도 흘릴라치면 기겁을 하며 놀래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음날 현지 친구에게 물었다. 술을 안 마시고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그 친구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자기 넨 안 먹어 봐서 모른다고.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몇 술꾼이 수군댔다. “어떻게 맨 정신으로만 살아갈 수 있지?”


지난주 현대서예반에서 지방에 전시회를 갖고 한적한 숙소를 빌려 1박을 했다. 우리는 밤새 붓을 잡고 노는 관례가 있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이다. 특히 현대서예는 전통과 달라 글씨를 창의적으로 자유롭게 풀어야 한다. 정색을 하고 달려들면 굳은 글씨만 나오게 된다. 선생님 자체가 주력(酒力)은 곧 필력(筆力)이라 누누이 주장하시는 주선이다. 흐트러지지 않으면 부드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안 풀어지면 내가 나서서 권주가를 부른다. “내가 술을 즐기어 먹나, 광약(狂藥)인 줄을 알면서도. 일편단심 먹은 마음 굽이굽이 설움이라, 오늘도 이 술이 아니면 맘 붙일 곳이 바이없네.” 술이란 것이 마음을 미치게 하는 약인 줄 알면서도 굳게 마음먹고 나선 하루가 이리 힘드니 이 놈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 추임새가 이어지고 다른 사람이 이어받고, 취기가 오르면 펼쳐놓은 화선지에 올라 일필휘지 하는 것이다. 굳었던 선이 풀어지기 시작하면 다들 박수로 격려를 해준다. 그렇게 옛 선비들처럼 노는 모임이다.


사랑도 그렇지 않을까. 서로 마주 보는 순간 서로 다른 곳을 보게 된다는 말이 있다. 화성과 금성에서 온 사람들이 직선만으로 살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루에 할 말만 하고 살라면 과연 몇 마디가 필요할까. 물론 술 없이도 대화는 가능하다. 그러나 석양 벤치에 앉아 와인잔에 넘실대는 붉은 노을이 사랑스러운 연인의 뺨에 번질 때, 한 마디 실수로 상대의 속이 불편할 때 이 것의 도움을 받아 마음 몇 겹에 갇혀있는 앙금을 꺼내 던질 때, 그 맛은 과연 어떤가.


물론 과음이 문제다. 나도 한동안 밤이면 버스 종점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 순회하느라 바빴다. 그런 말도 있다. ‘술은 딱 한잔이면 된다. 그런데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술이 몇 잔 째인지 모르는 게 문제다. “ 고대에도 빵보다 먼저 생긴 것이 술이라 할 만큼 이미 음식의 지위를 가진 술, 의식이란 껍질을 벗겨 과감히 속살을 내놓게 하는 음식, 직선의 쇠창살을 구부려 본능의 나라로 탈출시켜 주는 삼손, 동서고금으로 순간이동을 시켜주는 마술사 그것이 술이다.


핸드폰이 울린다. 셰익스피어던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창밖에서 친구가 부르는 소리라고.

자, 오늘도 양파 손질을 해볼까나. 벌써 서로 디스 하며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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