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질문이다

문제의 그림

by 걸침

처음에 나는 그의 전시를 그냥 흘러가듯 보았다.

지루했다. 커다랗고 어두운 화판에 그저 단순한 색깔의 반복. 어찌 이것을 명작이라 할 수 있을까. 형태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화가를 주제로 한 연극을 공연한다 해서 의아했다. 도대체 어떤 화가이길래 100분짜리 연극으로 그것도 단 둘이 나와서 떠든단 말인가. 그러나 그 두 시간 가까운 공연을 보고 나온 나는 무언가 큰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연극의 제목은 바로 ‘레드’.


그는 누구길래 그의 작품을 보다가 우는 관객이 생기는 걸까. 도대체 어떤 도도한 작가이길래 그 유명한 씨그램 빌딩과 작품계약을 했다가 과감히 취소하고 계약금을 돌려준 인물일까. 그 오기와 고집이 내 호기심을 끌만했다. 연극 내내 이어지는 두 사람의 예술에 대한 논쟁, 차가운 질문과 뜨거운 대답이 교차했다. 붉은색 하나에도 수십 가지의 다른 색이 있다는 작가. 그는 마티스의 붉은 채색술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미켈란제로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다. 희랍식 기둥이 숨은 모티브로 자주 쓰인 이유다. 그러나 그것보다 작가가 영향을 받은 사상이 궁금했다. 연극이 끝나고 뒤져본 바 역시 이해가 가는 구석이 있었다. 역시 니체였다. 그의 책 ‘비극의 탄생’이 주인공이었다. 니체가 얘기한 예술론을 짚어봤다.

‘우주의 기본값은 어둠이다. 인간은 어둠에서 온 것이다. 어둠은 보이지 않아도 그 속에 무언가 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이 예지적인 사람이다.’

‘생성과 소멸은 무한한 반복을 한다. 반복의 의미는 매번 다르다. 반복성의 미세한 차이를 만들어야 한다.’

붉은색은 강렬하다. 피를 상징하고 무섭기도 하다. 잔인하나 열정을 뜻하기도 한다.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런 의미들이 점점 다가온다. 좋아하는 연인이 가진 뜨거운 심장의 피가 겹겹이 내게로 흘러오며 무언가 질문을 한다. 내 꿈, 정열과 무수한 희망이 솟아오르는 화산 용암처럼 튀어나오며 생명의 에너지로 변한다. 지구상의 수많은 혁명과 전쟁에서 흘린 피와 얼룩과 그 울음이 몇 천 겹 비치기도 한다.


이제껏 수많은 작가들은 주로 형태를 그려왔다. 그러나 모양이란 형태라는 것을 버리고 오로지 색상에만 집중한다는 시각은 파격이었다. 예술은 잠재되어 있는 본능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점잖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 했다. 과연 작가는 저 수많은 붉은색을 통해 관객에게 어떤 질문을 하고자 했을까. 결국 동맥류라는 병에 걸리고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신의 동맥을 그은 작가. 그 붉은 동맥의 피를 쏟아부은 것 같은 그의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검은색에 묻히는 붉은색이자, 검은색을 뚫고 나오는 붉은색. 빛은 앎이요 어둠은 죽음이라 했던 니체의 말에 기대었을까. 수동적이며 죽음 같은 삶을 벗어나 본능에 따른 정열적인 삶을 살라는 의미였을까. 자본주의의 가벼움을 질타하며 영적인 수위의 질문을 하고 있는 작가 로스코는 진정 새로운 패러다임을 과감히 던진 예술가였다.


그의 붉은색을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바다밑의 끝없는 심연이다. 이글거리는 용암이다. 아니 뜨거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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