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영 Jan 06. 2024

에필로그: 뉴욕이 남긴 것

내가 건넨 나의 말이 당신에게도 친절이었기를

계획했던 열 편의 글을 올렸다. <퇴사하고 뉴욕 가서 뮤지컬 하기>라는 제목과 나의 이름을 붙여서.


본문을 통해 공유한 것 외에도 뉴욕은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남겼다. 꿈을 좇아 달려가 본 과정과 그렇게 얻은 결론을 전달하는 데 집중하느라, 미처 글에 포함시키지 못한 내용이 많다. 선택과 집중을 위해 본글에서는 아쉽지만 공유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에필로그를 통해 전한다.




앞에 쓴 것 외에 나에게 뉴욕이 남긴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을 꼽으라면 단연 사람들이다. 뮤지컬, 연기, 영화 등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세계 각지에서 모여들었던 나의 친구들.


먼저, 브라질에서 온 나의 사랑들, 타이나(Tainah) 비아(Bia). 일정 때문에 종강 직후 곧바로 귀국했지만, 워크샵 기간 동안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친구들이다. 특히 상파울루에서 본업 외에 부업으로 5년째 보컬 강사를 하고 있는 타이나는 지금도 나에게 온라인으로 보컬 레슨을 해주고 있다. (나도 날로 먹진 않고, K드라마 팬인 그를 위해 한국어 수업을 제공한다.)


사이프러스에서 온 룸메이트 멜(Mel). 어릴 때 피겨 선수로 활동했었다는 멜은 나만큼 작은 키에도 다부진 몸으로 넘치는 늘 에너지를 내뿜었다. 멜은 나를 인생 첫 클럽에 데려가 주고, 코리아타운을 찾아 비빔밥과 김치찌개를 시켜먹고, 한밤중에 맨해튼 시내를 활보하며 어처구니없는 관광지 물가를 함께 불평했다. 잠들기 전 대화 때마다 예상치 못한 순간 멜이 던지곤 했던 조언들은 이후 내 인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나이와 지혜, 경험치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가르쳐 준 친구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에서 온 유발(Yuval)과 미 서부 LA에서 온 마리아(Maria). 이 둘은 나를 "singer"라고 가장 먼저 불러 준 두 사람이다. 기숙사 식당에 앉아 있던 어느 날 "난 불안할 때 할 일을 미루고 요리를 해
(I procrastinate when I'm nervous, and I cook when I procrastinate)."라며 불쑥 나에게 쿠키를 내밀어 준 유발 덕분에, 내가 뭔가를 미룰 때 스스로를 비난하기만 할 게 아니라 내 반응과 이유를 관찰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이탈리아에서 온 나의 친구 레오(Leo). 학기가 끝나갈 때 나와 레오는 뉴욕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공통의 마음으로 뭉쳐 비자 이슈를 조사하고 정보를 공유했다. 결국 둘 다 귀국을 했지만, 학생들 중 나와 나이도 가장 비슷하고 가진 소망도 비슷한 레오가 있어 든든한 순간이 많았다. 언젠가 뉴욕을 돌아가게 된다면 레오가 먼저 돌아가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스페인에서 온 쾌남 니코(Nico). 인싸 중의 인싸였던 니코는 워크샵 기간 내내 각종 모임을 주최해서 교류의 장을 만들더니 종강하던 날은 기어코 자신의 손바닥만한 기숙사 방에서 미니 홈파티를 주최했다. 그 좁은 방에 열댓 명 가까이가 들어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사이 니코는 술과 간식을 끝도 없이 공급했고, 얼마를 내면 될지 묻는 질문에는 "파티 호스트가 대접하는 게 스페인 스타일이야!"라는 호쾌한 답으로 응수했다. 짧은 시간 스쳐가는 인연을 친구로 만드는 마음가짐을 그에게서 배웠다.




뮤지컬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미국에 있는 동안 열 편의 뮤지컬을 봤다. 본 순서대로, 알라딘(Aladdin the Musical), 뉴욕뉴욕(New York New York), 캐멀롯(Camelot), 셔크드(Shucked), 퍼니 걸(Funny Girl), 시카고(Chicago), 해밀턴(Hamilton), 물랑루즈(Moulin Rouge), 식스(Six), 헤이디스타운(Hadestown). Top 3를 꼽으라면 해밀턴, 식스, 그리고 뉴욕뉴욕을 꼽겠다.


그중 Top 1은 두말할 것 없이 해밀턴이다. 미국 건국의 주역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의 삶에 기반해 만들어졌고 모든 넘버가 힙합곡으로 구성된 이 실험적 작품은, 2015년 초연 이후로 돌풍을 일으키며 브로드웨이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아직 한국에 정식 수입된 적은 없는 작품이지만 디즈니플러스에서 공식 영상을 볼 수 있는 걸로 안다.


식스는 부인이 많기로 유명한 헨리 8세의 여섯 왕비 이야기다. 특이하게 인터미션이 없는 80분짜리 공연으로, 별도의 스토리 없이, 참수되었거나, 버려졌거나, 사랑받았거나, 슬픔 속에 삶을 보낸 여섯 왕비가 돌아가며 각자의 삶에 대한 노래를 부른다. 단 여섯 명의 배우가 무대를 채우는데 퍼포먼스에 공백이 없다. 이 공연을 본 날 충격 속에 숙소로 돌아와서 관련된 영상들을 계속 찾아봤었다.


마지막으로 뉴욕뉴욕은 내용 때문에 가장 큰 몰입과 감동을 줬던 공연이다. 각자의 꿈을 안고 뉴욕을 찾은 청춘들이 좌절과 기회에 맞닥뜨리길 반복하며 성장해 가는 이야기로, 한국에서 날아온 지 일주일 돼 비슷한 입장이었던 내 마음을 헤집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그 유명한 탑오브더락 건설현장 인부 사진을 오마주한 탭댄스 넘버 차례에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뮤지컬 외에 뉴욕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들도 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The Met), 프렌즈 익스피리언스, 버드랜드 재즈클럽, 브로드웨이 박물관, 핫도그 가게 뒤에 숨겨진 술집 스피크이지까지. 각각의 후기가 궁금하시다면 내가 뉴욕에서 매일매일 일기를 남겼던 개인 블로그에서 읽어볼 수 있다.





<퇴사 뉴욕 뮤지컬>은 세상에 말을 거는 사람으로 살기를 결심하고 세상에 내놓는 나의 첫 문장이었다. 글을 쓰는 이들에게 브런치는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플랫폼인 모양이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나에겐 높은 심리적 장벽이 있었다.


우선 대략적으로 예상 독자를 상정하긴 했어도, 정확히 누구에게까지 가 닿을지를 가늠하지 못하고 공개적으로 글을 쓰는 것 자체가 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우리는 같은 한국어를 쓰는 듯하지만 사실 저마다의 언어를 쓴다. 읽는 이의 언어가 나의 언어와 많이 다르다면 의도가 잘 전달되지 않거나 심지어 의도하지 않은 메시지가 전달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했다.


물론 그것보다 더 두려운 건, 글을 씀으로써 나라는 사람의 밑천이 훤히 드러나리란 생각이었다. 내가 거쳐 온 삶의 궤적에서 다양한 층위와 방식으로 내 곁에 남은 사람들이, 내 지난 시간의 면면을 알게 될 거라는 생각이 왜 날 두렵게 했는지는 아직 정확히 모르겠다. 숨겨 둔 부분을 남겨둬야 얕보이지 않을 수 있으리란 웃긴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럼에도 나는 세상에 말을 걸면서만 살 수 있는 사람임을 발견하고 말았기에, 내가 나에게 친절하고자 한다면 나에게 남은 건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뿐이라고 생각했다. ‘발행’을 처음으로 누르던 순간이 나에겐 눈을 질끈 감고 그 방향으로 첫발을 떼는 일이었다.




어려웠던 시작만큼 하나의 주제 아래 열 편의 글을 연재하는 지난 5주는 가슴 떨리는 시간이었다. 난 행복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불행의 부재, 다른 하나는 고자극의 존재다. <퇴사 뉴욕 뮤지컬>의 연재는 나에게 과분한 고자극을 지속적으로 제공했다. 숫자로 확인되는 조회수와 라이킷 수는 주 2회 연재라는 '읽어 주는 이와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게 하는 아주 중요한 동력이 됐다.


글을 읽어준 것만도 고마운데 댓글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 주는 분들도 있었다. 개수에 상관없이 놀랍고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원 글의 메시지를 방해할까 하는 걱정에 대댓글은 거의 달지 못했으나, 진심을 담아 나눠 주신 각자의 이야기를 누군가는 외울 만큼 여러 번 읽었고, 그 모두가 황송하고 벅차서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는 것을 꼭 아셨으면.


작가의 서랍이 제공하는 통계 메뉴를 보니 12월 20일 무려 브런치 메인에 걸렸던 "'정답'이 아닌 '나의 답'을 내놓는다는 것"은 내가 평생 써 온 그 어떤 글보다 많은 이에게 가 닿은 글이 됐다. 선정 기준이 어찌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줬다는 점에서 그 일이 일어나게 한 누군가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수상소감 같지만 이해 바란다. 난 진짜 상 받은 기분이었으니까.)


친구들에게도 많은 연락을 받았다. 뉴욕에서 뮤지컬 수업을 들은 얘기에 공감이 될 포인트가 있을까 했는데, 각자 다른 지점에서 공감하고 위로를 얻었다며 소감을 전해 주는 친구들 덕분에 세상살이에 메마른 줄 알았던 나의 F적 감성이 소생되는 기적을 여러 번 경험했다. 가까운 친구들의 새로운 마음을 받아 보며, 글을 통해 말을 걸고자 했던 나의 시도가 무효하지 않았음을 실감하는 순간이 많았다.


나의 첫 문장, 내 이름으로 쓴 첫 글을 세상에 던지며 결심한다. 우리 쓰는 언어가 다르더라도 나는 계속해서 당신에게 말을 걸어 보겠다고. 당신이 당신의 속도와 방법에 맞게 거기에 대답해 주길 기대하면서. 그리고 작은 소망도 덧붙여 전해 본다. 내가 나에게 친절하기 위해 당신에게 건넨 이 말이, 부디 당신에게도 친절이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기숙사 근처 브루클린 공원에서 러닝을 할 때면, 허드슨 강 건너로 맨해튼의 빌딩숲 스카이라인이 보이곤 했다.


이전 10화 뮤지컬 배우를 꿈꾸지 않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