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전에 다짐했다. 자기효능감을 높여보자고. 자존감에도 여러가지 차원이 있듯이 효능감도 마찬가지다. 공부에도, 운동과 건강에도, 맡겨진 업무에도, 꿈에 관한 것에도 말이다. 어릴 때 나는 뭐든 곧잘 했던 것 같다. 밥도 잘먹고 활동량도 많았고 약이나 주사를 무서워하지도 않았고 동네 친구들의 다툼에 늘 중재자가 되었다. 노래도 잘했고 글도 잘썼고 뭐 아무튼. 하지만 제도권 학교에 들어가고 난 뒤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생활을 하게 됐다. 스타렉스 학원버스를 타는 또래들을 보면서 나는 혼자 놀이터에 남았다. 나중에는 안되겠다 싶어서 아직 학교에 다니지 않는 동생들을 모아서 들판과 약수터로 나들이를 갔다. 도롱룡과 하늘소를 잡고 놀았다. 담쟁이넝쿨을 잡고 아파트 뒷쪽 담을 오르는 라이온킹 놀이도 만들었다. 나는 그게 쓸모없는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즐거웠고 행복했기 때문에. 티셔츠에 흙을 가득 묻히고 집으로 돌아가서 할머니가 해준 밥을 먹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나이까지도, 친구들이 사춘기로 접어들고 이성과 어른들에게 낯을 가리게 되던 때 까지도 나는 그랬다.
중학교에 가니까 나머지 공부를 하라고 했다. 함수 그래프와 피타고라스를 보면서 나는 참을 수 없는 절망감을 느꼈다. 뭔가 불만이었고 그런 내 생각을 표현하면 어른들은 어떤 기준과 체계를 가지고 내 생각을 눌렀다.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대항하거나 대안을 찾았더라면 조금 달랐겠지만 나는 두려웠으므로 어른들이 나를 낙인하는것을 수용했다. 자주 아프고, 감정기복이 심하고, 학업성취도가 높지않고, 열의가 없다. 그것은 이전에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알찬 유년기를 보냈는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규정했다. 그 즈음 내 삶이 실제로 혼란스러웠던 것도 맞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살기를 원했다. 재미있게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어른들은 늘 흘려들었다. 특히 학교선생님들이. 그래도 멋진 어른들을 종종 만났다. 나에게 글쓰는 재주와 따뜻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봐준 분들로 인해 고등학교에서는 여러가지 성취를 했다. 매번 입상을 하고 칭찬을 들으면서도, 한번도 내가 먼저 상을 받고 싶었거나 좋은 대학에 가려고 한 적은 없었다. 그냥 즐거운 일들을 했고, 어쩌면 내 방황의 이유는 열정을 어디에 쏟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 같은건 신경쓰지 않고 일상을 보냈다.
대학에서는 정말 하고 싶은 것만 했다. 문예창작과에 다녔고 습작도 합평도 열심히 했다. 교회에서 리더십을 많이 맡았고 선교단체에서 활동했다. 커피공부를 했고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공동체를 이루었고, 그것은 내게 의미를 줬다. 소중하고 충만한 마음으로 회복되어갔다. 늘 열심히 살았고 나름대로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사실 그게 다였다. 여지껏 목표를 두고 전력질주 해본 경험은 손에 꼽히는 것이다. 경험은 쌓여갔지만 나는 이루고 싶은게 없었다. 되고 싶은 게 없고 가야만 할 곳이 없었다. 원래는 그런게 다 무슨 소용인가,하는 생각이었는데 들었는데 대학을 졸업하면서 그런 생각은 전복되었다. 만약에 생계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못하게 된다면, 내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다른 친구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학원버스를 타고 다니다가 대학에 온 뒤에는 자신과 같은 동생들을 과외하면서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여행도 가고 토익시험도 보고 취업도 했다. 영원한 사랑과 관계같은 걸 생각하는 데에 게을러 보였던 사람들도 오늘 먹은 맛집과 번듯한 직장에는 집중했다. 돌아보면 나는 그런게 하나도 없었다. 내게는 수많은 마음과 관계가 남았지만 세상의 대다수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그런건 없었다. 나는 점점 막막해졌다.
원래 다짐이란 자신없는 부분을 건드리기 때문에 의미가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결정해야만 했다. 지금처럼 마음이 곱고 어진 사람의 이미지를 내게 계속 덧씌우며 사람들과의 끈을 소중히 엮어갈 것인지, 아니면 효율적인 인간이 될 것인지를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되려 퇴보하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자꾸 먹먹하고 긴장된 느낌이 나를 찾아왔다. 성장과 발전을 거절하기엔, 내가 그럴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경쟁력이 없었다. 엘리트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세상에 차고 넘치는데 나는 그보다 더 잘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럴바엔 세상에 몇 안되는 행복한 인간으로, 취향이 맞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편이 낫지 않은가? 느낌과 깨달음은 어느때보다 많았지만 단 한 글자도 쓰기가 어려웠다. 출근길 십오분 동안 나는 할 수 있다, 아니 나는 못한다-를 수도 없이 외치면서 걸었다. 쉬는 날에는 무기력했다. 삶은 안정적이었지만, 역시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감정을 가득담은 후기나 일기같은 걸 썼다.
목표가 없는데 시작하는 행위는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아주 불안하고 희미하다. 아직 나는 어딘가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꼭 취득해야 하는 자격증이나 목표도 없지만 그래도 배우고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기로 다짐했다. 내가 발전하면서도 사람들 옆에 위로로 남을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고민 끝에 학점은행제를 통해 상담 공부를 시작했다. 이미 대학도 다 졸업해놓고, 수료를 못하면 어쩌나 고민하는 나를 발견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없었다. 잔병치레를 달고 살았기 때문에 아프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여겼지, 건강해질거라고는 처음 상상해봤다. 생각의 흐름이 다소 부정적으로 흘러가는 걸 느낄 때, 오히려 쓴마음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얼마간 개인 트레이닝을 받던 헬스장의 일년 회원권을 끊었다. 나를 잘 이겨내고 배우자. 그리고 건강해져야지. 이런 다짐들도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면, 나는 최근 이런 결정을 했다. 결코 단기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