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살던 집을 떠나 상경한지 벌써 만 8년이 지났다. 친구들이 자취생활은 어떠냐고 물어보는데 벌써 9년차가 되어 이제는 어떤지 생각하는 것도 생경하다는 답을 했다. 그러니까 지난 8년간 나는 내 또래의 청년들, 특히 동성인 친구들과 같이 살았고 최근에는 혼자 월세방을 얻어 완전하게 독립했다. 아주 혼자 살게 된 것은 얼마되지 않은 일이라 낯설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쩐지 허전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어린이 날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주택가가 즐비해있지만 어린이들은 많이 살지 않는 동네이다. 퇴근 길에 지하철에서 내려 출구로 나오는 동안의 짧은 시간동안 내 또래의 인파가 게이트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것을 보면, 대부분 청년 세대인 것 같다. 가끔 아쉬운 마음이 들어 동네에 있는 작은 공원들을 돌아보는데 그곳에도 어린이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간간히 어린이들이 쓸 법한 줄넘기나 씽씽카 같은 것이 있을 뿐이다. 이 동네를 통채로 노키즈존으로 만든 것도 아닐텐데 어린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린이는 어른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힘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존재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이 상대적으로 어린이고, 나이의 적고 많음에 상관없이 도움을 주고 받아야만 살 수 있는데 어린이들의 존재감은 왜 특별하게 느껴질까? 동네 사람들이 모두 바깥으로 나들이를 갔는지 공휴일이던 어린이날엔 매우 조용했다. 나는 평소에 고요한 분위기를 좋아하는데, 그날은 세상의 어떤 부분과 아주 동떨어진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적막하고 낯설었다. 평소에는 전혀 모르던 기분을 맞이하며 한겹한겹 잘 가다듬었다.
그러다 생각했다. 나는 천방지축 어린이였고 때 아니게 철이 들어 슬픈 소릴 많이 하는 애어른이었고, 질풍노도 청소년이었고, 괜히 빨리 컸다고 후회하는 어른아이였다가 언젠가는 싱그러운 청년이었다. 이제는 비로소 약간 지친 직장인이고 진짜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가끔 고민하는 중이라는 것도. 주변에 직접 부딪히는 어린이가 없는 것이 나의 기분에 이렇게 영향을 주는 구나 싶어 약간은 놀라기도 한 날이었다. 사실은 상관 없는 것이 아니구나.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고 청소년이었고 시간 지나 이렇게 되었으니까. 그들이 가진 힘은 전혀 퇴색되지 않았고 오히려 가장 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