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상담이요? 제가요?

by 하누

일자리 센터에 방문하다


학교 졸업이 다가오니 좋든 싫든 나는 자립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항상 외쳐대던 독립을 하기엔 취업이라는 조건이 필수니까. 내 일생 학교 일자리 센터에 발길을 들이기나 할까 했지만 과제라는 명분 때문에 방문하게 됐다.

평소에 "거기 가면 뭐 헬조선 취업 3종 세트 컴활 한국사 토익은 일단 기본이고 대외활동이랑 이것저것 하라고 하겠지 뻔해~" 라며 고개를 저었던 기억이 있다. 반골기질이 다분한 데다가 고연봉의 직장과 함께 안정적인 핵가족에 대한 환상 따위는 없기에 취업 준비는 나랑 생소한 것이었다. 무난한 학점에 학교 외에 빈 시간엔 알바를 하거나 교내 학회 및 정치 단체에서 활동했던 것이 전부였던 대학 생활의 절반이었다. 이름만 대면 알 기업이나 고스펙의 전문직종은 관심도 없었다. 자기 계발로 무장해 스펙 경쟁하는 내 또래에 대한 불신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미묘한 심정이 늘 있었지만 결국 취업시장은 그들과 경쟁해야 하는 곳이다. '뭐 한 번쯤 진지하게 상담받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라며 학교 복지센터 건물 지하에 있는 곳을 방문했다.



나름 체계적이었기에 온라인 예약 절차로 예약 확인까지 마치고 가야 했다. 일자리 센터 입구 책장엔 취업 관련한 서적들이 즐비하게 꽂혀있었고 원하면 일주일 정도 대출이 가능했다. 대학 생활 내내 한 번도 쳐다보지 않은 것들 투성이었다. 회계사, 금융권, 대기업 인적성 등 서점에 갈 때마다 잰걸음으로 스쳐 지나갔던 그런 책들이었다.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전문직, 공기업엔 관심이 하나도 없다지만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은 인고의 시간 아닌가. 그 옆에는 공용 데스크톱이 줄지어 세 대정도 놓여있었다. 취업 관련 정보를 검색하는 컴퓨터 같았다. 일자리 센터(카페)라서 그런지 가운데에는 소파와 탁자가 있고 편하게 앉아 있으라고 만들어 놓은 듯했다. 일자리 센터에서 편하게 앉아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만은.



방문하러 가는 길에 있었던 우리 학교 명물 고양이님

1시 30분 예약이었기에 1시 25분에 도착했다. 꽤 칼같이 상담시간을 지키는가 보다 "30분에 다시 데스크로 와주세요."라며 정시 상담 원칙을 지키는 인포메이션 데스크였다. 좋은 원칙이라 생각해 30분에 칼같이 들어가면 되냐고 물었다. 상담사 선생님들은 각각의 방이 있는데 유리문으로 되어있어 실루엣을 볼 수 있었다. 사무실이라고 하기엔 좀 작은 크기였다. 마스크를 썼기 때문에 얼굴은 서로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푸근한 인상의 상담사 선생님이 계셨다. 상담 요청서에 단순히 '진로에 관한 상담이 받고 싶습니다.'라고 형식적으로 적었기에 서로 인사를 나눈 후엔 상담사 선생님의 질문이 이어졌다. "정확히 어떤 상담이 받고 싶으세요?"라고. 나는 걸어 다니는 박물관급의 학번이라 뭔가 아무것도 준비해 가지 않은 티가 나면 한소리 들을 것 같았다. 평소 고민은 했으나 구체적으로 찾아보진 않은 졸업 후 진로에 관해 이야기했다. 역시 모르는 사람과 1대 1로 말할 때만큼은 사기꾼이 따로 없었다. 어느 곳에 취업하고 싶은지 크게 세 가지 분야를 나누고 왜 그런 선택을 고민하는지 한 순간의 정적 없이 말해냈다. 마치 평소에 면접 스터디에서 준비한 것 마냥. '발표할 때도 이러면 참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또 들었다. 내향적이기에 소수의 사람들과만 굉장히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나는 늘 다수 앞에서는 머리가 하얘지고 말을 떨었다. 준비한 말의 절반 정도밖에 못했고 졸업을 앞둔 지금도 발표 수업은 기피한다. 그래서 상담사 선생님도 나의 약점을 말하는 부분에서는 살짝 의아해하셨다. 예상했던 것보다 1시간의 상담시간은 쉽게 지나갔다.



아무래도 상담사 선생님도 프로는 프론가 보다. 졸업 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가간 느낌이라 방문 안 했으면 놓치는 게 꽤 많았을 것 같다. 학교 취업 센터에 관한 불신이 존재했었는데 역시 경험하기 전까진 모르는 게 일이다. "스펙이 없으면 가서 혼나고 온대.." , "거기 가면 안 좋은 소리만 듣고 온다던데?", "학교 생활 전반적으로 털리고 올걸.."이라는 우려는 과장이었다. 상담사들의 원칙에는 학생에게 예의를 갖출 것이라는 게 떡하니 쓰여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다. 게다가 상담 후에 바로 후기를 남기게 되어있기 때문에 소문과 같은 일들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늘 인간관계에서 들어주는 쪽에 가까웠기에 내가 상담받는 역할이 된 적이 드물었다. 머리에서 생각만 했던 것과 말로 표현을 할 때는 확실히 달랐다. 머리에 맴돌았던 구상들을 구체화 하기에 직접 말로 꺼내는 방법이 최고라고 새삼 느꼈졌달까. 시험공부할 때 친구들 에게 강사라도 된 듯이 강의해서 점수 잘 나온 적이 꽤 많은 걸 보면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거 같기도 하다. 생각보다 그리 늦지 않았고 남은 학기 동안 구체화해서 준비한다면 해볼 만한 것들이 조금 있었다. 내 안에 있던 최소한의 성실함이 살린 것인가.. 라기엔 너무 초라한 이력서긴 하다만. 일자리 센터의 이야기를 짧게 하고 꿈과 관련한 이야기를 쓰려고 헀는데 생각보다 길어져 버렸다. 다음 글에 이어서 써야겠다. 요즘은 이렇게 한 주간에 있던 일상의 조각들을 기록하는 데에 재미를 붙이는 중이다.



202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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